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호프’는 외계인의 침입에 맞선 인간의 모습을 담은 장르 영화다. 그러나 나홍진 감독이 정작 다루고자 한 것은 이들의 싸움이 아니었다. 인간은 왜 자신과 다른 존재를 두려워하는가. 악의가 없는 행동도 다른 사람에게 비극을 안길 수 있는가. 모든 것이 무너진 뒤에도 인간은 무엇을 믿을 수 있는가. 나 감독은 이런 질문을 장르 영화 안에 담았다.
‘호프’는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이 동네 청년들에게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을 들으면서 시작됐다. 작은 소동으로 보였던 사건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나 감독이 처음부터 외계인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영화의 출발점에는 현실의 인간을 향한 질문이 있었다. “처음에는 사이코패스가 무엇인지, 왜 이런 사람이 생기는지 고민했다. 이런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생각했다. 계속 고민하다 보니 초자연적인 영역까지 갔다. ‘곡성’보다 더 멀리 가보고 싶었다. 인간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이 현상을 바라보는 존재가 필요했다. 그런 고민 끝에 외계인이 등장했다.”
쉽게 말하면 외계인은 이야기를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 집어넣은 존재가 아니었다. 인간을 인간의 눈으로만 바라보지 않기 위한 장치다. 인간보다 훨씬 먼 곳에 있는 존재를 등장시켜 인간의 행동을 거꾸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그래서 ‘호프’의 외계인은 처음부터 단순한 악당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관객 역시 영화 초반에는 이들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도록 했다. “처음에는 범석과 같은 시선으로 무언가를 보고 겪는다. 관객도 그 존재가 무엇인지 모른다. 어떤 장면에서는 웃음이 나올 수도 있다. 관객에게 일종의 죄의식을 심어주고 싶었다. 이후 여러 정보를 알게 된 상태에서 다시 충돌을 보게 된다. 그때 관객이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궁금했다.”
여기서 나 감독이 말한 ‘죄의식’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관객은 처음에는 인간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봤다. 정체를 모르는 존재가 공격받거나 죽는 모습을 보면서 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존재에게도 사정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앞서 아무 생각 없이 바라봤던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나 감독은 관객이 그 순간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를 바랐다. ‘나는 왜 아까 그 장면에서 웃었을까’라는 질문이었다. 외계인의 대사에 오랫동안 자막을 넣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전까지는 외계인들의 대사에 자막을 넣지 않았다. 누구도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다. 엔딩에 가서야 자막을 넣었다. 여기까지가 영화가 한 일이다.”
관객은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인을 인간의 눈으로만 판단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들의 말을 이해하게 되면서 사건을 바라보는 위치가 달라졌다. 결국 나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라는 단순한 구분이 아니었다. 상대의 이야기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내린 판단이 얼마나 쉽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 했다.
그는 그 답을 영화가 대신 내려주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관객은 모두 다르다. 종교도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다르다. 같은 장면을 보여줘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명확하게 설명하기보다 각자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권한을 드리고 싶었다. 이 영화는 누구에게 묻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본 관객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관객마다 ‘호프’는 모두 다를 것이다.”
한마디로 ‘정답은 이것이다’라고 말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나 감독은 400명의 관객이 영화를 보면 400개의 서로 다른 ‘호프’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봤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과 가치관이 다른 만큼 같은 사건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시선은 영화 속 목수 양배라는 인물에게도 이어졌다. 양배는 거대한 사건이 시작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러나 나 감독은 그를 전형적인 악인으로 만들지 않았다. “양배는 공간을 제공하는 사람이면서 원흉이다. 하지만 큰 악행을 일으킨 사람에게 반드시 거대한 악의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작은 행동 하나가 큰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그런 시선으로 바라봤으면 했다.”
‘호프’가 바라본 악은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었다. 영화 속 비극을 일으키려면 반드시 세상을 파괴하려는 악당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별다른 악의 없이 한 작은 행동도 다른 조건과 만나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나 감독은 ‘악한 사람’을 보여주는 대신 ‘악한 결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들여다봤다.
외계인의 모습 역시 이런 방향에 맞춰 만들어졌다. 관객이 등장과 동시에 외계인이라고 알아채지 않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딱 보는 순간 ‘외계인이다’라고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 ‘도대체 저게 뭐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를 바랐다. 외계인마다 신분과 역할, 출신이 다르다. 그런 설정을 바탕으로 디자인도 다르게 만들었다.”
관객이 처음부터 이들을 ‘외계인’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바라보지 않기를 바랐다는 의미다.
