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잘 잠그던 셔츠 단추가 자꾸 손에서 빠지고 젓가락질이 예전처럼 되지 않는다. 걸을 때도 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 들고 계단에서는 몸이 휘청거린다.
이런 변화가 나타나면 흔히 뇌졸중이나 파킨슨병 등 뇌질환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목 부위 척수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대표적인 질환이 경추척수병증이다.
김호상 메리놀병원 신경외과 진료부장은 “경추 척수병증은 목이나 어깨 통증만 나타나는 질환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손이 둔해지고 걷는 모습이 달라지는 등 전신의 신경학적 변화로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며 “증상만으로 뇌질환과 구분하기 어려운 만큼 이전과 다른 움직임이 반복된다면 원인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이 둔해지고 걸음까지 달라진다면
척수는 뇌와 몸을 연결해 운동과 감각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 통로다. 이 척수가 목 부위에서 지속적으로 눌리면서 기능에 이상이 나타나는 상태가 경추척수병증이다.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는 노화에 따른 경추의 퇴행성 변화다. 디스크가 돌출되거나 뼈와 관절이 변형되면서 척수가 지나가는 척추관이 좁아질 수 있다. 목뼈 뒤쪽을 지지하는 후종인대가 뼈처럼 단단하게 변하는 후종인대골화증도 원인이 된다.
일반적인 목디스크가 특정 신경근을 눌러 목·어깨·팔의 통증이나 저림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면 척수병증은 척수 자체가 압박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초기에는 손끝 감각이 둔하거나 물건을 자주 떨어뜨리는 정도로 시작할 수 있다. 단추 채우기, 글씨 쓰기, 젓가락질처럼 정교한 손동작이 어색해지는 것도 특징이다. 진행되면 다리가 뻣뻣하거나 걸음이 느려지고 균형을 잡기 어려워질 수 있다.
김 부장은 “어르신 가운데 손이 서툴러지고 걸음이 느려지는 것을 단순히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변화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전에는 없었던 변화가 지속되거나 점차 심해진다면 신경학적 진찰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목이 안 아파도 척수병증 생길 수 있어
경추척수병증을 놓치기 쉬운 이유는 반드시 심한 목 통증이 동반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목은 별로 아프지 않은데 손의 감각이 떨어지거나 다리에 힘이 빠지고, 보행이 불안해져 병원을 찾았다가 척수 압박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진료에서는 손과 다리의 근력 및 감각, 반사, 보행 상태 등을 확인한다. 척수병증이 의심되면 MRI 검사를 통해 실제 척수가 눌리는 위치와 정도, 척수 내부의 변화 등을 살핀다.
특히 증상이 한쪽 팔이나 다리에서 갑자기 발생하거나 얼굴 마비, 언어장애 등이 동반된다면 뇌졸중 가능성을 먼저 고려해 즉각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반면 손의 미세동작 저하와 보행 장애 등이 서서히 진행한다면 경추척수병증도 감별 대상에 포함된다.
◆한번 손상된 척수…치료 시기 중요
치료는 척수 압박 정도와 신경학적 증상에 따라 달라진다.
영상에서 척수 압박이 관찰되더라도 신경학적 증상이 없거나 매우 경미하다면 상태에 따라 경과 관찰과 재활치료 등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손 기능이나 보행 능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등 신경학적 이상이 진행한다면 척수를 누르는 구조물을 제거하는 감압수술을 검토해야 한다.
최근 임상 가이드라인에서도 중등도 이상의 퇴행성 경추척수병증에는 수술적 치료를 권고하고 있다. 경미한 경우에도 경과 관찰 중 신경 기능이 악화되거나 보존적 치료에도 호전되지 않는다면 수술을 고려한다.
수술 방법은 모든 환자에게 동일하지 않다. 척수를 압박하는 위치와 범위, 경추 정렬, 환자의 연령과 기저질환 등을 종합해 앞쪽 또는 뒤쪽에서 접근하는 감압술이나 유합술 등 적절한 방법을 선택한다.
김 부장은 “척수병증 치료의 중요한 목표는 현재의 신경 손상이 더 진행되는 것을 막는 것”이라며 “이미 오랫동안 손상된 신경 기능은 수술 후에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을 수 있어 증상이 심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적절한 시기에 진단하고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목디스크나 척추관협착증 역시 영상검사에서 이상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수술하는 것은 아니다”며 “환자가 실제로 느끼는 증상과 신경학적 검사, 영상 소견을 함께 평가하고 약물·주사치료 등 보존적 치료부터 수술까지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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