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종합운동장에 우뚝 선 거대한 빅탑. 관객들은 입구에서부터 화려한 트릭스터 조형물과 마주하며 도심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입장한다. 7년 만에 서울을 찾은 태양의서커스 쿠자는 첫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관객을 손에 쥔 채 단 한 순간도 놓아주지 않는다.
쿠자라는 이름은 고대 인도어로 상자 또는 보물을 뜻한다.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광대 이노센트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그 과정에서 두려움과 깨달음, 강인함과 연약함이 교차하며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무대가 열리면 100년 전통 서커스의 정수가 현대적 감각과 만난다. 곡예와 광대극이라는 서커스의 두 축을 완벽하게 결합했다. 화려한 시각 효과나 복잡한 스토리텔링 대신 인간의 신체가 가진 극한의 가능성과 광대가 선사하는 원초적 웃음에 집중한다.
무대를 가로지르는 하이 와이어 장면은 그 자체로 숨이 멎는 경험이다. 각각 다른 높이에 설치된 두 줄이 십자형으로 교차하는 공중. 그 위를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건너는 곡예사들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객석은 숨을 죽인다. 10미터 상공에서 단 하나의 장대에 의지해 솟구쳤다 착지하는 곡예사를 보면 서커스가 왜 예술로 불리는지 알게 된다.
티터보드에서의 5회전 공중제비는 시각적 충격을 안긴다. 한 사람이 시소처럼 생긴 판자 끝에서 뛰어오르면 반대편에서 뛰어오른 다른 곡예사가 10미터 상공으로 치솟는다. 공중에서 다섯 바퀴를 회전하고 완벽하게 착지하기까지의 몇 초간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꼭 쥐게 된다.
휠 오브 데스는 공연의 백미다. 거대한 두 개의 바퀴가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고 곡예사들이 그 안팎을 질주한다. 마치 중력을 거스르는 듯하다. 생과 사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이 퍼포먼스는 쿠자가 왜 태양의서커스 투어 공연 중 가장 대담한 작품으로 손꼽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쿠자의 진정한 힘은 이런 극한의 곡예에만 있지 않다. 무대 곳곳에서 등장하는 광대들의 슬랩스틱 유머는 긴장의 연속인 공연에 쉼표를 불어넣는다. 관객을 무대로 끌어올려 즉흥적으로 펼치는 코믹 퍼포먼스는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고, 그 웃음은 곧이어 펼쳐질 위험천만한 곡예를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의상과 무대 디자인 또한 눈길을 끈다.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175벌이 넘는 의상들은 각각이 하나의 캐릭터이자 세계관을 담고 있다. 병정, 해골부대, 동화 속 인물들이 어우러진 무대는 마치 어린 시절 상상했던 환상의 세계를 현실로 구현해낸 듯하다. 1000점이 넘는 소품과 액세서리들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향연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라이브 음악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1970년대 펑크, 오케스트라 선율, 전통 인도 음악이 뒤섞인 독창적 사운드는 각 장면의 긴장감을 키운다. 130분의 러닝타임 동안 쉼 없이 이어지는 음악은 곡예사에 이어 공연의 두 번째 주인공이다.
쿠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인생에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 순간을 즐기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으라는 것. 누구나 상자 속 보물을 안고 있다. 무대 위 이노센트의 여정은 곧 객석에 앉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오는 28일까지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내 빅탑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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