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5 부동산대책은 겉보기엔 냉정한 규제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정부의 불안감이 묻어난다. 급등하는 서울과 수도권 집값, 전세를 끼고 들어오는 갭투자, 그리고 다시 살아나는 청약 과열 조짐까지. 정부는 이번엔 선제적으로 막겠다며 칼을 빼들었다. 조정대상지역과 투기과열지구 확대,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대출 한도 축소, 실거주 의무 강화까지 말 그대로 전방위 규제다.
핵심은 돈줄을 죄는 것이다. 15억원 초과 주택은 최대 4억원, 25억원 초과는 최대 2억원까지만 대출이 가능하고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도 유지됐다. 여기에 투기과열지구 내 주택의 LTV가 최대 40%로 줄어들면서 사실상 현금 없이 집을 사기 어려워졌다. 시장에서는 “집은 부자만 살 수 있게 됐다”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온다. 정부 입장에서는 빚내서 집사는 시대를 끝내겠다는 선언이겠지만 서민 입장에서는 기회 자체가 사라진 규제로 들린다.
이 대책의 배경에는 두 가지 계산이 숨어 있다. 첫째, 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자금이 다시 부동산으로 몰릴 조짐을 차단하겠다는 것. 둘째, 선거를 앞두고 ‘집값 불안=정권 리스크’라는 공포를 최소화하려는 정치적 판단이다. 문제는 이 계산이 정책의 본질을 흐린다는 점이다. 정책은 시장을 진정시키는 게 아니라 심리를 더 위축시키고 있다. 실제로 대책 직후 거래량은 급감했고 수도권 외곽의 매수심리도 얼어붙었다. 정작 공급은 여전히 막혀 있다.
부동산은 단순히 사고파는 자산이 아니라 ‘사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번 대책은 공간의 문제를 돈의 문제로만 다루고 있다. 대출을 막으면 거래는 멈추고 거래가 멈추면 가격은 잠시 숨을 고르지만 그 뒤엔 더 큰 반등이 기다린다. 공급은 그대로인데 수요만 억누르면 결국 시장은 반등의 힘을 키워간다. 냉각제만 주입하고 해열제는 건너뛴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전월세 시장이다. 갭투자를 막겠다고 나섰지만 동시에 전세 공급도 줄이고 있다. 대출 규제와 실거주 요건 강화로 임대인들이 빠져나가면 전세 매물은 줄고 전세가격은 다시 뛴다. 월세로 전환되는 흐름이 빨라질 가능성도 높다. 결과적으로 실수요자인 무주택자와 청년층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그들이 바라는 건 규제가 아닌 사다리다.
정부는 늘 시장을 관리하려 한다. 하지만 시장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규제는 약속이 아니라 공포가 된다. 규제는 일시적인 안정책일 수는 있지만 구조적인 해법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건 수요를 억누르는 칼이 아니라 공급을 이끄는 붓이다. 양질의 도심 공급, 재개발·재건축 절차의 합리화, 그리고 임대 시장의 투명한 제도화.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어떤 대책도 일시적 진통제일 뿐이다.
결국 이번 10·15 대책은 시장 과열을 막겠다는 의도는 분명하지만 ‘시장 신뢰를 되살리겠다’는 메시지는 약하다. 부동산은 심리의 시장이고 심리는 신뢰 위에서만 안정된다. 규제는 냉각제, 공급은 치료제다. 냉각만 하고 치료를 미루면 병은 잠잠해지는 게 아니라 깊어진다. 정부가 진짜 잡아야 할 것은 집값이 아니라 불신이다.
이 칼럼은 현실을 지적하되 비판에만 머물지 않으려 했다. 시장의 심리를 읽지 못한 대책은 늘 실패해왔다. 냉정함보다 신뢰, 단속보다 방향, 그리고 규제보다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대책이 그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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