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일본 걸밴드 스캔들(SCANDAL)이 일본 전국투어 및 아시아투어 마지막 일정으로 서울 무신사 개러지에서 단독공연을 펼쳤다. 2020년 5월 내한공연이 예정됐다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무산됐던 아쉬움을 4년 만에 해소한 셈이다. 스캔들은 2008년 메이저 데뷔 신고식을 치르고 2012년 일본무도관 입성을 이룬 일본 팝록/팝펑크 걸밴드계의 상징적 존재다. 팀이 결성된 2006년부터 따지면 벌써 경력 19년차 중견 밴드이기도 하다. 걸밴드로서 이 정도 연차로 꾸준히 활동을 지속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국내서 스캔들은 ‘블리치’ ‘강철의 연금술사’ 등 일본애니메이션 주제곡들을 부르며 서브컬쳐 팬덤 기반으로 인지도를 넓힌 팀이다. 그 바탕으로 2014년엔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에도 참여해 공연을 펼쳤다. 이 같은 배경 탓에 올해 펜타포트 참여가 결정된 국내 걸밴드 QWER과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둘은 그 외에도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일단 스캔들도 애초엔 전혀 다른 목표를 지향하던 이들로 구성됐었다. 멤버들은 오사카의 보컬댄스스쿨에 다니던 수강생들이었다. 그러다 스쿨 측 권유로 악기를 쥐게 되면서 4명 수강생들이 곧바로 밴드로서 결성되고, 10대 여성들로 구성된 팝록/팝펑크 밴드 콘셉트가 해외서도 주목받아 아직 부족한 실력임에도 프랑스, 홍콩 등지 해외 페스티벌에 초청돼 활동을 펼쳤다. 그야말로 ‘아이돌 밴드’이자 ‘성장형 밴드’ 전형이었던 셈이다. 그런 탓에 멤버들이 직접 작곡에 참여한 노래는 데뷔 5~6년 뒤부터야 나왔고, 펜타포트에 초청되던 시점만 해도 아직 작곡에 참여한 타이틀곡은 전무할 때다.
흥미로운 건 QWER이 해외, 특히 일본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하며 일본 측에서 나온 반응 중엔 의외로 스캔들 얘기가 딱히 없단 점이다. 대부분 스캔들 콘셉트의 시조 격인 1999년 데뷔 걸밴드 존(ZONE)을 언급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선 존이야말로 위 ‘아이돌 밴드’ ‘성장형 밴드’ 전형을 만들어낸 팀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 국내만으로 볼 땐 전성기의 인기 고점도 더 높았다. 스캔들은 그에 비해 해외서 더 널리 알려진 팀이다.
확실히 존은 콘셉트 원형으로서 ‘날 것’의 향취가 그득했다. 10대 중반 여성들 구성의 댄스그룹을 만들려다 차별화를 위해 멤버들 손에 악기만 쥐어주고 에어연주를 시키는 ‘무늬만 밴드’로 시작했다. 악기는 사실상 퍼포먼스용 도구였던 셈이다. 그래서 새롭게 등장한 명칭이 ‘밴돌(밴드 아이돌)’이다. 그렇게 싱글 1, 2집이 나오고, 그 사이 멤버들이 악기연습을 꾸준히 해 실제 연주를 시작한 건 싱글 3집부터. 이후 현상적 인기를 얻어 NHK ‘홍백가합전’에도 3회 연속출장하고 오리콘 차트 1위 앨범까지 지닌 인기밴드로 거듭났다.

