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감독이라는 자리가 쉽지 않다는 걸 느낍니다.”
배구 레전드 김연경이 감독으로 깜짝 데뷔했다. 정식 경기가 아닌 이벤트 경기였지만 선수들을 이끄는 모습은 예사롭지 않았다. 본인의 작전판에 ‘Enjoy’(즐겨라)라고 적어놓았을 정도로 철저한 준비도 눈에 띄었다.
지도자는 지난 시즌을 마치고 현역에서 은퇴한 김연경의 여러 선택지 중 하나다. 김연경은 지난달 V리그 시상식에서 “지도자에 대한 관심은 늘 있다”며 “쉬운 길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감독 데뷔 기회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김연경은 지난 18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KYK 인비테이셔널 2025 둘째 날 세계올스타 간의 맞대결에서 감독 지휘봉을 잡고 선수로도 코트에 나섰다. ‘팀 스타’와 ‘팀 월드’의 맞대결로 이뤄졌는데, 김연경은 팀 스타 소속으로 나섰다. 1, 3세트는 감독으로 선수들을 이끌었고 2, 4세트에는 직접 선수들과 어울려 뛰었다.
프로 선수로만 20년을 뛴 초보 감독이었지만 검은색 셔츠를 입고 작전판을 들고 선수들에게 지시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감독이었다. 눈을 크게 뜬 채 코트를 바라보며 열심히 손짓을 했다. 때로는 엄지를 치켜들고 선수들에게 격려를 보내기도 했고 교체된 선수가 코트를 나올 때는 하이 파이브를 한 뒤 등을 툭 한 대 치기도 했다. 실점했을 때는 선수 시절만큼이나 아쉬워했다. 작전 시간에는 직접 영어로 선수들과 의사소통했다.
특히 이날 경기에는 비디오 판독이 없었는데, 석연치 않은 판정이 나왔을 때는 심판을 향해 두 손을 번쩍 들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어 관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날 김연경은 코트 안팎에서 팀을 이끌었고, 값진 데뷔 승리까지 챙겼다.
김연경은 “감독만 해도 쉽지 않은 자리다. 그런데 오늘 감독도 하고 선수도 하고 방송 인터뷰도 하고 참 많은 역할을 했다. 제가 하나로 좀 부족했던 것 같다”며 “나중에 지도자를 할 생각도 있기 때문에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도자를 하게 된다면 (세계 곳곳에) 커넥션이 많으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향후) 오퍼가 있을 수 있는데, 여러 가지를 열어두고 생각하겠다”고 강조했다.

작전판에 쓴 ‘Enjoy’에 대해선 “그게 작전이었다”며 “선수들이 조금 다운되거나 행복해 보이지 않을 때 작전판을 보여주면서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얘기해줬다”고 설명했다.
김연경의 옛 동료들은 지도자로서 김연경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김연경과 엑자시바시(튀르키예)에서 같은 소속이었던 조던 라슨(미국)은 “훌륭한 배구 선수였던 김연경의 성격이나 태도가 감독을 하면서도 잘 드러날 수 있을 것”이라며 “최선의 점을 잘 끌어내기 때문에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응원했다.
페네르바체(튀르키예)에서 역시 김연경과 한솥밥을 먹은 에다 에르뎀(튀르키예)은 “김연경은 선수 때 긍정적이었고 동료 선수들이 잘할 수 있도록 푸시해 주곤 했다”며 “이런 자질을 모두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독특한 부분이기 때문에 김연경이 뭘 하든 다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을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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