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얼떨떨해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죠. 깜짝 카메라에 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달 3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소지섭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지난 25일 종영한 SBS 금토드라마 ‘김부장’은 전국 23.0%, 순간 최고 27.1%를 기록하며 최종화를 장식했다. 10회 연속 동시간대 전 채널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자체 최고 순간 시청률을 경신하며 압도적인 흥행 신드롬의 마침표를 찍었다.
소지섭은 “시작과 과정, 결과까지 좋기가 쉽지 않은데 그 세 가지가 모두 맞아 떨어진 작품이다. ‘딸을 찾는 아빠’라는 새로운 캐릭터로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넓혀준 작품이라 더욱 감사하다”라고 종영 소감을 전했다.
◆아빠 유니버스의 반란…“민지야, 아빠 왔다”
주변에서는 ‘통쾌하다’, ‘쉽다’, ‘사이다 드라마다’ 등등 ‘김부장’의 흥행의 이유를 들었다. 이에 소지섭은 “부모 자식간의 사랑 이야기와 친구들의 우정이 시청자의 감정을 건드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하면서도 “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자녀가 있는 지인들의 연락은 물론 이웃들의 ‘엄지척’도 피부로 와 닿은 변화였다. “생전 눈인사만 하던 분들이 ‘김부장’을 이야기하며 엄지를 올려주시더라. 시청률과 별개로 반응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곳이 드물다고 생각했는데, 4부가 지나고는 확실히 달라졌다. 늘 다니던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반응이 달랐다”고 체감한 변화를 전했다.
‘김부장’엔 저마다의 방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딸의 얼굴이 새겨진 프린팅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딸바보’ 박진철(윤경호), 잘못을 바로잡는 원칙 있는 아빠의 모습을 그려낸 성한수(최대훈)이 있었다면 주강찬(주상욱)은 딸의 잘못을 덮기 위해 폭주하는 비뚤어진 부성애를 보여줬다.
김부장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딸 바보였다. 남파 공작원 출신의 탈북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딸을 얻었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민지의 아빠로 살아달라”는 아내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과거를 지우고 홀로 딸을 키우는 아빠로 살아왔다.
소지섭은 “김부장에게 딸의 실종은 천둥번개가 치는 것 같이 ‘쾅’하는 소리가 들리고 암흑 세계로 빠져가는 느낌이었을 것”이라고 비유했다. 민지가 살아있을 거란 희망을 놓지 않았고, 마침내 구출해냈다. “민지야 아빠 왔다. 집에 가자“라는 대사를 내뱉긴 쉽지 않았다. “그 짧은 대사에 모든 걸 다 담고 싶었다”는 그는 “고민도 많이 하고 연습도 하면서 그 장면을 만들었다”고 했다.
◆눈빛 장인 소지섭, 장르가 액션
넷플릭스 ‘광장’으로 느와르 액션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액션이 고팠다. 그 와중에 접한 ‘김부장’의 대본에는 액션물이지만 그 안에 가슴 아픈 서사가 담겨 있었다. ‘고등학생 딸을 둔 아버지’를 연기하는 소지섭은 어떨까 하는 생각과 시청자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동시에 생겼다.
느와르 장르를 선호하지만 작품 수가 드문 탓에 갈등을 느꼈던 그가 기다려온 작품이었다. 말보다는 눈빛과 액션으로 부딪혔다. 힘들고 위험한 촬영도 많았지만, 부상 없이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소지섭은 “평소 대본을 보면 신의 주인공, 감정, 신끼리의 연결 등에 집중하는 편”이라면서 “표출하기 보단 응축해서 눈빛으로 하는 연기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도 눈빛으로 전달하려 애썼는데, 쉽지는 않았다”고 털어놨다.
단벌 의상에 추위와의 싸움이었다. 특히 민지를 찾기 위해 냉동창고 주변에서 금이빨(조복래) 일당을 물리치는 장면은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추운데 비까지 왔다. 컷을 하면 땅이 바로 얼 정도로 추웠다”고 돌아본 소지섭은 “촬영할 때 몸 컨트롤이 안돼더라. 나중에는 연기안돼서 그 다음날 찍었다”고 말했다.
마지막회 케이지 안에서 3인방이 서로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은 액션보다 감정에 중점을 뒀다. 감독은 아이들이 인질이 되어 있는 최대훈, 윤경호에게는 솔직한 감정 표현을 요구했다. 소지섭은 “같이 서 있는 자체가 가슴 아픈 장면이다. 딸을 찾기위해 날 도와준 친구들의 자식들이 잡혀있는데, 내 딸은 안전히 있다는 게 쉽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아빠 된 소지섭, ‘김부장’의 관계도
딸 민지 역의 배우 서수민은 ‘김부장’으로 배우 데뷔에 도전했다. 결과는 대성공. 소지섭을 필두로 한 ‘아빠 유니버스’의 열렬한 보호를 받으며 ‘김부장’을 완주했다. 서수민과는 정확히 서른 살이 차이나는 아빠와 딸이었다. ‘내가 결혼만 빨리 했어도 너 만한 딸이 있는데’라는 중년의 농담 섞인 말이 맞아 떨어지는 나이차다. 알고보니 서수민의 아버지와 소지섭은 또래의 나이이기도 했다.
