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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포커스] 가라앉는 잠수함들, 홀로 떠오른 고영표

입력 : 2026-08-21 12:39:42 수정 : 2026-08-21 12: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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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T 위즈 제공
사진=KT 위즈 제공

 

기계가 스트라이크와 볼을 가르는 시대에도 살아남았다. 진화를 멈추지 않는 ‘잠수함 에이스’ 고영표(KT)가 바로 주인공이다. 이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해졌다.

 

고영표는 20일 잠실 LG전에 선발 등판해 6이닝 6피안타(2피홈런) 1볼넷 6탈삼진 3실점을 기록했다. 팀이 16-4로 승리하면서 시즌 10승째도 챙겼다. 2021년(11승), 2022년(13승), 2023년(12승), 2025년(11승)에 이어 개인 통산 다섯 번째 두 자릿수 승리다.

 

그의 10승이 더욱 눈에 띄는 건 ‘잠수함 선발’ 자체가 희귀해졌기 때문이다. 불과 5년 전인 2021년 8월20일만 해도 10개 구단 1군 엔트리 내 투수 133명 가운데 우완 언더핸드·사이드암 투수는 18명(13.5%)이었다.

 

고영표를 필두로 엄상백(현 한화), 최원준(두산), 이재학(NC), 임기영(현 삼성) 등 선발로 활용되는 자원도 여럿이었다. 올해 같은 날 기준으로 보면 143명 중 7명(4.9%)에 불과하다. 그중 올 시즌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고 있는 투수는 현재 고영표뿐이다.

 

잠수함의 입지는 눈에 띄게 좁아졌다. 특히 2년 전 도입된 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ABS)은 이들에게 또 하나의 생존 과제를 던졌다.

 

낮은 릴리스 포인트에서 뿜어져 나온 싱커 혹은 체인지업을 무릎 근처와 바깥쪽 경계선에 걸치게 던지는 것은 잠수함 투수들의 전매특허 주무기일 터. 독특한 출발점에서 만들어지는 움직임으로 존 끝을 공략하고 타자의 방망이를 끌어내는 데 강점이 있었다.

 

사진=KT 위즈 제공
사진=KT 위즈 제공

 

ABS 시대에는 이를 살리기가 한층 까다로워졌다. 공의 움직임이 얼마나 절묘해 보이는지가 아니라 정해진 지점에서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는지가 판정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래로 가라앉는 구종은 홈플레이트 중간면과 끝면에서 모두 하단 기준을 충족해야 스트라이크가 된다. 낮은 경계선에 절묘하게 붙이는 것만으로는 좀처럼 이득을 보기 어려워진 셈이다.


설상가상 타자들의 대응 능력도 날이 갈수록 정교해졌다. 일정한 ABS 판정에 익숙해지면서 존 아래로 떨어지는 구종들을 이전보다 과감하게 골라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낮은 공으로 타자의 시선을 끌어내던 잠수함 투수들로선 매 타석이 골머리가 됐다. 타자들이 유인구를 쉽게 골라내자 볼카운트를 잡기 위해서는 결국 공을 스트라이크존 안으로 더 자주 넣어야 했다. 그만큼 타자가 노리고 칠 수 있는 공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고영표 역시 처음엔 고전을 면치 못했다. ABS 도입 첫해인 2024년 18경기서 6승8패 평균자책점 4.95에 머물렀다. 기존의 낮은 코스 위주 승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시선을 위로 돌렸다. 지난해부터 체인지업의 궤적과 피치 터널을 다듬은 데 이어 올해는 높은 존의 투심 패스트볼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커브 구종도 그립을 바꿔 스위퍼를 적극 활용하는 등 상하 폭을 넓혔다. 낮은 체인지업과 높은 투심과 커브를 오가며 타자의 눈높이를 흔드는 게 핵심이다.

 

사진=KT 위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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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거저 얻은 성공이 아니다. 익숙한 투구를 내려놓고 새 방식을 몸에 익히려면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훈련이 뒤따라야 했다. 특히 작은 감각 하나에도 투구 밸런스가 달라지는 투수에게 오랫동안 몸에 밴 방식에 손을 대는 일은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다.

 

그럼에도 고영표는 변화를 피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원래 변화를 주저하지 않는 편이다.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를 시도했고 실패와 경험을 거치며 지금까지 왔다”며 “ABS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큰 변화였다. 달라진 환경에 맞춰 매년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색깔까지 버린 것은 아니다. 고영표의 스트라이크 비율은 2021년부터 줄곧 7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도 72.0%로 공격적인 승부 기조는 여전하다. 대신 스트라이크존을 활용하는 방법이 달라졌다. 과거 낮은 코스에서 맞혀 잡는 데 능했다면 이제는 높은 존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헛스윙과 루킹 삼진을 동시에 끌어낸다.

 

사진=KT 위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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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표는 “ABS에 많이 적응했다고 생각한다. 높은 존에 투심을 던지면서 타자를 어렵게 하는 방법도 익혔다”며 “타자들은 낮은 체인지업을 생각하고 있는데 높은 패스트볼이 들어오면서 루킹 삼진도 많이 늘어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수치에서도 변화가 선명하다. 9이닝당 탈삼진은 2023년 5.87개에서 ABS가 도입된 2024년 7.11개, 지난해 8.61개를 거쳐 올해 9.76개까지 치솟았다. 전체 타석서 탈삼진 비율도 같은 기간 고공행진(16.1%→17.3%→22.5%→26.1%) 면모를 번뜩이는 중이다.

 

잠수함 투수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흐름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영표 역시 고개를 끄덕이는 대목이다. “사이드암 선발로 꾸준히 마운드에 서고 있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운을 뗀 그는 “앞으로도 ABS를 잘 활용하는 선발투수로 팬들에게 오래 기억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사진=KT 위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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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원 기자 johncorners@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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