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층에게 치매는 단순한 질환이 아니다. 서서히 기억이 지워진다는 공포, 스스로를 잃어간다는 두려움, 그리고 언젠가 가족의 짐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까지 함께 따라온다. 치매가 ‘개인의 병’을 넘어 ‘가족 전체의 삶을 바꾸는 질환’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의학적으로 치매는 노화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다. 관리와 개입의 시점에 따라 진행 속도와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진다. 특히 60대 전후는 치매 관리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분기점으로 꼽힌다.
수원S서울병원 임진희(신경과) 원장은 “치매는 갑자기 찾아오는 병이 아니라, 수년에 걸쳐 신호를 보내는 질환”이라며 “얼마나 일찍, 얼마나 꾸준히 대응하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한다.
많은 사람이 기억력이 떨어지면 곧바로 치매를 떠올린다. 하지만 모든 기억력 저하가 치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임진희 원장은 “치매는 후천적으로 기억력뿐 아니라 언어 능력, 판단력, 집중력, 실행 기능 중 하나 이상이 저하돼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생기고, 이런 상태가 지속될 때 진단된다”고 설명한다.
이어 “단순한 건망증이나 노화로 인한 기억력 저하와 달리, 치매는 생활 기능의 변화가 동반된다. 특히 기억력 저하를 호소하는 고령자 중 상당수가 경도인지장애 또는 치매로 진단되는 만큼, 증상이 반복된다면 조기 검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했다.
치매는 하나의 질환이 아니라 여러 원인 질환의 결과다. 대표적으로는 알츠하이머형 치매와 혈관성 치매가 있다.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최근 기억력 저하가 비교적 이른 단계에서 나타난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거나, 방금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증상이 잦아진다. 반면 혈관성 치매는 기억력보다 성격 변화, 보행 이상 등이 먼저 나타날 수 있다.
치매 유형에 따라 초기 증상이 다르기 때문에, ‘기억력만’ 기준으로 판단하기보다 전문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한편 난청과 우울증은 치매의 ‘숨은 촉진제’로 여겨진다. 최근 치매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위험 요인이 바로 난청과 우울증이다.
임진희 원장은 “노인성 난청은 단순히 귀의 문제가 아니라, 뇌 자극 감소로 이어져 인지 기능 저하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해외 대규모 관찰 연구에서는 난청이 있는 고령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치매 위험이 유의하게 높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우울증 역시 마찬가지다. 장기간 방치된 우울 증상은 인지 기능 저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을 ‘치매와 별개인 동반 질환’이 아닌,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할 위험 요인으로 본다.
최근 국제 의학계에서는 “치매의 상당 부분은 예방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힘을 얻고 있다. 국제학술지 '란셋' 치매 위원회는 흡연, 신체 활동 부족, 비만, 사회적 고립, 난청, 우울증 등 생활습관 및 환경 요인이 치매 위험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밝혔다.
임진희 원장은 “치매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위험 요인을 관리하면 발병 시기를 늦추고 진행 속도를 지연시킬 수 있다”며 “운동, 절주, 사회적 관계 유지 같은 기본적인 관리가 결국 가장 강력한 예방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치매 검진은 특별한 증상이 있을 때만 받는 검사가 아니다. 특별한 이상이 없어도 60세 전후부터는 정기적인 인지 기능 검진을 권장한다.
검진은 병력 청취와 신경학적 검사, 간이 인지선별검사, 필요 시 신경심리검사로 이뤄진다. 이를 통해 기억력뿐 아니라 주의력, 언어 능력, 시공간 인지, 판단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이미 치매 진단을 받았다면 현실적인 목표는 병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진행을 늦추고 일상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다.
진단 후에는 인지 기능 저하 정도와 함께 행동 변화, 수면 문제, 정서 증상 등을 평가한다. 필요에 따라 MRI 등 뇌 영상 검사와 혈액 검사가 병행된다. 치료에는 도네페질, 리바스티그민, 갈란타민, 메만틴 등의 약물이 사용된다. 최근에는 알츠하이머형 치매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알려진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의 표적 치료제, 레카네맙 주사치료도 승인되었다.
임진희 원장은 “초기부터 치료를 시작하면 돌봄 부담과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며 “조기에 개입한 경우 장기 요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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