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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준의 독한 B다이어리] ‘여농 임영희’, 야구판 ‘이용규 논란’에 던진 메시지

입력 : 2019-03-20 05:01:00 수정 : 2019-03-20 04: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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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권영준 기자] “임영희 선수 나이가 마흔이다. 마흔에 감독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내색 한 번 안 했다. 임영희라는 선수를 만난 나는 행복한 감독이었다.”

 

여자 프로농구 우리은행의 위성우 감독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냉철한 지도자로 통한다. 코트에서 목소리도 가장 크다. ‘호통맨’이다. 흔히 말하는 경상도 남자라 무뚝뚝하기 그지없다. 팀의 에이스라고 할지라도, 베테랑이라고 하더라도 지휘 철학을 거부하는 선수는 가차 없이 팀 전력에서 제외했다. 6시즌 연속 통합 우승은 그렇게 이뤄졌다.

 

그런 위성우 감독이 꺼이꺼이 울었다. 6번 정상에 오르면서도 눈물 한 번 보인 적 없는 지도자이기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눈물의 이유는 바로 한국 나이 마흔의 현역 최고참 임영희(39·우리은행) 때문이었다. 6시즌 연속 팀을 정상으로 견인한 레전드 임영희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 지난 18일 플레이오프에서 우리은행은 탈락했다. 이날 경기가 임영희의 마지막 현역 무대였다.

 

임영희는 대기만성형 스타이다. 신인 시절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소속팀도 하위권을 맴돌았다. 첫 개인상 수상도 데뷔 11년 만에 받은 모범 선수상이었다. 하지만 묵묵히 구슬땀을 흘렸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위성우 감독을 만나 뒤늦게 ‘포텐’을 터트렸다. 리그와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를 모두 휩쓸었다. 국가대표팀에도 승선해 2014 인천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베테랑에, 말 그대로 리그를 씹어먹은 에이스였지만, 위성우 감독에겐 ‘팀원’이었다. 좀처럼 실수를 하지 않는 선수지만, 아예 없을 수는 없다. 그때마다 불호령이 떨어졌다. 훈련 중에는 강도가 더 강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라는 말을 위 감독은 실천했고, 이를 임영희는 묵묵하게 받아드렸다. 임영희는 언제나 “위 감독님이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음이 약한 분”이라고 지도자의 철학을 이해했다.

 

임영희는 경쟁도 기꺼이 동참했다. 우리은행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신인 최대어 박지현이 입단했다. 위 감독은 “임영희를 대체하고, 팀 세대교체를 이끌 신인”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베테랑 임영희 입장에서는 충분히 기분이 상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임영희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경쟁자가 아니라 팀을 위해 함께 뛰는 동료로 생각했다. 임영희는 “박지현이 나이는 어리지만, 나도 보고 배울 점이 있을 정도로 능력이 좋다”라며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잘 돕겠다”고 보듬었다.

 

임영희는 현역 마지막 경기를 패배로 마쳤다. 하지만 끝까지 베테랑의 품격을 보여줬다. 실망감을 뒤로하고 승리 팀 선수들에게 찾아가 일일이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상대 팀이었던 박하나는 “신인 시절 영희 언니와 한 팀에서 룸메이트로 지냈다. 숙소에서 언니가 요리해준 김치 수제비는 정말 맛있었다. 언니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며 펑펑 울었다. 위성우 감독 역시 “너무나 미안하고, 고맙다. 마흔에 욕도 많이 먹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임영희는 모두의 존경 속에 코트를 떠난다. 주목받지 못했던 신인 시절을 견디고, 뒤늦게 꽃을 피웠다. 최고참에 자리에 올라서도 선수의 본분을 다했다. 지도자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고, 10살 이상 어린 선수와의 경쟁에도 마다치 않고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베테랑의 자존심이 무엇이고, 어떻게 존경을 받는지 직접 보여줬다. 놀라운 사실은 그의 연봉은 1억5000만원이었다. (여자 농구 최다 연봉 기록은 3억원이다)

 

프로야구판에 상반된 케이스가 발생했다. 바로 ‘이용규 트레이드 논란’이다. 한화 외야수 이용규(34)는 시범경기가 한창인 지난 15일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이용규는 올 시즌을 앞두고 2+1년에 최대 26억원(계약금 2억원, 연봉 4억원, 옵션 연간 4억원)에 자유계약(FA) 도장을 찍었다. 계약서에 사인이 마르기도 전에, 그리고 해외 스프링캠프를 모두 소화한 후, 여기에 시범경기 도중에 트레이드를 요청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현재 왜 트레이드를 요청했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다. 일단 주포지션인 중견수에서 좌익수로 전향한 것도 9번 타자 배치는 문제가 아니다. 스프링캠프에서부터 좌익수로 연습경기에 나섰고, 9번 타자 역시 ‘강한 2번 타자’ 흐름에 맞춘 전술적 배치였다. 좌익수 9번이 문제였다면, 스프링캠프부터 문제를 제기했어야 한다. FA 계약 옵션 문제도 아니다. 스포츠월드 취재 결과 9번 타자로 나서도 충분히 이행할 수 있는 수준의 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황상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부분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베테랑에 대한 대우에 대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돌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베테랑에 대한 대우와 자존심은 본인이 세우는 것이 아니다.

 

여자 농구 선수 임영희처럼 경쟁을 마다치 않고, 팀에 헌신하면서 감독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했는지, 나이 마흔에 혼쭐이 나면서도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는지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떳떳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임영희는 이번 시즌 팀 전체 35경기 중 34경기에 출전해 경기당 평균 10.53점, 도움 3.56개를 기록했다. 평범한 기록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자기 역할에 100% 충실했다는 매우 큰 가치가 숨어있다. 실제 플레이오프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득점을 올려주며 베테랑의 존재감을 선보였다.

 

프로라면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먼저다. 경기장 밖에서는 고참의 역할을, 안에서는 프로 선수의 임무를 다 해야 이후에 발생하는 사안에 대한 명분도 생긴다. 고참의 자존심은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세워지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young0708@sportsworldi.com / 사진=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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