물론 록밴드가 늘 인기 있던 일본선 이전부터도 걸밴드들이 존재했다. 1970년대부터 젤다, 쇼야, 프린세스프린세스 등 실력파 걸밴드들이 꾸준히 등장해 인기를 모았다. 그러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게 1991년 버블붕괴 이후부터다. 경제 불황이 지속되자 일본대중은 자아를 의탁하며 그 성장과정에 편승해 뿌듯함을 만끽할 수 있는 이른바 ‘성장형’ 팀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돌계에선 1997년 풋내기들을 오디션으로 뽑아 성장시킨다는 걸그룹 모닝구무스메를 탄생시켜 시대를 갈랐고, 밴드계에선 존 등의 콘셉트가 등장했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위 노선에서 대중형으로 성공한 팝록/팝펑크 걸밴드는 엄밀히 스캔들이 마지막이라 볼 수 있다. 이후부턴 밴드메이드, 러브바이츠, 트라이던트 등 대중적 노선에선 벗어난 하드록, 헤비메탈, 하드코어 계열 걸밴드들이 많다. 전반적으로 1970~80년대 흐름이 되돌아온 인상이다. 그럼 저 ‘아이돌 밴드’ ‘성장형 밴드’ 콘셉트는 어디로 갔을까. 많이들 알고 있겠지만, 만화-애니메이션 중심의 서브컬쳐 계통으로 넘어갔다. ‘케이온!’부터 ‘봇치 더 록!’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유행의 흐름 말이다. 여기에 ‘뱅드림!’처럼 애초부터 애니메이션, 게임, 라디오 등 다양한 미디어믹스로 기획된 IP 전개도 가세한다.
이처럼 흐름이 바뀌게 된 데엔 의외로 K팝의 일본 상륙이 기폭제로 작용했단 의견이 많다. K팝의 실력파 아이돌 콘셉트가 1020층에 크게 어필하면서 기존 댄스그룹 아이돌부터, 그중에서도 트렌디한 라이트팬덤과 관련 깊은 걸그룹부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단 것. 그렇게 48그룹의 퇴조가 시작되고, 반대로 페어리즈부터 XG까지 이르는 실력파 아이돌 콘셉트가 여기저기서 등장했다. 그런 흐름에 걸밴드계도 영향 받아 따라가게 됐단 것이다.
‘아이돌 밴드’ ‘성장형 밴드’는 대신 셀링 포인트인 성장서사를 강화하고 캐릭터성을 극대화시킨 만화-애니메이션으로 소화돼 시대를 풍미하는 중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메인스트림과 서브컬쳐 경계가 무너지면서 사실상 주류문화 중심에 서고 있다. 지난 7일 일본서 개봉한 ‘극장총집편 봇치 더 록! Re:’, 즉 ‘봇치 더 록!’ TV판을 극장용으로 재편집한 전편(前篇)은 개봉 즉시 엄청난 화제를 모으며 7~9일 흥행수익 2억1800만 엔을 기록, 전주 1위였던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를 제치고 당당 주말 흥행 1위 자리에 올랐다.
같은 시점, 한국선 ‘봇치 더 록!’ 콘셉트에 영향 받았음을 공표하고 나선 걸밴드 QWER이 대단한 인기를 구가하는 중이다. 음원 차트 수위뿐 아니라 노래방 차트에서까지 1위를 기록하며 대중형 팀으로서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이에 일본 3대 시사주간지 중 하나인 슈칸신초의 인터넷판 데일리신초에서 6월5일자로 QWER 집중분석 기사를 내보내고 해당기사가 야후재팬 뉴스 메인을 장식하면서 일본서도 부단한 관심을 표명하는 중이다. 5일 이후 QWER 뮤직비디오 댓글은 전부 일본어로 달리고 있단 얘기까지 나올 정도.
이렇듯 한일 간 대중문화 흐름은 또 다시 얽히고설킨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20여 년 전부턴 늘 그래왔고, 팬데믹을 거치며 그 흐름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일본서 ‘봇치 더 록!’ 극장판이 흥행 1위를 차지할 때 한국선 그에 힌트를 얻은 QWER이 주류시장서 급부상하고, 다시 그 QWER이 일본 대표 포털사이트 메인기사로 오를 만큼 화제를 모아 일본시장 가능성을 드높이는 장면, 그리고 바로 그때 콘셉트 원형 중 하나인 스캔들이 성황리에 국내공연을 치르는 장면의 파노라마처럼 말이다. 인접국들 간 특유의 문화공유 현상이 이번엔 록밴드와 서브컬쳐를 아우르며 다시 한 번 흥미로운 풍경을 낳고 있다.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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