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레이션, 인터뷰 과감히 배제
2024년 12월3일,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비상계엄 선포의 현장을 담은 시네마틱 다큐멘터리 란 12.3의 흥행 기세가 매섭다. 28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 작품은 지난 22일 개봉 이후 5일 만에 누적 관객수 13만3648명을 기록했다. 개봉 첫 주 관객 동원수로는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6위다. 역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1위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의 개봉 1주차 누적 관객수(6만8848명)를 뛰어넘는 수치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형사: 듀얼리스트(2005), M(2007)을 통해 영화계 거장으로 불리는 이명세 감독은 스스로 “신인 (다큐) 감독”이라 소개했다. 24일 이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전 스스로에게 늘 묻는 편이다. ‘새롭게, 다르게 할 수 할 수 있을까’라고. 누구라도 만들 수 있다면 이미 나와있는 것들이 완결편이다. 그런 것에는 감히 손을 안 댄다. 잘 나온 음식 옆에서 휘적거리고 싶지 않다”는 말로 현장 분위기를 풀었다.
이어 “어떻게 해야 새로워질 수 있을까. 이른바 썸띵 뉴(Something New), 썸띵 디퍼런트(Something Different)를 찾으려 한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실제 란 12.3은 기존 다큐 문법과 다른 길을 간다. 과감히 내레이션과 인터뷰를 배제했다. 관객에게 정보를 주입하고 가르치려 하기보다, 이미지와 사운드만으로 그날의 상황을 직접 체험하게 하겠다는 의도다. 이를 위해 ‘시네마틱·이모셔널·드라마틱·유머’라는 네 가지 연출 원칙을 세우고 파편화된 제보 영상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냈다.
이 감독은 “출발은 하나의 이미지였다. 계엄 직후 불안감이 감돌던 시기, 뉴스 화면에서 건물 주변을 맴도는 총을 멘 군인들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 중 무심하게 위를 올려다보는 군인의 눈빛이 시선을 잡았다. 그 찰나의 이미지가 주는 공포가 마음을 움직이더라”며 “내가 이 영화를 만든다면 저 한 장면만으로도 예고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한 장면이 주는 당혹감이 마치 꿈과 현실의 교차점, 트와일라잇 존처럼 느껴졌다. 그날의 일을 왜곡 없이 담아내는 것이 목표였다”라고 설명했다.
2004년 12월3일에 계엄이 있고 나서 지난 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 작품은 일련의 사건들 중 12월3일과 그날에서 이어지는 4일 새벽까지의 시간에 집중한다.
영화는 일반 시민부터 국회 보좌관까지 283명이 제공한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구성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부터 해제 결의안 가결까지의 과정을 촘촘히 따라간다. 이 감독은 “나 역시 엄혹한 시기를 살아왔다. 살아 남았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부끄러움 등이 밀려오는 시기가 있다. 그때마다 영화가 과연 무엇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자괴감도 들었다”면서 “나만 이런 감정을 느낀 게 아니라는 것을 시민들의 제보 영상을 보며 확신했다. 한 개인의 체험을 넘어 모두의 경험으로 확장하고자 했다”라고 설명한다.
특히 조성우 음악감독과 협업한 사운드 디자인은 영화의 백미다. 80인조가 넘는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한 편의 거대한 교향곡을 완성했다. 이 감독은 “음악이 곧 대사이자 감정이다. 관객이 극장에서 가슴이 울릴 정도의 진동을 느끼며 그날의 감정을 떠올리길 바랐다”라고 전했다.
생생하고 거친 현장의 소리도 고스란히 담았다. 이 감독은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이미지와 자막으로 보완했다. 헬기 소리도 공포를 느낄 정도로 강하게 넣었다. 사운드가 좋은 극장에서 보면 서라운드의 느낌과 음악, 현장의 감정이 그대로 전달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특히 이 감독은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을 빛의 전사들이라고 불렀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호루라기 소리에 반응하듯 사람들이 모여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잉그마르 베리히만 감독이 예술에 대해 설명한 글이 떠올랐다. 하나의 상징적인 사탑이 재해로 무너졌을 때 어디서 온지 모르는 광대, 목수, 예술가, 시인들이 나타나서 그 사탑을 다시 짓고 사라졌다고 하더라. 그것이 예술이고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 예술가의 일이라는 거다. 란 12.3은 여의도로 달려간 빛의 전사들, 그날의 이름 없는 영웅들이 민주주의를 지켜낸 이야기를 담은 히어로물이자 예술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란 12.3이 정치적인 해석이나 성향으로 읽히는 것을 경계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계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의 영역이다. 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지 판단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급적 내 판단은 넣지말자’는 다짐을 했다”면서 “그래서 관객이 그날을 직접 겪지 않았더라도, 외국인의 시선에서도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지 계속 고민했다. 편집기사에게도 ‘이게 직관적으로 이해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런 기준 속에서 장면들을 구성했다. 이 역사적인 순간이 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 의미가 다른 것으로 희석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인으로서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밝혔다. 이 감독은 “지금 생각하는 작품이 2편 있다. 하나는 뱀파이어 영화이고, 하나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2편이다. AI의 도움을 받아 가성비 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정도의 생각을 하는 정도이다. 당장에 차기작이 뭐가 될 거라고는 말할 수 없다”며 “작품이 어떤 결과를 낼지도 지켜봐야 한다. 잘 돼야 한다. 장항준 감독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기록을 넘어서는 게 내 목표다”라고 말하며 웃는다.
그는 마지막으로 란 12.3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닌 시민들이라고 강조했다. “만약 이 영화가 주연상을 받는다면 그 주인공은 시민들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눈빛에는 작품에 대한 애정과 시대에 대한 책임감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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