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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인터뷰] “부모가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순간, AI가 대체 못 해”

입력 : 2026-07-02 18:10:31 수정 : 2026-07-05 15:3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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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그림책 작가 라이마
‘불 뿜는 용’ 등 그림책 펴내며
타이완 최초 밀리언셀러 기록

작품 세계의 출발점은 가족
아이 키우며 느낀 감정 투영
세 자녀가 작품 읽고 피드백

아이들은 세밀하게 책 읽어
뛰어난 관찰력에 항상 긴장
장면 연결·세부 묘사 공들여

크레파스 이용한 손그림에서
컴퓨터 작업으로 도구 변경
영상·숏폼 등이 대세됐지만
함께 읽는 경험의 힘은 여전

“그림책을 함께 읽는 순간은 AI가 절대 대체할 수 없습니다.”

타이완의 밀리언셀러 작가 라이마 씨는 그림책의 힘을 이렇게 설명한다. 부모가 아이를 안고 책을 읽어줄 때의 표정, 아이가 이야기에 빠져드는 순간, 종이책을 넘기며 나누는 온기. 그에게 그림책은 아이 혼자 보는 책이 아니라 부모와 아이가 함께 머무는 시간이다.

라이마 씨가 국내에 처음 번역된 자신의 작품 불뿜는 용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타이완콘텐츠진흥원 제공
라이마 씨가 국내에 처음 번역된 자신의 작품 불뿜는 용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타이완콘텐츠진흥원 제공

최근 2026 서울국제도서전이 막을 내렸다. 올해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인간의 태도와 질문하는 힘을 뜻하는 ‘호모 두두리(Homo duduri)’를 주제로 열렸다. 지난해 주빈국으로 참여한 타이완은 올해도 자체 전시관을 열었다. 타이완 문화부 산하의 타이완콘텐츠진흥원(TAICCA)은 55개 출판사, 160여 종의 도서를 준비해 국내 독자들과 만났다.

타이완 첫 밀리언셀러 그림책 작가 라이마 씨도 한국을 찾았다. 라이마 작가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는 그림책을 만들어온 대표 작가로 꼽힌다. 국내에서도 ‘불 뿜는 용’, ‘열두 띠 동물 이야기’, ‘나는 누구일까요?’, ‘일찍 일어난 아침’, ‘파라파라산의 괴물’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방문에서는 북토크를 열고 어린이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라이마 씨가 자신과 가족을 그린 그림을 소개하며 미소짓고 있다. 정희원 기자
라이마 씨가 자신과 가족을 그린 그림을 소개하며 미소짓고 있다. 정희원 기자

◆“아버지가 만든 그림책”… 가족에서 출발한 이야기

도서전에서 만난 라이마 씨는 자신을 그림책 작가이기 전에 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라고 소개했다. 특히 자신의 작품 세계는 가족과 함께 자라왔다고 강조했다. 결혼 전에는 일상 속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이야기의 씨앗이 됐다면, 결혼 후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들려준 말, 아이들과 잠들기 전 함께 나눈 상상, 가족과의 생활 자체가 출발점이 됐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는 아이를 키우며 관찰한 감정과 가족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대만 독자들이 그의 책에서 ‘아버지가 만든 그림책’의 온기를 느낀다고 말하는 이유다.

‘화를 잘 내는 왕자’, ‘우는 걸 좋아하는 공주’ 같은 작품들은 아이들의 모습과 생활에서 영감을 받았다.

라이마 씨가 첫 아이가 태어난 시기에 발표한 ‘가장 최고의 선물’을 소개하고 있다.
라이마 씨가 첫 아이가 태어난 시기에 발표한 ‘가장 최고의 선물’을 소개하고 있다.

◆가장 엄격하고 솔직한 평론가, ‘가족’

 

지금도 가족은 그의 창작 과정에 참여한다.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 세 자녀는 “그림이 이렇게 그려졌으면 좋겠다”, “스토리가 별로다”, “이 단어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아버지에게 솔직한 피드백을 준다. 라이마 씨는 “책을 다 쓰고 나면 가족의 심사를 거치는 셈”이라고 말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선물’(아직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았다)을 꼽았다. 첫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만든 책이다. 이 작품은 동물들이 잔칫날 선물을 주러 가는 이야기다. 그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가장 큰 선물은 아이’라는 것이었다.