첫 촬영 때 어색함을 풀기 위해 사탕을 건네며 “잘 부탁한다”는 말을 전했다. 현장에서도 어색함이 감돌던 초반에는 사춘기에 멀멀한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비춰졌다. 처음에는 “선배님”이라고 부르던 서수민은 시간이 지나 “아부지”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감정이 쌓이면서 “아빠”라고 호칭을 달리했다. 소지섭은 “(아빠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몰입해서 나를 아빠로 생각해주는구나 조금 뭉클하더라”면서 “처음 연기하는데 너무 잘했다.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아직 자녀가 없는 소지섭에게 부성애는 상상 속 영역이었다. 반면 서수민은 아빠를 대하듯 몰입해 소지섭도 편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아빠의 마음에 대한 궁금증은 감독의 도움으로 조금씩 해소했다. 딸과 아빠는 어떤 사이일까 고민하며 ‘만일 아빠라면’이라는 가정을 매 순간 떠올렸다. 어색해지는 순간 어려움이 찾아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딸의 이성친구 남훈(카엘)과의 관계는 더 낯설었다. 소지섭은 “남훈이의 체육복을 발견하면 아빠는 누구 옷인지 추궁할지, 남자친구라고 혼자 생각하고 말지 고민했다. 후자를 택해 연기했는데, 감독님께선 ‘실제로 딸이 있으면 안 그럴거야’라고 말하시더라. 나는 아직 딸이 없으니 내 성향대로 선택했다”라고 답하며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국경을 넘은 우정을 보여준 박진철과 성한수, 그리고 김부장의 우정도 감동 그 자체였다. 친구의 딸을 위해 몸을 던지는 감동 코드와 더불어 무거운 극의 분위기를 환기해주는 신스틸러였다. 특임국과 주강찬 일당에서 연일 시달리면서도 적재적소에서 웃음을 퍼트렸다. 소지섭은 두 배우를 두고 “연기를 너무 잘 하는 친구들”이라고 추켜세웠다. 이어 “(윤)경호가 온몸으로 에너지를 뿜뿜한다면, (최)대훈이는 조리있게 말하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묵묵한 편이니 셋의 합이 너무 잘 맞았다”고 했다.
주상욱과의 액션 합에 대해서는 사무실에서 주강찬을 처단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하루 종일 때렸다”며 웃어 보인 소지섭은 “주상욱 배우도 캐릭터에 몰입되어 시원하게 맞아야 보는 사람들이 통쾌할 거란 걸 알고 있더라”면서 “네모난 사무실을 돌아가면서 맞았는데, 다음 날 보니 온 몸에 멍이 들었더라. 그런데도 행복해 하며 웃으며 촬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데뷔 30년, n번째 전성기
30년 째 연기하면서도 주연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업계의 변화도 적지 않다. “할 수 있는 배역이 줄어드는 것도 너무나 느끼고 있다. 그래서 작품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다. 같이 활동하던 친구들이 서서히 안보이면 안타깝기도 하고, 또래 배우들이 잘 되면 감사하기도 하다. 동지애가 있다”면서도 “대본을 보면 젊은 배우들과의 역할 구분이 되는 것 같다. 우리 또래가 할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가 많진 않으니, 장르성을 띈 작품을 선호하는 건 앞으로도 비슷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수많은 수식어 중에서도 ‘소간지’에 애정을 보였다. “예전에는 부담스러웠는데, 나에게만 불러주는 수식어라는 점에 감사했다”는 그는 ”작품을 보지 않는 젊은 친구들도 그 별명은 알더라”라고 만족감을 내비쳤다.
소지섭은 이번 작품을 함께한 스태프 전원에게도 금을 선물해 화제가 됐다. 금이 담긴 케이스에는 “이번 작품을 함께하며 큰 감동과 행복을 느꼈다. 언제나 묵묵히 각자의 자리에서 김부장을 빛내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는 문구가 각인됐다. 소지섭은 “주인공을 한 뒤론 선물을 하고 있다. 함께한 작품이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면서 “금이 반응이 좋더라”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돈도 선행도 내가 하는 만큼 돌아온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일단은 쓰고, 도와주면 어느 순간 나도 도움이 받을 거란 생각을 한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인터뷰 내내 그의 답변에는 동료 배우들은 물론 제작진과 스태프를 향한 배려와 존중이 있었다. 이래서 소간지, 소간지 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단단함 속에서도 여유가 묻어났다.
1995년 모델로 데뷔해 1997년 SBS ‘여자’로 배우의 길을 열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 차무혁 역을 맡아 ‘미사 폐인’을 양산해낸 신드롬에 이어 또 한 번 신드롬을 썼다. 데뷔 30년차에 다시 맞은 전성기다.
스스로 바라본 롱런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주인공을 한 지는 20년이 조금 넘었다. 그런데도 계속 찾아 주시고 봐주시는 걸 보면 나 역시 궁금하다. 잘 모르겠다”며 겸손한 답변을 내놨다. 대신 자신을 선택해 준 이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약속 시간은 최우선으로 시킨다. 그는 “웬만하면 먼저 가 있으려 한다. 시간 약속은 기본”이라며 “약속은 뱉는 순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공약도 쉽게 하지 못 한다”고 고백했다.
최고의 성적으로 첫 시즌을 마감한 ‘김부장’이기에 시즌2를 향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제작사와 방송사, 배우진까지 시즌2에 일찌감치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상태다. 마지막회에서 김부장은 한 인력사무실에 찾아가 새로운 캐릭터 이도규를 만난다. 딸을 찾기위한 아빠의 처절한 액션이 시즌1의 주된 내용이었다면, 시즌2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증을 높인다.
소지섭은 “시즌2가 나오면 또 딸을 잃어버릴 수는 없지 않겠나”라고 너스레를 떨며 “힘 있는 큰 줄기의 이야기가 나오길 바란다. (시즌1보다) 더 어렵고 새로운 액션이 나올 거라 생각한다”며 “아직까지 체력은 괜찮다. 영화 ‘테이큰’의 리안 니슨 같은 액션 배우의 느낌을 가져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포부를 빛냈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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