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사의 표명, 그리고 한국 축구대표팀의 5골 대승.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앞둔 한국 축구가 분위기 반전의 변곡점을 찍었다.
스스로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 회장의 사퇴 예고는 월드컵을 앞두고 잃어버린 민심을 되찾기 위한 특단의 조치다. 북중미 월드컵이 10여 일 앞으로 다가왔으나, 대표팀을 향한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서 잡음을 빚은 까닭이다. 정 회장과 홍명보 감독에 대한 팬들의 분노는 점점 커졌고, 지지와 응원의 목소리는 줄었다.
결국 정 회장은 사퇴 의사를 밝혔다. 정 회장은 지난 29일 성명서를 내고 “이번 월드컵 이후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며 “여러 가지 논란과 비판이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 제 부덕의 소치”라고 전했다.
대표팀을 향한 냉랭한 시선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한국 축구의 심장’ 서울월드컵경기장의 빈자리가 늘었다. 6만6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으나, 지난해 10월 파라과이전과 11월 가나전 관중은 각각 2만2206명과 3만3256명에 그쳤다. 관중석 곳곳에 ‘정몽규 나가’라는 걸개가 걸리기도 했다.
이번 사의 표명으로 13년 만에 정 회장 체제가 막을 내리게 됐다. 정 회장은 2013년 제52대 회장으로 취임, 장기집권했다. 지난해 4선에도 성공했다. 분명한 업적도 있었으나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시도, 위르겐 클린스만과 홍 감독 선임 과정에서의 절차적 논란 등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나서 정 회장과 협회 주요 인사들에게 중징계를 요구하기도 했다. 협회는 법의 심판을 받겠다고 선언했지만, 문체부 손을 들어준 1심 결과에 불복하고 항소하기로 했다. 다만 정 회장은 이 과정서 스스로 물러나기로 했다.
정 회장의 사의로 모든 논란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축구팬들의 평가는 여전히 냉정하다. 정 회장의 최종 성적표는 월드컵이 끝난 뒤에야 매겨질 전망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그라운드에도 긍정적 바람이 분다. 대표팀은 31일 미국 유타주 프로보의 브리검영대 사우스필드에서 끝난 트리니다드토바고와의 평가전에서 5-0으로 승리했다. 오랜만에 마주한 화끈한 골 잔치. 기대감을 끌어올릴 수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월드컵을 앞두고 얼어붙었던 한국 축구가 행정과 경기력 양 측면에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내다봤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는 남은 기간 해내야 할 과제가 많다. 정 회장은 오는 9일 멕시코 과달라하라로 출국한다. 대표팀 경기와 결승전 등을 현장에서 관람할 예정이다. 현장에서 선수단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꼼꼼히 살피고 지원해야 한다. 동시에 국제 축구계에 구축한 네트워크를 차기 지도부가 이어받을 수 있도록 정리하는 작업도 남아 있다. 협회는 정 회장이 추진하던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개최 도전 사업 등을 이어갈 예정이다.
한국 축구 역사에 남을 정몽규 체제 13년의 마지막 페이지는 아직 비어 있다. 정 회장의 이름 뒤에 붙을 수식어는 월드컵에서 그가 남길 발자국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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