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불길은 끝내 한국 축구대표팀까지 집어삼켰다. 화를 자초한 대한축구협회는 끝내 불길을 잡지 못했고,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참사를 지켜만 봐야 했다. 변화가 없다면 한국 축구의 추락은 멈추지 않는다. 이제는 반드시 ‘소화(消火)’해야 한다.
협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불신이다. 2024년 홍명보 감독 선임 이전부터 차곡차곡 쌓인 결과다. 2023년부터 2024년까지 대표팀을 이끌었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파울루 벤투 감독이 구축한 시스템을 무너뜨렸고, 선수들을 방패막이로 삼는 등 수차례 논란의 중심에 섰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라 알려졌다.
대표팀이 ‘인사’로 휘청거리는 사이 협회는 비위행위자 100명에 대한 기습 사면을 추진했다. 여론의 거센 반발에 철회했으나 뭇매를 피할 수 없었다. 더불어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선 공정성 논란까지 불거졌고, 결국 이를 잠재울 성과조차 만들어내지 못했다. 축구에 열광하던 팬들은 분노하다 지쳤고 하나둘 등을 돌렸다.
월드컵까지 실패한 상황에서 더 이상의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당장 내년 1월 2027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이 열린다. 이에 앞서 9~10월, 11월 A매치도 치러야 한다. 시간이 없다. 지금부터가 ‘골든 타임’이다.
수장부터 달라져야 한다. 정 회장은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응원 분위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자 사퇴를 결심했다. 협회 수장마저 물러나겠다고 한 상황에서 이번 실패의 중심에 선 감독이 직을 유지할 명분은 희박하다. 홍 감독 역시 스스로 “책임지겠다”고 말한 만큼, 행동으로 책임질 차례다.
감독은 결과로 평가받는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실제로 이번 대회에서도 결과를 내지 못한 감독들은 팀을 떠났다. 스코틀랜드는 토너먼트 탈락이 확정되자마자 스티브 클라크 감독이 물러난다고 발표했고, 튀니지는 1차전(스웨덴·1-5) 패배 후 즉각 사브리 라무시 감독을 경질했다. 한국도 경질이든 자진사퇴든 조치를 취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물론 협회 수장이 공석 예정인 만큼 감독 선임 과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월드컵 일정을 마친 뒤 사표 제출 등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정관에 따르면 회장 궐위 시 부회장이 직무를 대행하고, 잔여 임기가 1년 이상 남았을 경우 60일 이내 새 회장을 선출해야 한다. 이 사이 행정 공백은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공백을 또 다른 무능의 핑계로 삼아서는 안 된다. 새 회장 체제만 기다리다가는 감독 선임 역시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엔 속도도, 공정성도, 전문성도 어느 하나 놓쳐선 안 된다.
과거와 같은 선택이 반복된다면 이번 월드컵은 더 큰 추락의 시작이 된다. 이번 기회에 협회를 불신의 장으로 만든 뿌리까지 도려내야 한다. 더 늦으면 잃는 것은 감독 한 명이 아니라 한국 축구를 믿어온 팬들의 마지막 신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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