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라운드까지 3점슛을 제외한 공격 전부문에서 20위 이내에 들었고 득점과 리바운드, 블록슛은 국내선수 3위에 랭크된 함지훈이야말로 슈퍼루키이자 서장훈, 김주성 뒤를 이을 보배급 센터다. 그를 경기도 모비스체육관에서 만났다
▲ “나는 행운아다.”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함던컨’도 ‘보배’도 아닌 그저 ‘행운아’였다. 모비스와의 인연을 맺어준 ‘행운’이 지금의 ‘함던컨’ ‘보배’로 불리는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 “신인 드래프트에서 비록 10순위로 뽑아준 모비스의 모든 상황이 나에게 딱 맞아떨어졌어요. ” 함지훈이 모비스를 반긴 첫 번째 이유는 대선배 이창수의 존재. 높이와 점프력의 한계를 느끼고 훅슛을 연마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훅슛의 국내 1인자 이창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창수형이 전지훈련 때부터 훅슛을 개인교습하다시피 했어요. 아직 창수형처럼 완벽하진 않지만 자신감을 얻었죠. ” 함지훈은 득점의 절반 가까이를 백보드를 맞히는 훅슛으로 넣고 있다.
모비스에는 김재훈이라는 또 한명의 센터 스승이 있었다. 용병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센터로 명성을 날렸던 김재훈은 함지훈에게 골밑에서의 부드러운 스텝과 터닝슛, 페이드어웨이슛 등 한층 업그레이드된 기술을 전수해 주고 있다고.
그러나 이들보다 먼저 함지훈을 변화시킨 모비스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지난해까지 뛰었던 용병 크리스 윌리엄스였다. 함지훈은 “불필요한 동작을 없애고 자기보다 큰 선수들 사이에서 정말 지능적으로 잘 하더라구요. 그래서 대학교 4학년 때 무조건 윌리엄스를 따라하겠다고 덤볐더니 1년새 부쩍 실력이 는 것 같아요.”라며 윌리엄스가 자신의 롤모델임을 밝혔다.

▲ “단점을 먹고 자랐다.”
함지훈은 스스로 단점이 많은 선수라고 했다. 그다지 점프도 잘 하지 못하고 스피드도 빠르지 않단다. 어릴 때도 그다지 주목받는 선수는 못됐다고 했다. 그런데 그러한 단점들 때문에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함지훈은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농구를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키가 크지 않아서 중학교 2학년때까지 가드를 맡았다. 중3이 되면서 키가 급속하게 자라 포워드로 전향했고, 190㎝를 넘어버린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센터를 보기 시작했다. 농구의 전 포지션을 두루 경험한 셈. “다양한 포지션 경험들이 농구의 전체적인 이해도를 높였던 것 같아요. ”
실제로 농구 전문가들은 함지훈의 가장 큰 장점으로 그의 지능적인 플레이를 꼽는다. 상황에 맞는 전술대처력이 좋고 다른 포지션 선수들의 플레이를 살려주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함지훈의 지능적인 플레이는 자신의 단점인 점프와 스피드를 보완하기 위해 스스로 발전시킨 부분이기도 하다. 함지훈은 “단점이 많은 만큼 더 많이 생각하고 연구할 수 밖에 없잖아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 “신인왕, 그 다음은 국내 최고 센터다.”
인터뷰 내내 겸손하고 침착한 함지훈이었지만 신인왕에 대한 욕심에서만은 솔직하고 화끈했다. “MVP는 나중에도 기회가 있지만 신인왕은 일생에 한 번 뿐이잖아요. 그런데 워낙 잘하는 선수가 많아서….” 1순위 신인 김태술(SK)과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경합중이지만 최하위권에 떨어진 팀 성적이 아쉬울 뿐 개인성적에서는 함지훈이 전혀 뒤질 것 없다.