각 외계인에게도 서로 다른 배경을 만들었다. 서로 아는 사이일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진 존재일 수도 있었다. 인간에게 각자의 인생이 있듯 외계인에게도 각자의 이야기를 부여했다.
외계인 디자인에도 긴 시간이 들어갔다. 나 감독은 2018년부터 디자인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타블로이드지에서 볼 법한 익숙한 외계인의 모습에서 출발했다. 이후 디자인을 계속 바꾸고 배우와의 조화를 고려하며 현재의 모습까지 발전시켰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에도 의외로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나 감독은 휴대전화가 없는 시대가 필요했다고 밝혔다. 현대를 배경으로 하면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왜 휴대전화로 연락하지 않았느냐’는 설명이 필요해진다. 그는 이런 불필요한 설명을 덜어내고 사건 자체에 집중하기 위해 과거를 선택했다.
화면의 질감도 시대적 배경에 맞춰 설계했다. “와이드 렌즈를 많이 사용했다. 관객이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보는 느낌을 만들고 싶었다. 한 발이라도 영화 속 공간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끼기를 바랐다. 미술과 촬영, 액션, 카메라 움직임도 그런 방향으로 준비했다.”
관객이 사건을 멀리서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 바로 옆에 서 있는 사람처럼 느끼기를 원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넓은 화면을 보여주면서도 인물과 사건은 최대한 가까이 느껴지도록 촬영했다. 미술과 액션, 카메라 움직임 역시 같은 목표 아래 움직였다.
나 감독은 ‘호프’를 무엇보다 극장에서 체험하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극장 안에서 사운드와 비주얼의 도파민을 드리고 싶었다. 관객들이 느끼는 쾌감을 극대화하고 싶었다. 그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복잡한 메시지만 전달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장르 영화답게 보는 재미도 확실하게 주고 싶었다. 거대한 화면과 강한 사운드, 빠른 액션을 통해 관객이 먼저 영화에 빠져들게 한 뒤 그 안에서 인간에 대한 질문을 만나게 하는 방식이었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작업은 개봉 직전까지 이어졌다.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는데 아직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일반관에서 영화를 본 뒤 바로 사운드 믹싱을 수정했고 CG팀과 DI팀에도 연락했다. 하나라도 더 고치고 싶었다.”
좋은 평가를 듣고 안도하기보다 관객에게 보여줄 최종 결과물을 먼저 생각했다는 뜻이다. 특히 ‘호프’에서 음악과 음향의 비중이 큰 만큼 상영 환경에 따라 생기는 차이까지 줄이려고 했다. 일반 상영관에서 직접 영화를 확인한 뒤 사운드와 CG, 색보정 작업을 다시 살폈다. 2시간을 훌쩍 넘는 러닝타임도 그의 고민 끝에 나온 결과였다. 짧은 영상 소비에 익숙해진 시대에 영화가 너무 긴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농담부터 던졌다. “나는 짧으면 돈이 아깝던데.(웃음)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면 서사는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완성된 구조 안에 차별화된 요소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모두 담으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오히려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긴 영화를 좋아해서 러닝타임이 길어진 것은 아니었다. 나 감독은 새로운 사건을 만들고, 인물을 설명하고, 관객에게 충분한 정보를 준 뒤 다시 관점을 뒤집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다고 봤다. 그에게 러닝타임은 영화가 전달하려는 이야기에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긴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제목 ‘호프(Hope)’의 의미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모든 것이 침몰한 뒤 우리에게 무엇이 남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는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희망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간절한 희망이 믿음이 되고, 결국 확신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 감독에게 희망은 ‘좋은 일이 생기면 좋겠다’고 바라는 정도의 감정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무너진 뒤에도 무엇인가를 믿는 데까지 나아가야 진짜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영화에는 성경의 ‘믿음’이라는 개념도 들어갔다. 그는 희망보다 믿음이 몇 단계 더 나아간 의미라고 설명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존재의 부활을 이야기하는 마지막 장면도 같은 맥락에 놓였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기적이 일어났느냐만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결국 믿는 마음까지 도달하는 과정 자체가 ‘호프’의 결말이었다.
영화 제목이 어두운 이야기와 정반대로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호프’에서는 작은 행동이 거대한 비극을 불렀다. 인간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를 두려워했고, 서로의 입장을 알지 못한 채 충돌했다. 하지만 나홍진 감독은 영화의 제목을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정했다.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하나였다.
비극이 벌어진 다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 감독은 그 질문에 하나의 답을 내려주지 않았다.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만의 이해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드리고 싶었다. 결국 이 영화는 관객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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