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엠넷 음악프로그램 ‘엠카운트다운’에서 일본 8인조 걸그룹 큐티 스트리트가 출연, 대표곡 ‘귀엽기만 하면 안 되나요?’ 무대를 피로했다. 근래 ‘엠카운트다운’엔 요아소비나 스노우맨 등 J팝 팀들이 꾸준히 출연하고 있으니 그 자체로 특이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큐티 스트리트 경우 그 반향 면에서 확실히 남달랐다. 일단 해당 무대 영상이 유튜브 공개 불과 9 일여 만에 600만 뷰를 넘어서고 있다. 메인 영상 외에 다양한 파생 영상들도 대부분 J팝 아이 돌 국내 반응을 훌쩍 뛰어넘고, 가장 화제를 모은 멤버 마스다 아야노 직캠 영상은 현재 100 만 뷰를 돌파한 상태. 한국 아이돌 기준으로도 이 정도면 ‘스타 탄생’이다.
물론 여타 J팝 팀들 경우 ‘엠카운트다운’ 출연 유튜브 영상이 주목할 만한 반응을 얻었어도 이미 국내 음원 차트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팀이라면 ‘본국 일본 팬덤이 올려놓은 조회수’란 해석이 뒤따랐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큐티 스트리트는 그런 것도 아니다. 무대 영상 업로드 직후 국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등 온라인 공간 전반에 걸쳐 어마어마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수많은 파생 포스팅을 낳고 있다.
무엇보다 J팝 팀들의 국내 진출이나 일본대중문화 자체의 국내 유행에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내온 몇몇 커뮤니티들까지 ‘이번만큼은’ 상당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단 것. 이 같은 ‘이견 없는 호의’ 핵심은 단순하다. 큐티 스트리트는 이번 ‘엠카운트다운’ 무대를 위해 자신들 최 고 히트곡 ‘귀엽기만 하면 안 되나요?’ 가사의 거의 대부분을 한국어로 번안해 불렀기 때문이다. 그것도 꽤나 센스 있는 번안으로 호평이 자자하다.
이에 “왜 K팝 팀들이 일본시장을 위해 굳이 일본어로 가사를 바꿔 부르는지 이제야 알겠다” 는 등 반응이 온라인상 중심을 이룬다. 그런 사례가 과거 없었기에 이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지만, 막상 한국 실정에 맞도록 손 본 공들인 한국어 가사를 멤버들이 열심히 연습해 부른단 점만으로도 그 성의와 열의를 알 수 있어 호의적인 인상이 들 수밖에 없단 것이다.
그럼 여기서 새로운 의문이 생긴다. 설명했듯 ‘엠카운트다운’ 등 몇몇 국내 음악프로그램에 ‘한국 진출’ 타이틀로 출연한 J팝 팀들은 그간 적지 않았지만, 왜 그들은 큐티 스트리트처럼 가사를 한국어로 번안해 부르는 정도 성의도 보이지 않은 걸까 말이다. 어딘지 자존심이 걸린 얘기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실상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이전까지 일본 J팝 팀들 상당수는 그저 ‘한국 진출’ 이벤트를 통한 글로벌 이미지를 얻어내기 위해, 그로써 실질적으론 한국시장이 아닌 자국 내수시장을 고조시키기 위해 내한해 방송 무대를 피로한 인상이 짙다면, 지금은 실제로 한국이란 대중음악시장 자체가 수익 공간으로서 충분한 의미를 지니게 된 시점이란 것. 그러니 이전과는 다른 살갑고 정교한 전략들도 등장하고, 이른바 ‘서비스’ 차원 현지화 퍼포먼스도 등장하게 된단 얘기다.
대략 2023년 혼성 듀오 요아소비의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 공연 즈음부터 ‘J팝 국내 공연 붐’ 이 시작되고 모든 흐름이 바뀌었다. 그 요아소비는 1년 뒤인 2024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두 번째 내한 공연에서 처음보다 3배 늘어난 관객 수 2만6000여명을 불러 모으는 데 성공한다. 당연히 요아소비뿐만이 아니다. 2025년이 되자 남성 솔로 요네즈 켄시 내한 공연도 예매 개시 직후 이틀치 2만2000여 석이 곧바로 매진되고, 그밖에 수많은 J팝 아티스트들이 한 국 공연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다. 그렇게 2026년 상반기에 한국 공연이 확정되거나 이미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팀들만 해도 호시노 겐, 원 오크 록, 아마자라시, 킹 누 등 수도 없다.
