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이 국내 정치권을 넘어 해외 영화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일 제37회 싱가포르국제영화제(SGIFF) 측에 ‘암살자(들)’의 개막작 선정을 재고해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암살자(들)’은 오는 11월 열리는 싱가포르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상태다.
주 의원은 “대한민국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아내를 암살한 범죄자처럼 묘사한 영화가 상영되도록 하는 것은 국격을 허물어뜨리고 K-콘텐츠의 품격도 떨어뜨리는 매국 행위”라며 “이 영화는 창작의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없는 패륜적 역사 왜곡”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실제 희생자가 있고, 지금도 그 비극을 안고 살아가는 유족이 있다”며 “그 가족의 가장 처참한 비극을 왜곡한 작품을 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고 했다.
여기에 일부 누리꾼은 싱가포르국제영화제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암살자(들)’의 상영 철회를 요구하는 댓글을 남기거나 영화제 측에 항의 메일을 보내고 있다.
‘암살자(들)’을 둘러싼 공방은 개봉 이후 계속되고 있다. 영화는 1974년 8월15일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모티프로 당시 사건을 둘러싼 의혹과 배후를 추적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작품 공개 이후 영화가 사건의 배후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이나 당시 중앙정보부의 개입 가능성을 암시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졌다.
국민의힘에서는 장동혁 대표와 유영하·주진우 의원 등이 잇따라 비판에 나섰고, 영화 제작진을 상대로 한 고발도 제기됐다. 심지어 주 의원은 영화에 출연한 배우 유해진을 향해 “북한상”(북한 사람들의 얼굴형)이라고 말해 인신공격성 발언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주 의원은 “북한 편 드니까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토할 것 같아 (영화는) 안 봤다”고 밝혔다.
야권 일각에서는 실제 역사를 그대로 재현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에 정치권이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다는 취지의 반론도 나오는 가운데 제작진 역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앞서 제작진은 ‘암살자(들)’이 1974년 발생한 역사적 사건과 관련 기록을 토대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극영화라며 작품 속 극적 설정이나 가설을 역사적 사실로 단정해 제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논란이 출연진에게까지 번지면서 예정됐던 공식 일정도 줄줄이 취소됐다.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는 2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참석과 오는 7일 예정됐던 야외 무대인사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제작사 측은 최근 영화를 둘러싼 상황을 검토한 결과 관객과 참석자들의 안전 및 원활한 행사 진행을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측도 제작사의 요청에 따라 관련 행사 취소를 공지했다.
개봉 2주차 예정됐던 무대인사 일정도 전면 취소됐다. 이에 따라 허진호 감독과 유해진·박해일·이민호 등 출연진이 관객과 만날 예정이었던 일정 역시 진행되지 않게 됐다.
거센 공방과 일정 취소에도 극장 흥행세는 이어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암살자(들)’은 지난 6만8460명의 관객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이날 오전 7시 기준 누적 관객 수는 189만414명을 기록 중이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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