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와 박수 속에 아름다운 연기를 펼쳤다. 차준환(25·서울시청)이 ‘레인 인 유어 블랙 아이즈'(Rain in your black eyes)’에 맞춰 은반 위에 섰다. 물 흐르듯 이어진 점프와 스텝을 지나 가장 중요한 순간이 다가왔다. 극에 치닫는 음율 속 장내는 숨소리조차 사라졌다. 차준환은 잠시 숨을 멈춘 채 날아올랐다. 3바퀴 반을 도는 트리플 악셀을 깔끔하게 성공했다. 마지막까지 완벽했던 연기, 관중석에선 환호와 함께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스스로도 안도의 큰 숨을 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불과 이틀 전, 같은 은반에서 펼친 연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앞서 차준환은 피겨스케이팅 팀 이벤트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흔들렸다. 트리플 악셀에서 회전이 풀리면서 1회전만 뛰는 싱글 악셀로 마무리해야 했다. 실수의 대가는 0점. 하지만 실패 대신 자양분이 됐다. “예방주사를 맞은 것”이라던 자신의 말처럼, 완벽한 연기로 만회했다.
차준환은 지난 11일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끝난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기술점수(TES) 50.08점, 예술점수(PCS) 42.64점으로 총점 92.72점을 기록했다. 올 시즌 개인 최고점수인 91.60점보다 높은 기록이었다. 전체 6위에 오른 그는 프리 스케이팅 진출을 확정했다. 오는 14일 새벽 3시 열리는 무대에서 생애 첫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다.
연기를 마친 그는 “지금 이 순간 한 점의 후회도 없을 만큼 모든 것을 다 던지고 나왔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탔다”며 “올 시즌 어려운 시간을 보냈는데 버텨내고 올림픽 무대에서 경기를 했다. 무척 기뻤다”고 미소 지었다.
‘최선’을 유독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어쩌면 이번 대회가 그의 마지막 올림픽 무대가 될 수 있다. 이번 대회 남자 싱글 출전 선수 중 최고령은 28세다. 2030년 알프스 올림픽이 열린다면 차준환은 29세가 된다. 피겨의 시간은 잔인하다. 고난도 점프는 몸을 갉아먹고, 부상은 쉬지 않고 찾아온다. 전성기는 찰나처럼 느껴진다. 한국 피겨의 상징 김연아 역시 24세였던 소치 올림픽을 끝으로 은반을 떠났다.
라스트 댄스. 이 단어가 차준환의 뒤를 쫓는다. 외면 대신 이를 더 꽉 깨문다. 넘어지고, 부딪히고, 다시 일어났던 시간들도 이제는 마지막이다. 2018년 평창에서 최연소로 올림픽에 섰던 소년은 2022년 베이징에서 수천 번의 실패를 딛고 5위에 올랐다. 은반 위에 내딛은 모든 걸음이 한국 피겨의 새로운 이정표였다.
빙판 위에 남기는 발자국 하나하나가 작별 인사처럼 느껴진다. 끝을 알기에 더 간절하다. 차준환은 “이틀 정도 시간이 있다. 쏟아낸 것을 빠르게 채워서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눈빛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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