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은 원래 시끄러운 곳이다. 함성도 있고, 야유도 있고, 상대를 흔드는 응원도 있다. 경기의 열기는 때로 선을 넘을 듯 말 듯한 긴장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어떤 말은 응원이 아니라 상처가 된다. 어떤 농담은 장난이 아니라 조롱이 된다. 그리고 어떤 구호는 경기장 바깥의 오래된 아픔을 다시 불러낸다.
배재고 학생들이 광주일고를 향해 외쳤다는 ‘스타벅스’ 관련 구호 논란은 그래서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학생들이 정확히 어떤 역사적 맥락을 알고 외쳤는지, 어느 정도의 악의를 갖고 있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그 말이 왜 문제로 받아들여졌는지까지 모른 척할 수는 없다. 5·18은 누군가에게는 교과서 속 사건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기억이고 도시의 상처이며 한국 민주주의의 바닥에 남아 있는 피멍이다. 그런 기억을 야구장 응원가처럼 소비하는 순간, 말은 장난의 영역을 넘어선다.
다만 여기서 멈추면 또 다른 불균형이 생긴다. 잘못된 말은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비판이 미성년 학생 전체를 사회적 화형대에 세우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배재고라는 이름을 단 모든 학생이 같은 생각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 학교의 모든 구성원이 조롱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학교 앞에 비난이 쏟아지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위협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간다면,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또 다른 집단적 폭력에 가깝다. 혐오를 비판한다면서 또 다른 혐오의 언어를 동원한다면, 우리는 결국 같은 자리에 서게 된다.
이번 일을 두고 “아이들이 뭘 알겠느냐”고만 말하는 것도 부족하다. 반대로 “아이들이니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몰아붙이는 것도 답은 아니다. 학생들의 말이 어른들의 세계에서 배운 것이라면, 어른들은 먼저 자신들의 책임을 봐야 한다. 역사적 비극을 밈으로 만들고, 온라인 조롱을 유머로 소비하고, 정치적 편 가르기의 재료로 삼아온 것은 아이들만의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경기장에서 외친 말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떠돌던 언어가 교실과 운동장으로 흘러든 결과일 수 있다.
학교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학생을 보호해야 하지만, 보호가 곧 덮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표현이 왜 문제인지 설명하고, 상대 학교와 피해를 느낀 이들에게 사과하는 과정을 교육으로 만들어야 한다. 징계가 필요하다면 절차와 기준에 맞게 해야 한다. 그러나 징계의 목적은 낙인이 아니라 회복이어야 한다. 학생들이 평생 ‘그때 그 구호를 외친 아이들’로만 기억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잘못을 배울 기회를 빼앗는 처벌은 교육이 아니라 배제다.
광주일고 학생들과 관계자들의 상처도 분명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 정도 말도 못 하느냐”는 식으로 넘길 수 없다. 표현의 자유는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허가증이 아니다. 자유에는 늘 책임이 붙는다. 특히 상대가 가진 역사적 상처를 겨냥한 말이라면 더 조심해야 한다. 말할 자유가 있다면, 그 말에 대해 비판받을 책임도 있다. 다만 그 책임의 방식은 사회 전체가 흥분해서 한쪽을 몰아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무엇이 잘못됐는지 정확히 가르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만드는 방식이어야 한다.
결국 이번 사안의 핵심은 어느 학교가 나쁘냐, 어느 지역이 피해자냐, 어느 진영이 옳으냐가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언어를 물려주고 있는가. 우리는 역사적 상처를 어떻게 기억하게 만들고 있는가. 그리고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다시 공동체 안으로 데려올 것인가.
응원은 뜨거울 수 있다. 농담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뜨거움이 누군가의 아픔을 태워서는 안 되고, 농담이 누군가의 기억을 짓밟아서는 안 된다. 동시에 분노 역시 교육을 삼켜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은 아이들 몇 명의 일탈로만 끝낼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이들 몇 명에게 사회의 모든 분노를 떠넘길 일도 아니다.
야구장에서 시작된 이 소란은 우리에게 꽤 불편한 숙제를 남겼다. 말의 선을 가르치는 일, 역사의 무게를 설명하는 일, 잘못한 아이에게 책임을 묻되 다시 설 자리도 남겨두는 일. 그게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다. 아이들의 구호는 잘못됐지만, 그 잘못을 바로잡는 방식마저 틀린다면 우리 사회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못한 셈이다.
/개그맨 겸 방송인 황현희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