◆용·기린·오소리… 이야기 따라 태어나는 동물들

 

라이마 씨의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동물 캐릭터다. 용, 기린, 호랑이, 오소리 등 다양한 동물이 귀엽고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캐릭터를 정할 때 먼저 이야기를 생각한다고 했다.

라이마 씨는 “중요한 것은 동물의 특징을 명확하게 살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그림책을 매우 자세히 보기 때문이다. 그는 “만약 동물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부모에게 ‘이건 무슨 동물이야?’라고 묻는다. 부모가 답하지 못하면 출판사에 문의가 들어오기도 한다. 결국 작가가 다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며 웃었다.

라이마 씨가 북토크에서 만난 박시은 어린이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정희원 기자
라이마 씨가 북토크에서 만난 박시은 어린이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정희원 기자

◆속일 수 없는 ‘아이들의 눈’

 

아이들의 관찰력은 작가를 긴장하게 만든다. 앞장에서는 파란 바지를 입은 동물이 뒷장에서는 초록 바지를 입고 있다면 아이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왜 바지 색깔이 바뀌었느냐”고 묻는다. 라이마 씨는 “아주 흔한 일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분명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세밀하게 그림책을 읽는다”고 했다. 작가가 장면의 연결성과 세부 묘사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불 뿜는 용’에 담긴 감정 조절법… 부모와 아이 함께 성장하기

감정도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축이다. 예를 들어 ‘불 뿜는 용’은 화를 잘 내는 용 ‘버럭이’가 모기 ‘앵앵이’에게 물려 입만 열면 불을 뿜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화를 불꽃에 비유해 감정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그는 “아이가 화를 내는 것은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그는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다루고, 아이에게 감정을 어떻게 알려줘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보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라이마 씨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정희원 기자
라이마 씨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정희원 기자

◆수채화 붓 내려놓고 디지털 마우스 잡은 ‘육아 대디’

라이마 씨에게 그림은 곧 이야기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림을 통해 전해지는 감정과 서사가 있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창작을 고통스러운 일로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은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친구 같은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다. 긴 시간을 들여 만든 작품이 세상에 나오고, 독자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 큰 성취감을 느낀다고 했다.

작업 방식도 삶의 변화에 따라 달라졌다. 결혼 전에는 크레파스와 수채화 등으로 손그림을 그렸다. 선 하나를 긋기 전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를 마시며 준비할 만큼 신중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결혼 후 육아가 일상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컴퓨터 작업으로 옮겨갔다.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생활 속에서 수정과 색 변경이 쉬운 디지털 작업은 그에게 더 현실적인 방식이었다.

◆시간으로 빚어낸 ‘100번 봐도 질리지 않는 책’

그림책 한 권을 완성하는 데는 보통 1년에서 3년이 걸린다. 반복해서 그리고, 디테일을 고치고, 다시 살피는 시간은 작가에게 수련의 과정이다. 그는 시간과 공을 들여야 100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책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AI가 넘볼 수 없는 함께 읽는 행복

영상과 숏폼 콘텐츠가 아이들의 시간을 빠르게 차지하는 시대에도 그는 그림책의 가치를 믿는다. 라이마 씨는 그림책의 가장 큰 힘을 “함께 읽는 경험”이라고 했다. 부모가 아이를 안고 책을 읽어줄 때의 표정, 아이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순간은 AI가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에게 그림책은 반드시 무언가를 가르치기 위한 책이 아니다. 종이책을 넘기고, 부모의 목소리를 듣고, 같은 장면을 함께 바라보는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 부모는 그림책을 통해 아이를 더 이해하고, 아이는 부모와 소통한다. 그 자체가 행복한 일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자신의 책을 처음 펼치는 독자들이 “그냥 즐겁고 행복한 마음을 크게 느껴주셨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러면서 “독자가 즐거우면 작가도 함께 즐거워진다. 그 피드백이 다음 작품을 만드는 힘이 된다”고 말하며 미소지었다.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라이마는 1968년 타이완에서 태어났다. 30년 창작 생활을 통해 그림책 15권, 챕터북 5권을 썼다. 그의 책은 전 세계에서 500만부가 판매되고, 뮤지컬과 연극으로도 리메이크됐다. 타이완 최고 권위의 ‘연합보 독서인 최우수 그림책’, ‘중국 시보 개권 최우수 그림책’, ‘중화아동문학상’ 및 ‘국어일보사 목동피리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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