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날이 올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34년간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영광의 순간들, 이를 위해 흘려야 했던 수많은 땀방울들. 더 이상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달리는 모습은 볼 수 없지만, 그의 플레이 하나하나는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듯하다. ‘추추트레인’ 추신수 구단주 보좌역(겸 육성총괄, 이하 보좌역) 안녕을 고한다. 14일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은퇴식을 치렀다. “울 이유도 없고, 울고 싶지도 않다”며 마음을 다잡았던 추 보좌역은 은퇴사를 낭독하다 끝내 차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추 보좌역은 “선수로서의 열정은 끝이 났지만, 이젠 뒤에서 SSG 선수들을 돕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 선물 같았던, 은퇴식
은퇴식이 열린다는 것 자체가 영광스러운 일이다. 몇몇 선수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굵직한 발자취를 남겨야 하는 것은 물론, 환경도 따라줘야 한다. 추 보좌역은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16시즌(2005~2020시즌) 통산 1652경기서 타율 0.275 218홈런 등을 남겼다. 다만, 2020시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무관중 경기로 진행됐다. 아내 하원미씨와 자녀 3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빅리그와 이별해야 했다.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았다.
한국에서의 은퇴식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추 보좌역은 2021시즌을 앞두고 국내무대로 돌아와 지난해까지 4년간 뛰었다. 은퇴 시즌이었던 지난해 팬들 앞에서 마지막 타석도 소화했다. 당초 지난 시즌 막판 은퇴식을 하려 했으나, 치열한 순위싸움이 한창인 만큼 미루기로 했다. 추 보좌역은 “미국에서 못했던 것을 한국에서 다 하게 됐다”면서 “행복하다. 이렇게 많은 사랑과 응원 속에서 박수를 받으며 떠날 수 있는 선수가 많지 않다. 큰 선물을 받는 느낌”이라고 웃었다.

◆ 기나긴 여정을 마치며
이날 SSG랜더스필드엔 추 보좌역의 이름으로 가득했다. SSG 선수단은 모두 추 보좌역 선수 시절 등 번호 17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나섰다. 팬들은 ‘CHOO 17’이 쓰인 응원타월을 들었다. 경기 전 사인회를 진행하는 한편, 이닝 간 전광판에 추신수 관련 퀴즈들이 나오는 등 다채로운 이벤트가 펼쳐졌다. 특별 엔트리 등을 통해 타석에 설 수도 있었으나 추 보좌역 본인이 고사했다. 추 보좌역은 “지난 시즌을 마무리하고 야구 배트를 한 번도 안 잡았다. 욕심 없다”고 말했다.
이날 은퇴식엔 선수단 영상 편지를 비롯해 특별 퍼포먼스, 헹가래, 불꽃축제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눈에 띄었다. ‘캡틴’ 김광현이 대표로 나서 은퇴기념 앨범 등 깜짝 선물을 건네기도 했다. 추 보좌역은 길었던 야구선수로서의 여정을 정리하고 가족 품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천천히 1~3루를 거쳐 홈으로 향했다. 1루엔 첫째 아들 추무빈 군이, 2루엔 둘째 아들 추건우 군이, 3루엔 딸 추소희 양이, 홈엔 아내 하원미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념사진을 끝으로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 ‘인간’ 추신수와 그의 동료들
추 보좌역이 높은 평가를 받은 건 비단 경기장 안에서의 활약 때문만은 아니다. 밖에서의 행보도 인상적이다.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기부를 실천한 이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동료들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최정, 김광현 등 SSG 선수단뿐 아니라 이대호(은퇴), 류현진(한화), 오승환, 강민호(이상 삼성), 이용규(키움), 전준우(롯데), 손아섭(NC), 김태군(KIA), 고영표(KT) 등 리그를 대표하는 이들이 앞다투어 추 보좌역의 제2의 인생을 응원했다.
텍사스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애드리안 벨트레, 콜 해멀스도 한걸음에 달려왔다. 추 보좌역의 요청에 고민 없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SSG 퓨처스(2군) 팀을 방문한 데 이어 이날 은퇴식에도 직접 참석했다. 추 보좌역은 “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의 평가라고 생각한다”면서 “좋은 선수였다고 감히 말할 순 없지만, 미국을 떠난 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렇게 선수들이 찾아와주는 것을 보면 그렇게 나쁘게 살진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 끝 그리고 시작
추신수는 부산고 졸업 후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 미국으로 건너갔다. 마이너리그에서부터 시작해 2005년 처음 MLB 무대를 밟았다. 2020년까지 통산 1652경기서 타율 0.275(6087타수 1671안타), 218홈런, 782타점, 157도루 등을 올렸다. 출전 경기 수에서부터 안타, 홈런, 타점, 도루 모두 코리안 빅리거 최다 기록이었다. 2021년 국내무대로 돌아와 SSG에 합류했다. 4시즌 동안 439경기서 타율 0.263(1505타수 396안타) 54홈런을 기록했다. 2022년 그토록 바라던 우승을 일궜다.
이제 또 다른 꿈을 꾼다. 구단 프런트로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추 보좌역은 ‘비록 야구선수로서의 열정은 이제 남아있지 않지만, 또 다른 열정이 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은 많은 것들이 서툴다. 추 보좌역은 “선수 때보다 훨씬 더 힘든 것 같다. 누군가를 설득시켜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쉽지 않다. 성격 상 한 번 시작하면 또 잘해야 한다”면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좀 더 선진화된 야구를, 더 좋은 환경에서 할 수 있게끔 노력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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