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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K좀비로 보는 ‘K시리즈’의 차별화

입력 : 2020-04-26 13:26:23 수정 : 2020-04-26 18: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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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한국 새 오리지널 시리즈로 ‘지금 우리 학교는’ 제작이 확정됐다. 주동근 작가 인기 웹툰 원작이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어느 고등학교에서 고립된 학생들의 탈출 분투를 담았다. 영화 ‘완벽한 타인’으로 530만 관객을 동원했던 이재규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

 

‘또’ 좀비다. 같은 넷플릭스에서 ‘킹덤’ 시즌2를 내놓은 게 지난 3월이다. 영화 ‘부산행’ 속편 ‘반도’가 조심스레 여름개봉을 추진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모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어 속편까지 제작된 경우들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 역시 그런 흐름을 타고 제작이 확정된 경우일 테다. 갑자기 한국의 글로벌 대표 서브장르가 좀비물이 돼버렸나 싶어지는 시점이다. 이에 언론에선 벌써 ‘K좀비'란 용어까지 등장시키고 있다.

 

그럼 ‘K좀비’는 과연 다른 동일 서브장르 콘텐츠와 차별화되는 콘셉트가 맞을까. 일정 부분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K팝만큼의 차별성까진 아니지만, 어찌 됐건 다르긴 다르다.

애초 이 모든 트렌드 시발점 ‘부산행’만 봐도 그렇다. ‘부산행’은 글로벌 차원에서 상업적 성공뿐 아니라 비평 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어낸 콘텐츠다. 미국 로튼로마토 94%에 메타크리틱에서도 72점을 기록했다. 그런데 호평 내용이 흥미롭다. 좀비물에서 흔히 놓치기 쉬운 인물과 인간감정 묘사에 주력해 인상적이란 평이 많았다. 이에 K드라마 등으로 한국콘텐츠에 익숙한 한류 팬들은 “감정이 없다면 한국콘텐츠가 아니”란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다.

 

바로 이 점이 ‘K좀비’를 차별화시킨다. 나아가 다른 모든 서브장르들까지 차별화시키는 요소다. 한국영상산업은 어떤 장르를 다루건 늘 인간감정과 인간관계 묘사에 주력한다는 것. 실제로 노하우도 뛰어나다. 아트하우스 영화들처럼 인간 내면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기보다, 갖가지 충동적 감정이나 관계변화 등을 상업적으로 재편해 묘사하는 데 능하다.

 

애초 내수시장 성향이 그쪽으로 집중돼있어 그렇다. 한국대중 자체가 어떤 장르건 결국은 인간감정과 그 행태에 집중하고 만단 얘기다. 한동안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나돌던 우스개, “미국드라마에선 의사가 사건을 해결하고, 일본드라마에선 의사가 삶의 교훈을 일깨워주고, 한국드라마에선 의사가 연애한다”라는 인사이트(?)로도 잘 알 수 있다.

 

그런 선택과 집중은 자연스럽게 콘셉트 고도화로 이어진다. K드라마가 불과 사반세기 만에 아시아권을 휩쓸고 이제 남미 각국 및 미국까지 진출하고 있는 상황으로도 잘 알 수 있다. 나아가 사극 대하드라마도 아니면서 편당 30명 넘는 인물을 고정 등장시키는 대인원 콘셉트로 한국만한 노하우를 지닌 영상산업 자체가 딱히 없다.

 

돌이켜보면 ‘K몬스터’ 시발점이었던 ‘괴물’도 여타 괴수영화들과 달리 일가족 중심 인간관계와 감정에 주력한 콘텐츠였고, ‘장화, 홍련’ 등 호러, ‘염력’ 같은 수퍼히어로 서브장르 등도 모두 같은 맥락이었다. K드라마 속성과 교집합이 넓다. 그렇게 서구와는 차별화된 ‘K 시리즈’가 갖춰지는 셈이다.

 

물론 이들 ‘K 시리즈’가 K드라마 요소 하나만으로 세계적 호응을 얻었다고 보긴 좀 무리가 있다. 그것도 다 프로덕션 밸류가 뒷받침되니 가능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모두 ‘할리우드 바로 다음쯤’ 되는 프로덕션 밸류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느낌을 내는 데 성공했다. 소위 ‘때깔’이 버금가게 좋았단 얘기다.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에 한국은 확실히 조건이 좋다.

 

영화 장르만 해도 그렇다. 한국은 이미 세계 6위 규모 영화시장이다. 자국영화 점유율도 50%가 넘는다. 투자환경 차원에서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여기에 창작적 자유(중국이 여기서 제외된다), 문화형식 보편성(인도는 여기서 제외된다) 등까지 고려하고 보면, 한국은 실제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근접하는 프로덕션 밸류를 내는 데 ‘할리우드 바로 다음쯤’이 맞다. 할리우드와 투자 및 인력이 사실상 공유되는 영국을 빼고 보면 그렇다.

 

한편, TV드라마도 지난 사반세기 동안 아시아시장에서 자리를 굳힌 터라 어떤 의미에선 더 안정적인 투자입지를 과시한다. 2017년 일본 총무성 집계를 통해 드러난 한국의 방송콘텐츠 수출액은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 3위로 집계됐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12월 발표된 2018년 방송산업 총 매출규모는 무려 17조3057억 원에 달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반도’ 제작비 200여억 원만 해도 2000년대 등장한 전 세계 수많은 좀비 영화들 중 미국 제외 콘텐츠로선 가장 큰 규모다. 개중 가장 많은 자본을 투여했던 영국 좀비 영화 ‘28주 후’조차 제작비 1500만 달러(약 185억 원)로 ‘반도’엔 못 미쳤다.

 

그런 점에서 ‘K 시리즈’ 성공비결은 결국 위 두 가지 요소 결합 덕택이었다고 볼 여지가 많다. 자본을 통한 프로덕션 밸류 확보와 차별성 보전의 결합. 문득 2000년대 초반 ‘샌드위치론’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한국제품은 일본처럼 품질로 높이 평가받진 못하고, 그렇다고 중국만큼의 가격경쟁력도 없으니, 그 사이 ‘샌드위치’처럼 끼어 살길을 찾지 못하리란 경제비관론 말이다. 뚜껑을 열고 보니, 한국제품은 일본에 살짝 못 미칠 정도로 품질이 좋으면서 중국에 살짝 못 미칠 정도로 가격경쟁력도 높아 오히려 선호되는 제품으로 거듭났다.

 

‘K좀비’ 등 ‘K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여러 국가에서 다양한 장르 콘텐츠가 나오곤 있지만, 한국만큼의 프로덕션 밸류까지 갖추진 못해 사실 그 확장성엔 한계가 있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할리우드엔 못 미치는 ‘때깔’이지만, 여기서 다시 그 한계를 차별화된 K드라마 특성으로 극복하고 있다는 것. ‘그 사이’에서 살길을 찾아내고 있는 셈이다.

 

흔히 ‘비슷한데 다르다’는 절묘한 스탠스가 문화 해외진출 핵심키워드라고들 한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비슷해야 하고 또 무엇이 달라야 하냐는 지점에서, 결국 비슷해야 할 건 자본투자를 통한 프로덕션 밸류고 달라야 할 게 콘텐츠 자체 성격이 되리란 관찰이다. 일단 개봉과 제작을 앞둔 ‘반도’와 ‘지금 우리 학교는’ 상황부터 주시해볼 필요가 있다.

 

/이문원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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