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 챔피언 김유진이 왕좌로 향하는 마지막 길목서 야속하게도 또 익숙한 벽에 막혔다.
정상 문턱에서 아쉬움을 삼켰지만,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AG)을 앞두고 치른 점검 무대에서 값진 은메달을 챙기며 세계 정상권 경쟁력을 재확인했다. 이제 시선은 항저우 대회 동메달을 넘어 자신의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향한다.
김유진은 6일 전북 무주 태권도원서 열린 ‘무주 태권도원 2026 월드태권도 그랑프리 시리즈’ 여자 57㎏급 결승에서 마리아 클라라 파셰코(브라질)에게 라운드 점수 0-2(0-5, 2-8)로 패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아는 두 선수답게 초반부터 치열한 수 싸움이 펼쳐졌다. 섣불리 거리를 좁히지 않은 채 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빈틈을 탐색했다. 발차기를 한 차례씩 주고받을 때마다 곧바로 다음 움직임을 읽으려는 모습은 한 수 앞을 내다보는 체스 대국을 떠올리게 했다.
먼저 흐름을 가져간 쪽은 파셰코였다. 김유진은 1라운드에서 공격의 실마리를 좀처럼 찾지 못한 채 0-5로 밀렸다. 2라운드 들어서는 승부를 뒤집기 위해 한층 적극적으로 거리를 좁혔다. 그러나 파셰코는 서두르지 않았다. 김유진이 앞으로 나설 때마다 침착하게 받아치며 점수를 하나씩 쌓았다. 추격의 틈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고, 김유진은 2라운드마저 2-8로 내주며 고개를 숙였다.
파리 올림픽 이후 이어진 질긴 악연도 끊지 못했다. 김유진은 2025 무주 그랑프리 챌린지와 우시 세계선수권, 올해 로마 그랑프리 결승에서 모두 파셰코에게 패했다. 이번 대회까지 파리올림픽 이후 파셰코와 결승에서 네 차례 만나 모두 가로막힌 것. 반대로 파리 올림픽 8강에서 탈락했던 파셰코는 이후 우시 세계선수권과 로마 그랑프리 정상에 오르는 등 여자 57㎏급 최강자로 자리매김했다.
결승까지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김유진은 16강서 김가현을 2-0으로 꺾은 뒤 8강에선 페이스 딜런(미국)을 완파했다. 준결승에서야 이번 대회 들어 처음으로 3라운드 승부를 펼쳤을 정도다. 니카 카라바티치(크로아티아)에게 1라운드를 2-2 동점 끝에 우세 판정으로 내줬지만, 2라운드를 9-0으로 압도해 균형을 맞췄다. 이어 3라운드마저 4-0으로 가져가 라운드 점수 2-1 역전승으로 결승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파리에서 세계 정상에 오른 뒤 김유진의 위치도 달라졌다. 도전자가 아닌, 견제를 받는 챔피언이 됐다. 그럼에도 순위권을 꾸준히 지켰다. 올해에만 로마 그랑프리에서 은메달을 따낸 데 이어 타이위안 여자오픈에서도 동메달을 수확했고, 이번 무주 대회까지 3개 대회 연속 시상대에 올랐다. 다음 무대는 AG다. 김유진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57㎏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번에는 자신의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도전한다.
한편 여자 67㎏급 곽민주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8강서 밀레나 티토넬리(브라질)를 라운드 점수 2-0으로 꺾었지만, 준결승에서는 지난해 방콕 그랑프리 챌린지 결승에서 제압했던 싱자니(중국)에게 0-2로 패했다. 남자 80㎏급 박재원과 강재권은 나란히 32강서 러시아 선수들을 만나 탈락했다. 박재원은 블라디슬라프 부딘에게 0-2, 강재권은 아르템 미타레프에게 1-2로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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