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국내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신작 SF영화 ‘디스클로저 데이’가 이제 흥행 마무리 단계다. 개봉 보름 남짓한 27일이 되니 일간 흥행 순위는 16위까지 내려갔고, 일일 관객 수도 1000명 대로 내려앉았다. 누적 관객 수는 25만4583명. 무려 ‘스필버그 영화’가 선방한 독립영화 수준 흥행으로 마무리되는 현장이다. 그리고 그 패인은 단적으로, 영화에 대한 국내 관객들 입소문이 가히 최악 수준으로 떨어진 데 있다고 봐야 한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영화페이지 기준 ‘디스클로저 데이’는 실관람객 평점이 10점 만점에 5.65점, 네티즌 평점도 5.73점에 그친다. 동 시기 경쟁작들인 ‘군체’ ‘백룸’ ‘와일드씽’ 등이 7~8점대인 데 비해 크게 떨어진다. 흥미로운 건 이처럼 낮은 만족도의 원인이 되는 관람평 부분이다. “스필버그도 결국 ‘올드’해졌다”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접근과 감수성 등 다양한 지점에 걸쳐 낡고 진부하며 과거 히트작들 되새김질 같단 평가가 주류다.
이 같은 평가는 일면 당연하기도 하고, 그만큼 가혹하단 인상도 든다. 스필버그는 현재 나이 79세다. 출세작 ‘죠스’가 지난해 50주년 기념행사를 마친 터다. 이 정도 나이대 감독 신작을 보러 가는 일은, 마틴 스콜세지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신작에 대한 입장처럼, 노장의 원숙함을 지켜보자는 것이지 신선함이나 날카로움을 기대해선 곤란하다. 다만 스필버그는 상업 장르영화 귀재로 명성을 얻은 탓에 위 다른 노장들과는 기대 방향이 달랐던 게 문제라면 문제다.
특기할 만한 점을 또 꼽자면, 사실 스필버그 영화에 대해 ‘올드’하단 평가가 내려진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란 점이다. 무려 37년 전인 1989년 작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부터도 저 ‘낡았다’는 평가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당시 연간 흥행 1위를 차지했던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과 비교되면서 더더욱 그랬다. 신선하고 도발적인 버튼의 감각에 비해 스필버그는 그저 오랜 공식을 답습하고 있을 뿐이란 비평이 빗발쳤다. 이후 스필버그는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뮌헨’ 등 진지한 주제의 ‘아카데미상 겨냥 영화’ 중심으로 선회하면서 저 ‘‘올드’한 감각’ 비판을 피해 나갔고, ‘디스클로저 데이’ 같은 상업 장르영화는 꽤 오랜만이다.
그럼 ‘죠스’부터 대략 15년 정도 ‘상업영화의 신’으로서 전성기를 구가했던 스필버그의 특이점, 그 전후로 시대가 갈릴 정도 독보적이었던 면모는 또 뭐였을까. 많이들 ‘블록버스터의 효시’로 평가받는 ‘죠스’를 거론하며 블록버스터의 아버지 격이란 점에 주목하곤 하지만, 사실 배급 형태를 놓고 이름지어진 블록버스터 개념은 스필버그가 창안한 것도 아니고 그의 손 바깥, 영화산업이 진화하며 벌어진 일이다. 온전히 스필버그 개인에 주목하자면, 그는 1970년대를 휩쓴 ‘대학 영화과 출신’ 감독 군 일원으로서 시대를 열어간 인물이란 점에 방점이 찍힌다.
1970년대 이전까지 영화감독은, 일단 제작 현장에 투신해 다양한 보조업무를 도맡다 ‘현장 베테랑’으로서 감독으로 지정되는 경우를 제외하자면, 연극 등 무대극 연출가 출신 중심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 영화문법을 열어젖힌 ‘시민 케인’의 오손 웰즈부터 ‘워터프론트’의 엘리아 카잔, ‘졸업’의 마이크 니콜스 등에 이르기까지 예는 무수히 많다.