이러니 대중성을 인기 기반으로 삼는 아이돌 걸그룹의 경우 향후 공연시장 입성을 목표 삼아 더더욱 적극적으로 한국시장서 인지도와 호감도를 올릴 방안들을 연구해보게 되고, 그 결과가 화제를 일으킨 ‘엠카운트다운’ 같은 현지화 서비스 정신 충만한 이벤트로 거듭나게 된단 순서. 또 있다. 앞서 국내 공연에 성공한 J팝 팀들은 이미 국내 음원 차트서 일정 수준 이상 반향을 일으켜 그 기반으로 공연을 마친 경우지만, 큐티 스트리트는 이제 막 한국시장에 진입하려는 팀이다. 거기다 한국선 정말로 먹히기 힘들다는, 매우 이질적인 일본 걸그룹 문화에서 탄생한 팀. 이런 팀이 그저 한국어 가사 번안이란 현지화 코드 하나로 모든 장벽을 녹이고 인지도와 호감도를 높이고 있다 보기엔 아무래도 무리다.
결국은 한국 대중도 큐티 스트리트와 같은 전형적인 일본식 아이돌 걸그룹 면면에 일정 수준 이상 ‘적응’이 됐단 식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2018년 엠넷 ‘프로듀스 48’에서 마찬가지로 매우 이질적인 일본식 아이돌 걸그룹 AKB48과 그 자매그룹들이 소개될 때만 해도 상황은 전혀 달랐다. ‘충격’이란 표현이 국내 언론미디어 보도에서 흔히 발견됐다. 춤과 노래에 대한 진지함이나 실력도 찾아보기 힘들고, 어필하려는 포인트도 거의 ‘귀여움’이란 지점 하나로만 모인, K팝 걸그룹과는 아예 지향점 자체가 달라 보이는 팀들에 대한 거부감이 ‘프로듀스 48’ 방영 내내 온라인 공간을 휩쓸었다.
그러나 이후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2020년대 전반,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일본 대중문화가 온라인을 기반으로 폭넓게 소비되면서 점차 일본식 아이돌 면면과 지향점 등에 대한 이해도 생겨나고, 무엇보다 친숙해졌다. 나니가스키 챌린지 등 일본 아이돌 걸그룹 밈을 함께 소비하며 왜 이런 콘셉트 상품이 성립되는지, 또 어떤 식으로 소비되는지 직접 경험해보며 인식의 상당 부분이 이미 바뀐 상태였단 얘기다. 이런 분위기에서 가사 번안 외에도 발 빠른 자체 콘텐츠 한국어 자막 제공 등 여러 현지화 서비스를 갖춘 큐티 스트리트가 선보여지니 이전엔 상상조차 힘들었던 호응이 쏟아졌단 것.
과거 초등학교 학예회냐는 비난이 쏟아지던 특유의 의상에도 이젠 “예쁜 컵케이크들이 춤추는 것 같다”거나 “행복한 샤워볼 같다”는 등 어느 정도 타문화에 대한 이해가 바탕 된 반응이 더 많아졌다. 그런 반응을 일본 측 소속사에서도 바로바로 캐치해 SNS 등을 통해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큐티 스트리트는 한국을 떠나며 올해 7월 이틀간 4000명 규모 단독 콘서트 개최를 알렸다. 역시 이번 3월28~29일 내한 공연에 비해 몇 배를 불린 규모다. 이런 성공 사례가 생겨난 지금, 향후 J팝 아이돌 씬의 대(對)한국 전략은 상당 부분 큐티스트 리트 그것을 벤치마킹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 반향이 현재 큐티 스트리트에 쏟아지는 관심만큼만 되더라도, 한국 대중음악시장서 J팝 역할과 위상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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