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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 한·일 월드컵축구 대회조직위원회를 방문, 준비 현황을 보고 받은 뒤 대형 축구공에 기념서명을 하고 있는 故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 세계일보DB |
◆전폭 지원 약속…선수단 수 차례 치하…병역 문제 해결
한일월드컵 당시 국가대표팀 코치였던 정해성 현 축구 대표팀 수석코치는 ‘히딩크호’가 출범 초기 유럽형 시스템의 팀으로 탈바꿈한 배경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당시 그가 이끌던 ‘국민의 정부’의 배려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최근 “2001년 2월 오만 전지훈련부터 피지컬 트레이너가 국가대표팀에 합류했고 의무팀에 마사지사가 대거 충원됐다. 각종 자료들도 선진국처럼 체계적으로 관리됐는 데,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부가 거스 히딩크 대표팀 감독의 요청을 전폭적으로 수용해 이뤄진 조치”라고 밝혔다. 정 코치는 “숙소 문제도 그랬다. 종전엔 2인1실로 썼는데, 히딩크 감독이 ‘개개인의 사생활을 지켜줘야 한다. 1인1실로 해달라’고 건의했고, 이를 정부가 받아들여 국내 최고 호텔서 선수들이 각방을 쓰는 걸로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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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대중(오른쪽 두 번째)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오른쪽)가 2002년 6월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2 한·일 월드컵축구 준결승 한국과 독일간 경기를 정몽준 국제축구협회(FIFA) 부회장(왼쪽),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왼쪽 두번째)와 함께 관전하던 도중 박수를 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김 전 대통령은 선수들이 땀을 흘리는 현장도 자주 방문했다. 그는 한일월드컵 개막 일주일 전 파주NFC(대표팀 트레이닝센터)를 직접 찾아 선수들을 격려했다. 또 한국이 한일월드컵 16강 진출을 확정지었을 땐 라커룸을 찾아 병역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기도 했다. 건설 여부를 놓고 말이 많았던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착공도 그의 결심이 큰 몫을 했다. 첫 삽을 뜬 시기 역시 김 전 대통령 취임 8개월 뒤인 1998년 10월이었다. 한국 축구의 숙원사업이었던 파주NFC 건설도 그의 재임기간 중 이뤄졌다.
◆스포츠도 ‘남·북 화해’
김 전 대통령은 스포츠 문제에서도 ‘남·북 화해’ 기조를 유지했다. 19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이 남·북 공동개최안을 들고 나왔을 때, 김 전 대통령은 북측을 비판하던 여론과 달리 “대화로 풀 수있다. 북한의 참가를 설득해보겠다”고 주장했다. 2000년 9월 시드니올림픽에서 남·북 선수단이 손을 맞잡고 공동 입장한 것 역시 3개월 전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이뤄진 성과. 2002부산아시안게임에서 화제가 됐던 북한의 미녀 응원단 방문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제의해 성사됐었다.
스포츠월드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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