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갈하면서 힘있는 글씨체로 행안부에 인정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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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샘 이민재 작가가 지난해 11월25일 문경새재에 세워진 ‘문경새재 귀사랑고개’ 시비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행안부(지역발전정책국)가 문경시의 의뢰를 받고 심사위원회를 연 결과 전문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이민재 작가로 모아졌다. 그래서 그는 유안진의 시 ‘문경새재는 귀사랑 고개’를 궁체(현대문 흘림)로 썼다. 시비 제막식은 지난해 11월 25일 맹형규 행자부 장관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수많은 한글서예 작가 중에 역사적으로 두고 두고 남을 비문을 쓸 수 있는 행운을 안은 것은 그의 30여년 서예인생이 올곧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진샘은 한글서예부문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한글서예 작품은 다양한 기법과 기교를 바탕으로 독창적 개성미를 물씬 풍긴다. 작품 앞에 서면 점과 선이 어우러져 기운생동의 향연을 펼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글자 한자 한자는 나름대로의 개성을 띄면서 동시에 함께 어우러지면서 단아함과 고졸미의 극치로 치닿고 있다.

잘 조절된 점획의 굵기와 길이 및 여백이 균형을 이루어 한글서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글의 맛을 감상자에게 안겨준다. 정적인 안정감과 함께 동적인 변화를 느낄 수 있다. 한마디로 정중동의 미감이다. 그 속에선 작가의 정신과 서기가 활발한 소통을 이루고 있다.
진샘은 서예에서 출발했지만 하나의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 고법에서 출발했지만 그 법에 안주하지 않고 현대적 조형언어로 한글서예를 승화시켰다. 오랫동안 한글서체를 연마했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서예의 뿌리인 전각예술과 문인화에 이르기까지 표현의 영역을 확대한 것.
그는 생활 주변에서 건강한 삶의 소재를 찾아 작품으로 옮긴다.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풀꽃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고유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정갈함과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건 이같은 자연친화적 소재를 선택한 탓이다. 궁체(궁서)의 최고 경지에 올랐음에도 궁체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글꼴의 판본체의 변주와 한글 편지글을 초서화한 새로운 작품을 내놓고 있다.
그는 “궁체는 궁에서 여인들이 쓰던 서체로 한글이 창제되고 난 후 궁체의 발달은 350여년간에 걸쳐 이루어져 욌다”며 “궁체는 단아하고 정리된 느낌이 나도록 쓰는데, 궁중여인들이 쓴 글은 우수한 게 많다”고 했다.

그는 “한글서예에는 궁서, 정자, 판본체, 전서가 있는데 궁서는 한문서예의 행서에, 정자는 해서에, 판본체는 예서에, 전서는 초서에 해당한다”며 “한글서예를 수준 있게 쓰려면 10년은 해야 한다. 추사도 붓을 천 자루 없앴다는 말이 있다. 얼마나 사랑하면서 시간을 투자했느냐에 따라 글의 수준이 달리 올라 간다. 작가가 되어서도 공부를 꾸준히 하지 않으면 좋은 작품을 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추사도 붓을 천 자루 없앴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는 10년 전부터 현대적 한글서예에 천착해왔다. 단조롭고 획일적인 궁체 일변도의 지루한 작품 경향을 탈피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이에 따라 작품은 좀 더 중후한 필묵의 맛을 선보인다.
그의 궁체 작품의 시원은 갈물 이철경에 있다. 1970년대 후반 한문서예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갈물 이철경 선생을 소개받았다. 그 인연으로 1980년 주부클럽 한글서예반에 들어가 아람 이한순 선생을 만나 궁체를 사사받았다.
그는 지난해 작심하고 큰 보시를 했다. “지난해 제일 큰 일 한 게 금강경을 써서 절에 기증한 거예요. 현대문 정자로 12폭에 1만2000자를 쓴 대작이죠.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금강경이 그렇게 좋다고 해서 쓰게 됐죠. 조용한 새벽에만 썼는데 20여일 걸렸어요. 초안 잡는 데 싸인펜만 40여 자루를 날렸어요. 누가 써놓은 게 있으면 그걸 참조해서 하면 되는데 처음으로 하는 거라 쉽지가 않았죠.”
그는 “한자로 된 금강경은 5250자인데 한글로 쉽게 풀어 쓰다 보니 1만자 분량이 넘은 것”이라며 “남이 시도 안 한 것을 내가 처음으로 하게 돼 기분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작품가로 따지면 억대가 넘는다. 그런 데도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이 살고 있는 일산의 한 절에 기증을 했다고 하니 서예인의 결기를 보는 듯하다.

#지난해 12폭 금강경 써서 일산의 절에 보시

그는 진샘한글서회를 만들어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그에게게 배운 제자들을 중심으로 만든 진샘한글서회는 한글서예 보급의 전진기지다. 대부분 주부작가들로 구성됐지만 한글서예와 전각, 서각 등 다년간 공부한 내용을 정기적으로 회원전을 열면서 서예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
그는 “서예는 나의 친구이자 애인”이라고 했다. 심신수양에도 좋지만 언제든지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면 만날 수 있는 인생의 동반자 이상의 기쁨과 위안을 준다.
한글서예 교육을 긍지와 보람으로 생각하는 그는 서예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고 평했다. 좋은 시와 글을 중심으로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만남이기에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요즘 그의 화두는 한글흘림체에 꽂혀 있다. 서예의 꽃은 초서에 있고 초서에서 진정한 기운생동을 맛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추사 김정희, 대원군 등 조선시대 대가들의 한글 편지글이나 조선시대 여인들의 편지글을 임서해 작품화하고 있다.

“임서는 원 글씨를 그대로 배껴 쓰는 것을 말하는데 임서해 그 맛을 살리면서 작품으로 새롭게 탄생시키는 거죠. 내용을 다 쓸 수도 있고 자를 수도 있어요.”
그는 “추사 편지글은 초서에 가깝게 휘갈겨 썼는데 힘이 들어가면서 날렵하게 확확 내려간 게 특징”이라며 “추사 편지글을 많이 써보아야만 한글초서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강민영 선임기자 mykang@sportsworldi.com
▶평양 출생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 경력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초대작가·심사위원, 현대서예문인화협회 초대작가·심사위원,대한민국 서예공보대전 심사위원, 홍제미술대전 운영위원, 대한민국 서울미술대전 심사위원 등 다수 서예미술대전 심사위원으로 활동중
▶수상 경력
-홍제사상교육진흥상, 대한민국 서예대상전 지도공로상, 홍제문예교육공로상, 한국서가협회 초대작가상, 강남구청장상, 한국서예진흥협회 감사패, 경향 하우징 페어아트페스티벌 서예중진작가 대상
▶작가활동 및 교육활동
-갈물한글서예 이사, 대한민국 서예예술협회 이사, 인터넷 화랑 묵객 이사, 경향미술협회 이사, 고양시여성작가회·여류서예가협회·아람회·한국서가회 회원, 남부여성발전센터·롯데MBC문화센터·그랜드문화센터·송파여성회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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