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1일 경남 양산시의 낮 최고기온이 41.4도까지 올랐다는 뉴스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40도를 훌쩍 넘어선 숫자는 일기예보가 아니라 사우나 온도계에서나 보던 것이었다. 국내에서 근대적인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기온이라고 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숫자를 대하는 우리의 반응이었다. “정말 덥다”라고 한마디 한 뒤 에어컨의 온도를 낮추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기록적인 폭염이라는 말을 너무 자주 듣다 보니 이제는 기록조차 별로 기록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최고기온 기록이 발표되면 우리는 곧 다음 기록을 기다린다. 폭염 기록이 스포츠 기록처럼 해마다 경신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요즘은 아침에 눈을 뜨면 시간보다 먼저 기온을 확인한다. 무엇을 입을지 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과연 밖에 나가도 되는 날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실제 기온과 함께 체감온도가 표시된다. 실제로도 충분히 더운데 당신이 느끼기에는 더 더울 것이라는 친절한 경고까지 덧붙는다. 이제 여름철 외출에서 중요한 것은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아니다. 집에서 지하주차장까지, 자동차에서 건물 입구까지, 에어컨과 에어컨 사이의 거리가 더 중요해졌다.
한때 에어컨은 더울 때 잠깐 켜는 계절 가전이었다. 이제는 여름철 생명 유지 장치에 가깝다. 전기요금이 걱정돼 에어컨을 껐다가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돈보다 목숨이 중요하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거리로 나서면 상황은 더 분명해진다. 뜨거워진 아스팔트에서는 열기가 올라오고, 건물의 실외기에서는 뜨거운 바람이 쏟아진다. 사람은 더위를 식히기 위해 에어컨을 켜지만 도시는 그만큼 더 뜨거워진다. 나를 시원하게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더 뜨거운 바람을 맞아야 하는 기묘한 순환이다.
낮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밤이다. 과거의 여름은 아무리 더워도 해가 지면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틀면 늦은 밤에는 제법 서늘한 바람이 들어왔다. 지금은 해가 져도 더위가 퇴근하지 않는다. 낮 동안 열을 머금은 도로와 건물이 밤새 열을 뿜어낸다. 사람은 자야 하는데 도시는 계속 잔업을 한다. 열대야가 이어지면 잠이 부족해지고, 잠이 부족하면 사람의 성격도 조금씩 변한다. 사소한 말에 짜증이 나고, 냉장고 문을 괜히 오래 열어보고, 샤워를 마치자마자 다시 샤워하고 싶어진다. 폭염이 사람의 체온뿐 아니라 인내심까지 끌어올리는 셈이다.
우리는 매년 “올해가 유난히 덥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 말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기록적인 폭염이 몇십 년에 한 번 찾아오는 예외적인 사건처럼 여겨졌다. 이제는 최고기온 기록이 오래 보존되는 기록이라기보다 다음 기록이 나타날 때까지 잠시 머무는 숫자처럼 느껴진다. 여름이 더 뜨거워지는 것만도 아니다. 더위가 일찍 시작되고 늦게 끝난다. 봄과 가을은 점점 짧아지고 긴 여름과 긴 겨울 사이에 잠깐의 환절기만 남은 듯하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는 표현도 언젠가는 수정해야 할지 모른다.
최근 이런 문장을 자주 보게 된다. “오늘은 당신이 앞으로 보낼 여름 가운데 가장 시원한 여름이다.” 처음에는 다소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남 양산시에서 기록된 41.4도라는 숫자를 보고 나니 더 이상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늘의 더위가 견디기 힘들다고 말하지만 지금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면 몇 년 뒤 우리는 올해 여름을 오히려 시원했던 시절로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의 폭염이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 맞이할 여름의 예고편일 수 있다는 뜻이다.
폭염은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그 피해는 결코 공평하지 않다. 누군가는 냉방이 잘되는 사무실에서 올해 정말 덥다고 말하지만, 누군가는 뜨거운 도로와 공사장, 배달 오토바이와 비닐하우스 안에서 더위를 온몸으로 견뎌야 한다. 누군가에게 폭염은 불편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계와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이다. 냉방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 야외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 더위에 취약한 노인과 아이에게 폭염은 단순한 날씨의 문제가 아니다. 폭염 대책이 그늘막 몇 개와 생수 몇 병을 준비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기후 문제를 말하면 너무 거창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지구를 구하자는 말은 크고 멀게 들린다. 그러나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추상적인 지구가 아니다. 여름밤에 창문을 열 수 있는 일,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일, 야외 노동자가 목숨을 걸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일, 전기요금을 걱정하지 않고 에어컨을 켤 수 있는 일이다. 결국 기후 문제는 거대한 구호가 아니라 우리가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일상을 지키는 문제다.
“오늘이 당신이 보낼 수 있는 가장 시원한 여름이다”라는 문장은 경고로 끝나야 한다. 예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해의 더위를 어떻게 견딜 것인지와 함께 내년의 더위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지금보다 더 뜨거운 여름을 당연한 미래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은 단지 시원한 바람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평범한 여름의 풍경까지 함께 사라질지 모른다.
/개그맨 겸 방송인 황현희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단독] 김재중·김준수 다시 뭉친다](http://img.sportsworldi.com/content/image/2026/08/19//20260819516399.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