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개봉한 영화 ‘호프’가 극장가에서 현상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개봉 당일 33만3548명 관객을 동원하며 2026년 개봉 영화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더니, 18일엔 173만2394명까지 누적 관객 수가 치솟았다. 과연 2026년 가장 큰 기대를 모은 화제작, 어느 시점부턴가 ‘한국 영화의 운명이 달렸다’는 중차대한 역할론까지 부여되던 블록버스터답다. 이로써 해외 선판매액을 감안한 추정 국내 손익분기점 700만 관객을 돌파할 가능성도 한층 커졌다.
이처럼 개봉 즉시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는 ‘호프’이지만 막상 개봉 직전엔 기묘한 해프닝으로 구설에 올랐다. 이른바 ‘평론 노이즈’다. 먼저 개봉 닷새 전인 10일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 ‘언제나 영화처럼’에 ‘쓴 적 없는 말’이란 포스팅을 올린 건. 포스팅은 “영화 ‘호프’에 대해서 제가 쓰지도 않은 글이나 제가 매기지도 않은 별점이 어지럽게 떠돌고 있네요”라며 “쓴 적 없는 글이나 평에 따라 극단적으로 반응하거나 저에 대해 판단하는 양상을 보면 그저 답답할 뿐”이라 밝혔다.
또 “저는 개봉 이전에 별점을 매기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개봉일 이후 첫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별점과 한줄평을 올리지요”라며 “화제작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을 때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또 점점 잦아지는 느낌”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가짜가 진짜를 압도하는 세상”이라고도 지적했다. 한 마디로, 지금 ‘호프’ 관련 인터넷 공간에 이 평론가의 것인 양 떠도는 한줄평이나 별점 등은 누군가 조작한 것이란 얘기다.
한편, 다음날인 11일엔 영화지 씨네21에 남긴 영화평론가 이용철의 ‘호프’ 한줄평과 별점이 씨네21에서 내려가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 평론가는 씨네21 전문가 별점에 참여한 5명 중 가장 낮은 5점(10점 만점)을 주고 “Grosse Fatigue: 하루가 참 길다”는 한줄평을 남겼었다. 이에 대중문화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이 뜨겁게 달아올랐고, 이 평론가 별점과 한줄평은 이튿날 다시 돌아왔다. 씨네21 측에선 “필자 본인의 요청이 있어, 11일 오후 20자평을 내렸”지만 “이용철 평론가께서 “해설하는 긴 비평문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지, 20자평을 내려달라는 의도는 아니었다”며 12일 오전 정정을 요청”한 것이라 경위를 밝혔다.
둘 다 꽤 낯선 상황이 맞다. 영화평론가의 별점과 평론을 두고 이런 일들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거나, 어쩌다 일어나도 이렇다 할 이목을 끌지 못하던 게 상례다. 전자가 이동진 평론가 경우라면 후자는 이용철 평론가 건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상황이 대중적 화제로 거듭났단 것. 상당 부분 지난봄 영화 ‘왕과 사는 남자’ 1700만 메가히트 시동을 걸어준 게 바로 이동진 평론가의 호평이었단 점이 각인되면서부터라 봐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평론가로부터 사적인 호평 메시지를 받은 ‘왕과 사는 남자’ 장항준 감독이 이를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언급하며 ‘이동진발(發) 호평 마케팅’에 시동이 걸렸었다.
물론 ‘왕과 사는 남자’ 흥행엔 대진 운 등 다른 요인들도 역할했겠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역시 저하된 시장에서 기대치를 올리고 선택 불안감을 지워버린 저 ‘호평 마케팅’이었기에 그만큼 ‘평론가 역할론’도 강한 인상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그 인상 탓에 별점 및 한줄평 조작까지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특별한 의도가 없더라도, 단순히 올여름 가장 주목받는 영화를 두고 현시점 가장 주목받는 ‘흥행메이커’와 엮어 관심 끌려는 뒤틀린 행태가 나올 수도 있단 얘기. 이용철 평론가 건이 불필요할 정도로 주목받은 것 역시 이런 분위기에 휩쓸린 경우라 볼 필요가 있다. 평론가 평가 자체에 한층 예민해진 시점이기에 이목을 집중시켰단 것이다.
그럼 이렇듯 영화평론가의 평가가 영화 흥행에 있어 중차대해졌단 전제는 과연 맞는 얘길까.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또 ‘어느 정도’ 이상은 아니란 식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시장이 위축될수록 권위와 신뢰를 갖춘 영화 가이드들의 가이던스가 중요해지는 환경이 되는 건 맞다. 영화관 문턱이 높아진 만큼 선택 실패에 대한 부담감도 커지기 때문이다. 모험적 선택은 꺼려지고, 참조해 볼 만한 가이던스에 보다 귀 기울이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평론가들에 기대는 분위기는 또 아니다. 애초 ‘왕과 사는 남자’ 흥행에 대한 해석부터가 지나치게 기울어진 부분이 있다. 오랜 방송 활동을 통해 상당 부분 셀레브리티화 돼 있는 장항준 감독이 무려 ‘국민MC’ 유재석이 진행하는 인기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시도한 ‘호평 마케팅’이 복합적 화제성으로 먹혀들어갔다 봐야지, 그 이상은 또 아니란 것. 이동진 평론가 역시 그간 아트하우스 지향적 면모를 사뭇 뚜렷이 드러낸 탓에 ‘왕과 사는 남자’ 이전까지만 해도 영화 흥행과 이렇다 할 관계가 있다 여겨지진 않았다. 어느 정도 권위 있는 가이드로서 역할론이 좀 더 부여되는 건 맞지만, 그에도 한계는 뚜렷하단 얘기.
그런 점에서 ‘호프’ 개봉 직전의 ‘평론 노이즈’는 말 그대로 ‘노이즈’로서 화제를 터뜨리는 역할 정도를 맡았으리란 해석이 많다. 어색한 얘기도 아니다. 애초 “찬반양론(贊反兩論)의 반응을 얻고 있다”는 식 설명은 1980~90년대부터도 영화 광고에 그대로 적힐 만큼 효과를 검증받은 마케팅 툴이었다. 그게 2000년대로 넘어가면 ‘디워’처럼 ‘평론가 vs. 대중 관객’ 구도로 찬반양론을 부르짖는 식으로도 가고, ‘인터스텔라’나 ‘설국열차’처럼 대중 관객들 사이에서의 찬반양론을 전시하는 식으로도 간다. 어찌 됐든 골자는 하나다. “무조건 시끄러운 쪽이 조용한 쪽보단 낫다”는 대중문화 마케팅의 본질적 차원, ‘노이즈’ 그 자체의 추구다.
이번 ‘평론 노이즈’ 시작점과도 같은 ‘왕과 사는 남자’ 경우로 돌아가 보자. 영화평론가 한 명의 격찬이 시장 가능성 자체가 애매하던 영화를 한계까지 끌어올렸단 점에서 1967년 미국 평론가 폴린 카엘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평론을 떠올리게 한단 반응도 있다. 그런데 사실 본질은, 2021년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나이트메어 앨리’를 두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이례적으로 LA타임스에 실었던 옹호 칼럼 쪽에 가깝단 얘기가 많다. 사실상 할리우드 셀레브리티인 스콜세지의 화제성 덕에 영향력이 남달랐던 것뿐이란 얘기다. 여기서부터 해석을 달리해야 지금 영화 평론을 둘러싼 복잡하고 과열된 분위기도 진정 국면에 들어서리란 예상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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