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자동차 판매를 넘어 문화 콘텐츠를 활용한 브랜드 경험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전시와 예술, 스포츠, K컬처, 캐릭터 콘텐츠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업하며 소비자 접점을 넓히는 모습이다. 과거 신차와 기술력을 알리는 데 집중했던 마케팅에서 벗어나 브랜드 자체를 하나의 문화 플랫폼으로 확장하려는 전략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기차 전환과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완성차 업계의 경쟁 무대도 변화하고 있다. 차량 성능만으로 차별화를 이루기 어려워지면서 브랜드가 제공하는 경험과 문화적 가치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0여년간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확대해 왔다. 최근에는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캐릭터 산업까지 영역을 넓히며 브랜드 경험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현대모터스튜디오로 시작된 변화
현대차그룹의 문화 플랫폼 전략은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본격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4년 서울 강남에 문을 연 현대모터스튜디오는 자동차 전시장이 아닌 브랜드 체험 공간을 표방했다. 차량 판매보다 디자인과 기술,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기획됐다.
이후 현대차는 고양과 부산 등으로 거점을 확대했다.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은 자동차 제조 공정과 시승 체험을 결합한 공간으로 운영됐고, 부산은 디자인과 문화 전시에 초점을 맞췄다. 당시만 해도 자동차 전시장을 문화공간처럼 운영하는 사례는 국내에서 흔치 않았다. 현대차는 이를 통해 자동차를 구매하지 않는 소비자들도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었다. 업계에서는 현대모터스튜디오를 현대차 문화 마케팅 전략의 출발점으로 평가한다.
◆글로벌 예술 후원 확대
현대차는 문화 플랫폼 전략을 해외로도 확장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 테이트 미술관(Tate), 미국 LA카운티미술관(LACMA), 국립현대미술관(MMCA) 등과의 장기 파트너십이다. 단순 전시 후원을 넘어 현대미술 프로젝트와 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글로벌 문화 생태계에 참여하고 있다.
2016년 시작된 VH AWARD도 대표 사례다. 아시아 지역 미디어 아티스트를 발굴·지원하는 프로젝트로, 현대차는 이를 통해 기술과 예술을 연결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최근에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 참여도 정례화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미래 모빌리티와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한 설치미술과 전시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디자인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있다.
과거 자동차 기업들이 모터쇼를 중심으로 브랜드를 알렸다면 현대차그룹은 세계적인 디자인·예술 무대를 새로운 소통 창구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스포츠 마케팅 및 로봇·미래기술도 콘텐츠로
현대차그룹의 스포츠 마케팅도 단순 후원에서 브랜드 스토리텔링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현대차는 FIFA, UEFA 등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 후원을 오랫동안 이어왔다. 최근에는 선수 개인의 스토리와 브랜드 메시지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손흥민 선수와의 협업이다. 현대차는 손흥민을 활용한 글로벌 캠페인을 통해 도전과 성장, 지속적인 혁신이라는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기아 역시 스포츠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후원을 비롯해 NBA, e스포츠 등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콘텐츠 영역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업계에서는 스포츠가 국경을 초월해 소비자와 감성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콘텐츠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한다.
기술 자체도 문화 콘텐츠로 활용하고 있다. 2021년 인수한 미국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대표적이다. 현대차그룹은 로봇 기술을 산업용 장비로만 소개하는 대신 다양한 영상 콘텐츠와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최근 공개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관련 콘텐츠 역시 기술 시연을 넘어 미래 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담는 방식으로 제작되고 있다. 자동차 기업이 기술을 단순한 기능이 아닌 문화 콘텐츠로 재해석하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K컬처와 캐릭터까지 손잡은 현대차그룹
현대차는 BTS와 협업해 친환경 캠페인을 진행했고, 다양한 글로벌 콘텐츠 프로젝트에 참여해 왔다. 최근에는 한국 문화 자체를 브랜드 자산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기아는 국내외 음악 페스티벌과 문화행사를 후원하며 젊은 소비자층과의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K-팝과 K-드라마, K-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면서 자동차 브랜드 역시 한국 문화의 확장성과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얼마 전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인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 후원과 함께 시대 배경에 딱 맞는 고전차종인 스텔라를 지원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캐릭터 콘텐츠 활용이다. 현대차는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캐치! 티니핑’과 협업한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자동차 브랜드와 키즈 콘텐츠의 결합은 기존 자동차 마케팅에서는 보기 어려운 시도였다. 현재 고객뿐 아니라 미래 소비자까지 브랜드 경험의 범위를 넓히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글로벌 브랜드들은 소비자의 어린 시절 경험이 장기적인 브랜드 호감도로 이어진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차 역시 가족 단위 고객과 어린이 소비자층까지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자동차 회사에서 문화 기업으로
문화 마케팅은 이제 단순한 홍보 활동을 넘어 브랜드 전략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현대모터스튜디오 출범을 시작으로 글로벌 예술 후원, 디자인 위크 참여, 스포츠 마케팅, 로봇 콘텐츠, K컬처 협업, 캐릭터 전시까지 이어지는 흐름은 자동차 기업의 역할 변화와 맞닿아 있다.
전동화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자동차 브랜드의 경쟁력은 차량 자체보다 소비자 경험과 브랜드 가치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현대차·기아가 최근 보여주는 행보는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디자인과 예술,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미래기술을 연결하는 문화 플랫폼으로 진화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만나는 공간도 전시장과 광고를 넘어 전시회, 공연장, 스포츠 경기장, 온라인 콘텐츠로 확대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자동차 회사들은 차만 파는 기업이 아니라 문화를 만들고 경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변하고 있다”며 “현대차·기아의 최근 행보는 이러한 산업 변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김재원 기자 jkim@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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