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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워한 아버지를 연기에 담았다”…최불암, 오늘 영면

입력 : 2026-11-02 06:00:00 수정 : 2026-11-01 15: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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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을 대신해야 한다.”

 

최불암이 평생 품었던 연기 철학이다. 그는 수사반장의 박 반장으로, 전원일기의 김 회장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연기했다. 화려한 인물보다는 우리 주변에서 만날 법한 사람을 오래 연기했고, 그 시간은 60년을 훌쩍 넘겼다. 최불암의 이름 앞에 ‘국민 배우’, ‘국민 아버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붙은 이유다.

 

최불암이 2일 영면에 든다. 향년 87세. 발인은 이날 오전 7시40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다. 오전 9시에는 서울 여의도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의 집전으로 장례미사가 열린다. 이후 오전 10시40분 서울 중구 초록우산 본부에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한 뒤 경기 파주시 동화경모공원에 안장된다.

 

고인은 지난달 29일 오후 10시30분쯤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3월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거동이 불편해져 재활에 힘써왔으나 최근 건강이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불암의 연기 인생은 1959년 극단 실험극회의 연극 햄릿으로 시작됐다. 처음부터 배우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연출가를 꿈꾸며 연극계에 발을 들였지만 무대에 직접 서면서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1965년 국립극단 단원이 됐고, 1967년 서울중앙방송 특채 탤런트로 선발됐다. 젊은 시절부터 실제 나이보다 훨씬 많은 인물을 자주 맡았다. 20대에 수양대군(KBS) 속 노년의 김종서를 연기한 것도 그중 하나였다. 나이에 맞는 역할만 고집하지 않고 인물의 삶을 먼저 들여다보는 태도는 이후 수사반장과 전원일기에서도 이어졌다. 덕분에 익숙한 얼굴이면서도 작품마다 다른 삶을 보여주는 배우가 됐다.

 

이름 석 자를 전국에 알린 작품은 수사반장(MBC)이었다. 1971년부터 1989년까지 18년간 박영한 반장을 맡았다. 범인을 잡는 데만 몰두하는 형사가 아니었다. 사건 뒤에 놓인 사람의 사정까지 들여다보는 박 반장의 모습은 당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인간미와 정의감을 함께 보여준 이 역할은 최불암의 대표작이 됐다.

 

작품과 현실의 인연도 이어졌다. 수사반장 출연을 계기로 1972년 명예경찰에 위촉됐고, 2024년에는 명예 국가수사본부장이 됐다. 최불암은 생전 수사반장을 자신의 연기에 초석이 된 작품으로 꼽았다. 한 배우가 연기한 형사 역할이 반세기가 지나도록 실제 경찰 조직과의 인연으로 이어진 셈이다.

 

1980년 시작한 전원일기(MBC)는 최불암에게 ‘국민 아버지’라는 이름을 안겼다. 그는 2002년 종영할 때까지 22년간 양촌리 김 회장으로 살았다. 경제가 성장하고 농촌의 모습이 빠르게 달라지는 동안에도 김 회장은 매주 안방을 찾았다. 최불암이 연기한 아버지는 완벽한 인물은 아니었다. 화를 내고 고집을 부릴 때도 있었고, 자식과 생각이 엇갈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가족과 이웃의 일을 외면하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김 회장을 낯설지 않게 받아들인 것도 당시 주변에서 볼 수 있던 아버지의 모습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고인이 수많은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에는 개인적인 사연도 있었다. 최불암은 영화제작자였던 아버지를 여덟 살에 여의었다. 최불암은 생전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내가 그리워한 아버지의 모습을 연기에 담았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오래 남아 있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연기로 채워온 것이다. 이후 그대 그리고 나(MBC)의 캡틴 박 등 여러 작품에서 각기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줬다.

 

드라마 출연이 뜸해진 뒤에도 최불암은 방송을 떠나지 않았다. 한국인의 밥상(KBS1)을 통해 다시 시청자 곁을 찾았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14년간 전국을 다니며 음식과 그 음식을 만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유명한 맛집을 소개하기보다 한 끼에 얽힌 가족과 고향, 살아온 시간을 듣는 프로그램이었다. 최불암은 밥상 앞에 앉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웃으며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지난해 허리디스크 수술 뒤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한국인의 밥상에서 하차했고 이후 재활 치료를 받아왔다. 몸은 예전 같지 않았지만 자신의 배우 인생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마음은 놓지 않았다. 지난해 MBC 제작진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내 다큐 좀 만들어줘”라고 부탁했다. 60년 넘게 배우로 살아온 시간을 한 번쯤 정리해두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프로그램이 파하, 최불암입니다(MBC)다.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에서 그의 맏아들을 연기했던 박상원이 최불암의 연기 인생을 돌아보는 진행을 맡았다. 최불암은 당초 직접 출연할 예정이었지만 건강 문제로 함께하지 못했다. 지난 5월 방송된 프로그램은 고인의 별세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추모 특집으로 다시 전파를 탔다.

 

67년에 걸친 활동은 여러 기록으로도 남았다. 고인은 백상예술대상 TV·연극 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과 대종상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으며, 2014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30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향년 87세로 별세하신 故최불암 씨의 빈소가 차려졌다.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30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향년 87세로 별세하신 故최불암 씨의 빈소가 차려졌다.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카메라 밖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활동을 오래 이어갔다. 시작은 전원일기였다. 1981년 촬영 중 아역 배우와 맺은 인연을 계기로 초록우산과 관계를 맺었고, 출연진과 함께 결연 후원에 나섰다. 1985년에는 전국후원회장으로 위촉돼 별세할 때까지 41년간 활동했다.

 

이름만 올려놓은 후원회장은 아니었다. 동료 연기자들의 후원 참여를 이끌었고, 1990년대에는 해외후원회 결성에도 힘을 보탰다. 스리랑카와 에티오피아, 우간다 등 해외 아동복지 현장도 직접 찾았다. 또 사단법인 제로캠프를 설립해 소년 수형자들의 문화예술교육과 사회 복귀를 지원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돕는 일은 그의 배우 인생만큼이나 오래 이어진 또 하나의 활동이었다.

 

이번 장례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고인은 생전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반드시 초록우산 본부에 들러달라는 뜻을 주변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장례미사를 마친 뒤 운구 행렬은 초록우산 본부를 찾는다. 40년 넘게 아이들을 위해 오갔던 곳에 마지막 인사를 한 뒤 장지로 향하는 것이다.

 

수사반장의 박 반장으로, 전원일기의 김 회장으로, 한국인의 밥상을 누비던 진행자로 최불암은 긴 세월 시청자와 만났다. 무대에 처음 오른 1959년부터 67년.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을 대신해야 한다’던 배우는 그렇게 자신의 말처럼 사람들의 삶을 연기하고 영면에 든다.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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