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서우봉만 해도 4000번 넘게 올랐어요. 그럼에도 오를 때마다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죠.”
지난 6일 제주 조천읍 함덕리의 서우봉 오름. 2019년부터 숙박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Airbnb)의 제주 오름 체험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 중인 최경진 씨는 “하루에도 세 번 오름을 오르는데 아침, 점심, 저녁의 모습이 모두 다르다”고 소개했다.
에어비앤비는 최근 1박2일 기자단 팸투어를 진행했다. 회사의 앞으로 목표를 전하는 비전 포럼을 열고, 플랫폼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여러 체험 프로그램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에어비앤비는 2016년부터 전문성과 흥행성, 지역 특성 등 요소를 두루 평가해 체험 프로그램을 선정해 ‘몸으로 느끼는 여행’을 선사하고 있다.
이번 서우봉 오름 투어도 그 중 하나. 최 씨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여행으로 찾은 제주에 흠뻑 빠졌고 이내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됐다. 그 뒤 오름을 오르면서 느낀 매력을 조금 더 많은 이들이 느끼길 바라며 체험프로그램 신청을 했고, 채택이 되면서 2019년부터 지금까지 1만 명 이상 신청자와 제주의 여러 오름을 오르고 있다.
제주에 등록된 368개 오름 중 150개 이상 오름에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라는 그는 특히 서우봉에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최 씨가 명함과 더불어 건넨 사진도 해바라기가 만개한 서우봉의 한여름, 7~8월 정경이었다.
검은 물소가 기어가는 모습과 닮아서 서우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곳 오름은 정상이 111m로, 오르는 것에만 집중하면 아무리 운동 신경이 부족한 사람도 15분 만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정상 등극에만 초점을 맞추기엔 오름 곳곳에 숨은 매력이 너무 많다고. 그의 안내에 따라 프로그램을 소화하다보니 1시간이 훌쩍 흘러있었다.
제주의 오름은 개발이 제한돼 청정 자연을 경험할 수 있다고. 이날 에메랄드빛 바다를 배경으로 유채꽃이 샛노란 손 인사를 전한 가운데 날이 조금만 더 풀리면 토끼 떼가 유채꽃밭을 뛰논다고 한다. 노루, 족제비, 오소리, 멸종위기 1급 비바리뱀이 서식 중이며 6월과 9월에는 반딧불이도 만날 수 있다. 특히 9월에는 반딧불이의 수가 늘어나 눈앞에서 꿈같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단다. 아울러 서우봉의 두 정상 중 하나인 망오름 정상은 유명한 일출 명소로 바다 위에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서우봉은 제주의 아픔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망오름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북촌마을은 제주 4·3 사건 당시 큰 피해를 입은 마을 중 하나로, 하룻밤 사이에 5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서우봉에서 발견된 21개 동굴도 그렇다. 4·3 사건 당시 학살을 피해서 함덕주민들이 대피한 장소들이다. 그 중 하나인 진지동굴은 일제강점기이던 1944년 일본군에 의해 강제 동원된 제주도민들이 매일 14시간의 노역 끝에 만들어낸 공간으로, 이곳이 뚫리고 3년 뒤 터진 4·3 사건으로 상당수 주민이 몸을 숨긴 곳이라고 한다.
직접 들어가본 진지동굴은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지 않으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어둡고 비좁은 곳에서 30명 이상이 숨어들어 외부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우는 아기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지냈다고 한다. 훗날 유골과 가재도구 등이 발견됐다는 이 동굴에 지금은 박쥐 예닐곱 마리가 날개로 몸을 감싼 채 거꾸로 매달려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수년 전 스마트폰 사진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사진작가로도 활동 중인 최 씨는 체험 프로그램 참가자를 위해 오름에서 ‘인생사진’도 찍어준다.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다리도 원래보다 길게 나와서 곧장 카톡 프사를 이 사진으로 바꿨다.
최 씨는 “서우봉 오름 외에도 물영아리 오름, 큰녹고메 오름, 다랑쉬 오름, 동거문이 오름 등 아름다운 오름이 많다”며 “특히 동거문이 오름은 제주도민들도 잘 모르는 곳인데 풍경이 기가 막히다”고 엄지를 세웠다. 제주 오름은 반려견과도 함께 오를 수 있다.
이번 팸투어 동안 도자기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었다. 공방 노나메(noname) 대표이자 에어비앤비 호스트인 지연주 씨와 스태프의 도움 아래 약 1시간 동안 흙을 만지며 백자 그릇을 빚었다. 구운 완성품은 약 한 달 뒤 받을 수 있다고.
최 씨와 에어비앤비에 따르면 이밖에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제주 남서부의 명소 둘러보기, 해녀체험, 해상요가, 둘레길 러닝, 차밭에서 유기농 차 맛보기 같은 프로그램을 제주에서 체험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보면 전주한옥마을에서 전통 수제도장 만들기, 경주에서 유네스코 문화유산 둘러보기, 요트 세일링 등을 경험할 수 있다.
서가연 에어비앤비 코리아컨트리 매니저는 “지난해부터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제주, 강원, 충청, 전라지역과 협업해 체험 행사를 늘리고 있다”며 “지역마다 로컬 콘텐츠가 많아지면 현재의 서울 중심 관광이 다양하게 분산되며 지역 관광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름에서 만난 특별한 인연들… “덕분에 결혼까지”
최진경 씨가 햇수로 8년째 오름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만난 게스트들 중에는 국가대표 운동선수도 있었다. 그는 “3~4년쯤 전 일행 중 키가 매우 큰 모녀가 계셨는데 체험이 너무 재밌으셨다면서 모두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셨다”며 “알고보니 배구 국가대표 박정아 선수와 그 어머니셨다”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게스트도 있다. 언젠가 이틀 연속으로 서우봉 오름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가 있었다고. 서우봉은 난이도가 높은 곳은 아니라 이틀 연속으로 오는 사람은 없었기에 신기하다 싶었는데 그 다음날에도 또 다른 오름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 사흘 연속으로 마주했다. 그 오름은 다소 험한 코스도 있어서 그때 그 게스트에게 손을 내밀렀고 그렇게 맞잡은 두 사람의 손은 한 시간이 넘도록 떨어지지 않았다.
최 씨는 “그 분이 저기 계신다”며 이날 동참한 아내를 가리켰고 “오름에서 눈이 맞아 연애하고 결혼까지 했다”며 웃었다.
제주=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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