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용하다. 예전 같으면 월드컵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조 편성은 어떻게 됐는지, 첫 경기는 언제인지, 16강 가능성은 있는지, 새벽 경기는 어디서 볼 것인지가 자연스럽게 화제가 됐다. 축구를 평소에 챙겨보지 않던 사람들도 월드컵 때만큼은 대표팀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월드컵은 분명 다가오고 있는데, 한국 사회의 온도는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다.
이 조용함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실망에 가깝다. 팬들이 축구를 싫어하게 된 것이 아니라, 한국 축구를 향한 기대를 잠시 접고 있는 것이다. 월드컵이라는 세계 최대의 축구 축제 앞에서도 사람들이 선뜻 마음을 열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표팀 경기력에 대한 불안, 축구를 둘러싼 여러 선택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반복되는 잡음에 대한 피로감이 겹쳐져 있다. 축구를 보고 싶은 마음은 남아 있지만,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예전만큼 쉽게 올라오지 않는 것이다.
월드컵은 원래 설명이 필요 없는 이벤트였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뛰면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마음을 보탰다. 경기력이 조금 부족해도, 상대가 강해도 괜찮았다. 중요한 것은 납득 가능한 과정이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 분명한 방향성, 선수와 팬이 함께 가고 있다는 감각이 있으면 팬들은 결과와 상관없이 응원했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는 결과 이전에 과정이 흔들렸다는 데 있다.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어떤 축구를 하려는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팬들이 등을 돌리는 순간은 패배했을 때가 아니다. 납득하지 못할 때다.
최근 한국 축구를 둘러싼 분위기는 예전만큼 뜨겁지 않다. 중요한 경기가 있어도 예전처럼 온 나라가 먼저 달아오르지는 않는다. 대표팀 소식이 나와도 반응은 크지 않고, 경기 결과보다 경기 내용에 대한 아쉬움이 더 자주 남는다. 이겼는데도 개운하지 않고, 졌을 때는 불안이 더 커진다. 단순한 승패의 문제가 아니다. 경기 안에서 “이 팀은 이렇게 싸우려는구나”라는 그림이 보여야 하는데, 많은 팬들은 아직 그 그림을 또렷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팬들은 결과만 요구하지 않는다. 이기기만 하면 모든 것이 괜찮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팬들이 가장 예민하게 보는 것은 과정이다. 어떤 기준으로 팀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준비하고 있는지, 경기마다 무엇이 나아지고 있는지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과정이 보이면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과정이 흐릿한데 결과까지 흔들리면, 팬들은 더 이상 박수를 보낼 이유를 찾기 어렵다.
스포츠에서 신뢰는 경기장 밖에서 먼저 만들어진다.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뛰는 동안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준비와 선택들이 쌓여 있어야 한다. 팀의 방향을 정하고, 필요한 결정을 내리고, 팬들에게 납득 가능한 설명을 해주는 일도 모두 경기의 일부다. 그런데 그 과정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으면 모든 선택은 의심의 대상이 된다. 누구를 세워도 말이 나오고, 어떤 결과가 나와도 질문이 남는다. 대표팀의 경기력은 그라운드 위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뢰받는 과정, 납득 가능한 선택, 책임 있는 태도 위에서 만들어진다.
지금 팬들이 차가운 이유는 냉정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오래 기대했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을 통해 수많은 기억을 만들었다. 밤잠을 줄여가며 응원했고, 골 하나에 울고 웃었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뛰는 선수들을 보며 마음을 보탰다. 팬들은 늘 대표팀 편이었다. 하지만 팬심도 무한한 자원은 아니다. 실망이 반복되면 열정은 분노가 되고, 분노가 오래가면 결국 무관심이 된다. 지금 한국 축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비판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비판은 아직 관심이 남아 있다는 뜻이지만 무관심은 마음이 떠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특히 월드컵을 앞둔 이 시점의 조용함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월드컵은 보통 팬심을 되살리는 가장 강력한 이벤트다. 평소 축구에 실망했던 사람도 월드컵이 다가오면 다시 대표팀을 바라본다. 그런데 그 월드컵 앞에서도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이것은 단순한 홍보 부족이나 일정 문제로 설명하기 어렵다. 팬들이 “이번에는 한번 보자”가 아니라 “이번에도 또 비슷하겠지”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뜻일 수 있다. 기대가 사라진 자리에는 냉소가 들어온다.
물론 대회가 시작되면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 첫 경기가 열리고, 대표팀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납득할 만한 승부를 펼친다면 사람들은 다시 움직일 것이다. 월드컵은 여전히 강력한 무대다. 공 하나가 골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식어 있던 감정도 되살아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동으로 주어지는 관심이 아니다. 지금의 한국 축구는 팬들의 마음을 다시 얻어야 한다. 월드컵이라는 이름만으로 응원이 따라오던 시대는 지났다.
팬들이 원하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이기라는 요구만 하는 것도 아니다. 제대로 준비하라는 것이다. 납득할 수 있게 보여달라는 것이다.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고, 과정이 분명했음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경기장 안에서는 설득력 있는 축구를 보여주고, 경기장 밖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태도를 보여달라는 것이다. 팬들은 바보가 아니다. 결과가 나빠도 과정이 좋으면 기다릴 줄 안다. 하지만 과정이 흐릿한데 결과까지 흔들리면, 팬들은 더 이상 마음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
한국 축구가 다시 뜨거워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믿어달라”는 말보다 중요한 것은 믿을 수 있는 행동이다. “응원해달라”는 말보다 중요한 것은 응원하고 싶게 만드는 경기력이다. “월드컵이니까 함께하자”는 말보다 중요한 것은 왜 함께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태도다. 팬심은 요청한다고 돌아오지 않는다. 설득해야 돌아온다.
이번 월드컵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이유는 그래서 분명하다. 월드컵의 매력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축구의 힘이 약해진 것도 아니다. 문제는 한국 축구가 팬들에게 충분한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데 있다. 경기력은 불안하고, 과정은 흐릿했고, 팬들은 피로해졌다. 예전 같으면 월드컵이라는 말 하나로 끓어오르던 마음이 이제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늦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팬들이 완전히 떠났다면 실망도 하지 않는다. 비판도 하지 않는다. 지금의 차가운 시선은 어쩌면 마지막 기대일 수 있다. “이번에는 달라져야 한다”는 요구이자, “아직 돌아올 마음은 남아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한국 축구가 해야 할 일은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월드컵은 곧 온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은 단순히 조별리그를 통과하느냐, 몇 골을 넣느냐만의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한국 축구가 팬들의 마음을 다시 붙잡을 수 있느냐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팬들은 대표팀을 응원하고 싶다. 다만 아무 설명 없이, 아무 변화 없이, 예전처럼 무조건 뜨거워지기를 요구받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지금 한국 축구에 필요한 것은 함성이 아니라 신뢰다. 응원가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납득이다. 팬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 이유를 정확히 봐야 한다. 팬들은 축구를 떠난 것이 아니다. 한국 축구가 자신들을 설득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월드컵이 심상치 않은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월드컵이 가까워졌는데도 조용한 나라. 그 조용함 속에는 한국 축구를 향한 가장 큰 경고음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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