미국 외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외침과 속삭임’의 잉그마르 베리만도 마찬가지로 연극연출가 출신이고, 홍콩 등 중화권에서 영화감독을 표기할 때 ‘도연(導演)’이란 단어를 쓰는 것으로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말 그대로 ‘연기 지도’란 의미다. 곧 영화감독의 중심 역할은 무대극 연장선에서 대사와 동선 등을 포함한 전체적 배우 연기를 지도하는 것이었고, 촬영 등 영화를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은 촬영감독 등 전문인력에 일임하는 형태였단 점을 가리킨다.
그러던 것이 스필버그 외에 ‘대부’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택시 드라이버’의 마틴 스콜세지,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 등 대학 영화과 출신들이 1970년대에 대거 스타 감독 반열에 오르면서 감독 역할에도 차이가 생겼다. 영화를 시각적 문법으로 구성된 예술로서 규정하고 그 테크닉 중심으로 학습한 이들이 영화계 중심이 되자, 감독은 ‘영상을 통제하는 역할’이란 식으로 역할론이 뒤바뀌게 된다. 그렇게 ‘카메라를 잘 아는 감독’들, ‘편집에 능한 감독’들이 할리우드를 장악하기 시작하며 세계 영화계 판도가 뒤바뀐다.
물론 그에 대한 업계 내 반발이 없었던 건 아니다. 또 다른 대학 영화과 출신 감독 로버트 제멕키스가 출세작 ‘로맨싱 스톤’을 연출할 당시만 해도 주연배우 캐슬린 터너는 “영화학교 출신들은 관심이 전부 카메라에만 쏠려있어 배우들 연기엔 도통 관심이 없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는 이미 상업영화 노선에서 화려한 시청각적 경험 쪽으로 흐르고 있었고,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런데 ‘대학 영화과 출신’ 감독들 전성시대 이후론 상황이 한층 복잡해진다. ‘블레이드 러너’의 리들리 스코트를 필두로 CF 감독 출신들, 1980년대 MTV 등장 이후론 그곳에서 길러진 데이비드 핀처 등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들, 그리고 앞선 팀 버튼처럼 애니메이터 출신들도 대거 장편영화 메가폰을 쥐게 된다. 그렇게 한층 감각적인 영상을 선보이는 이들이 1980~90년대 스타 감독 자리를 꿰차면서 ‘스필버그 전성시대’도 한풀 꺾이게 됐단 순서.
다시 ‘디스클로저 데이’로 돌아가 보자. 사실 ‘디스클로저 데이’가 그토록 빗발치게 ‘올드’하단 비판을 받은 데엔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이번엔 또 전혀 다른 경로인 ‘유튜버 출신 감독’들이 장편 영화계 입성해 ‘백룸’ ‘집착’ 등으로 어마어마한 흥행을 기록한 탓도 있을 듯싶다. 또 다른 새로운 감각이 선보여지며 한 번 더 ‘페이지’가 넘어가 버린 인상이니 스필버그는 그만큼 더더욱 ‘올드’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단 것이다.
사실 ‘디스클로저 데이’에 대한 비평계 액면 평가는 생각보다 그리 나쁘진 않다. 현재까지 로튼토마토에서 호평률 80%, 메타스코어도 74점이다. 그만하면 ‘수작’에 속한단 평가. 그러나 더 이상 상업영화 ‘최전선’이란 인상이 안 드는 것도 분명하다. 지금 과도한 ‘디스클로저 데이’ 및 스필버그 비판은, 스필버그가 오랜 기간 지니던 저 ‘최전선’이란 인상이 크게 무너진 데 따른 충격과 실망이라 봐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여전히 엔터테인먼트로서 가치는 있지만, 대중이 스필버그에 기대하던 건 ‘그런 것’은 아니었단 방증이 되기도 하겠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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