신인왕 다음의 목표는 ‘당연히’ 국내 최고의 센터다.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은 서장훈과 김주성. 서장훈과 4차례의 맞대결에서 팀이 패배했을 뿐 일대일에서는 전혀 밀리지 않았던 함지훈은 조심스럽게 자신감을 드러냈다. “솔직히 일대일로 수비하기가 가장 힘든 선수가 장훈이 형이에요. 그 힘과 위압감은 엄청나요. 그런데 일대일 공격에서는 저도 이길 자신있어요.”
함지훈은 지금껏 해 온대로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겠다고 했다. “저는 항상 부족한 선수였잖아요. 시즌 끝나는대로 점프력도 키우고 체력도 보강하고, 외곽슛도 연습하면서 더 많이 공부해야죠. 계속 노력해서 팬들 기억에 별명에 걸맞는 최고 센터로 조금씩 조금씩 자리잡아 나가겠습니다.”
용인=글·사진=스포츠월드 김동환 기자 hwany@sportsworldi.com
아버지·어머니도 선수 출신…“피는 못 속이죠”
함지훈은 타고난 농구 선수다. 비록 학생 시절 그다지 명성을 날리지 못했다. 말 그대로 대기만성형이다.
함지훈은 양친 모두 농구선수 출신이다. 아버지 함영진(58)씨는 1970년대 전매청 소속의 포워드였고, 어머니 이정우(51)씨는 1980년대 초까지 선경의 전성기를 이끈 가드였다. 아버지에게서 큰 키와 슈팅력, 맨투맨 능력을 물려받았다면 어머니로부터 볼 다루는 손과 경기를 볼 줄 아는 눈을 이어받은 셈이다.
그러나 함지훈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농구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가장 반대했던 이가 역시 부모였다. 하지만 몸 속에 흐르는 농구의 피를 함지훈 자신도 부모도 막을 수가 없었다. 함지훈이 농구를 할 수 있게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의외로 할머니였다. 외국에 나가는 것이 꿈이었던 함지훈에게 농구를 하면 비행기타고 외국에 갈 수 있다는 단물을 슬쩍 흘린 것이 할머니였고, 반대하는 아버지 어머니를 설득한 것도 할머니였다.
함지훈은 “할머니가 가장 은인이다. 요즘도 농구장에 와서 응원해 주는 할머니를 보면 가장 힘이 난다. 또 내 모습을 보고 대견해하는 할머니를 볼 때가 가장 뿌듯하다”며 할머니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냈다.
용인=스포츠월드 김동환 기자
함지훈은 타고난 농구 선수다. 비록 학생 시절 그다지 명성을 날리지 못했다. 말 그대로 대기만성형이다.
함지훈은 양친 모두 농구선수 출신이다. 아버지 함영진(58)씨는 1970년대 전매청 소속의 포워드였고, 어머니 이정우(51)씨는 1980년대 초까지 선경의 전성기를 이끈 가드였다. 아버지에게서 큰 키와 슈팅력, 맨투맨 능력을 물려받았다면 어머니로부터 볼 다루는 손과 경기를 볼 줄 아는 눈을 이어받은 셈이다.
그러나 함지훈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농구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가장 반대했던 이가 역시 부모였다. 하지만 몸 속에 흐르는 농구의 피를 함지훈 자신도 부모도 막을 수가 없었다. 함지훈이 농구를 할 수 있게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의외로 할머니였다. 외국에 나가는 것이 꿈이었던 함지훈에게 농구를 하면 비행기타고 외국에 갈 수 있다는 단물을 슬쩍 흘린 것이 할머니였고, 반대하는 아버지 어머니를 설득한 것도 할머니였다.
함지훈은 “할머니가 가장 은인이다. 요즘도 농구장에 와서 응원해 주는 할머니를 보면 가장 힘이 난다. 또 내 모습을 보고 대견해하는 할머니를 볼 때가 가장 뿌듯하다”며 할머니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냈다.
용인=스포츠월드 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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