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러닝을 하다 보면 재미있는 장면을 자주 본다. 이제 막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인데 장비는 이미 국가대표급이다. 신발은 카본화, 손목에는 GPS 시계, 옷은 전문 러닝 브랜드, 러닝에 조끼까지 필요하다. 아직 5km도 힘겨운데 장비만 보면 보스턴 마라톤 출발선에 서 있어야 할 것 같다.
물론 나도 장비를 좋아한다. 좋은 신발을 신으면 괜히 한 발짝이라도 더 잘 나가는 것 같고, 시계에 찍힌 기록을 보면 내가 선수라도 된 듯하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운동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준비가 너무 거창해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운동화 한 켤레면 달리기를 시작했다. 지금은 러닝을 시작하기 전에 쇼핑부터 시작한다. 건강해지려고 뛰기 시작했는데, 카드값이 먼저 건강을 잃는다.
이런 현상은 러닝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이상한 ‘올려치기 문화’가 있다. 뭐든 평균이 점점 위로 올라간다. 골프를 시작하면 초보용 채보다 좋은 장비부터 찾고, 캠핑을 시작하면 텐트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테이블, 의자, 조명, 난로, 냉장고까지 갖추다 보면 캠핑을 가는 건지 이사를 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커피를 마셔도 원두와 머신을 따지고, 여행을 가도 숙소의 등급과 비행기 좌석부터 비교한다. 취미는 가볍게 시작하는 일이 아니라 어느새 일정 수준의 소비를 통과해야 입장할 수 있는 세계가 됐다.
자산 이야기는 더 심하다. 인터넷을 보다 보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모두 서울에 아파트 한 채씩 가지고 있고, 주식 계좌에는 몇 억씩 들어 있으며, 은퇴를 하려면 최소한 수십억은 있어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는 “10억으로는 서울에서 부자도 아니다”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순자산 30억은 돼야 경제적 자유”라고 말한다. 계속 듣다 보면 10억이 작은 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10억은 갑자기 작은 돈이 된 적이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숫자가 너무 커졌을 뿐이다.
SNS와 유튜브의 특징은 평범한 사람보다 극단적인 사람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월급 300만원을 받으며 평범하게 사는 사람의 하루는 조회수가 나오지 않는다. 서른 살에 자산 30억을 만든 사람이 등장해야 클릭하게 된다. 5km를 30분에 뛰는 사람보다 10km를 40분에 뛰는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동네 카페보다 호텔 라운지가 사진이 잘 나온다. 그렇게 상위 몇 퍼센트의 삶을 반복해서 보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평균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게 요즘 사람들이 느끼는 박탈감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실제로 부족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비교 기준을 너무 높은 곳에 올려놓아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예전보다 더 좋은 집에서 살고,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좋은 음식을 먹는데도 만족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기준이 계속 올라가기 때문이다. 5km를 완주했는데 기쁜 게 아니라 “나는 왜 25분 안에 못 뛰지?”라는 생각부터 한다. 돈을 모아도 “누구는 이미 20억이 있다는데”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올려치기 문화의 가장 무서운 점은 사치가 아니다. 사치를 하면 적어도 내가 사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다. 그런데 평균을 올려치기하면 자신이 부족하다고 믿게 된다. 남들이 모두 이 정도는 하고 사는 것 같은 착각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하지 않은 소비를 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투자를 하고, 취미마저 경쟁으로 만든다. 즐기려고 시작했던 일이 어느 순간 증명의 수단이 된다.
러닝을 하면서 나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게 됐다. 중요한 건 장비가 아니라 내가 계속 뛰고 있는가였다. 페이스가 조금 느려도 어제보다 조금 더 오래 뛰었다면 충분하다. 비싼 신발이 기록을 조금 줄여줄 수는 있어도 대신 뛰어주지는 않는다. 자산도 마찬가지다. 남의 계좌와 비교해서 많고 적음을 판단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세상에는 항상 나보다 돈이 많은 사람이 있고, 더 좋은 집에 사는 사람이 있고, 더 빠르게 뛰는 사람이 있다.
평균은 원래 가운데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보고 있는 평균은 이상하게 늘 꼭대기 근처에 있다. 그러니 아무리 올라가도 뒤처진 기분이 든다.
평균을 낮추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목표를 낮추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내가 바라보고 있는 기준이 정말 평균인지 한번쯤 확인해볼 필요는 있다. 5km를 뛰는 데 꼭 국가대표 장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평범하게 잘 사는 데 반드시 수십억의 자산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때로는 더 올라가는 것보다, 누가 내 평균을 자꾸 올려놓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이 먼저다.
/개그맨 겸 방송인 황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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