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의 미국시장용 걸그룹 기획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22일 하이브 유튜브 채널에 기습적으로 공개된 3편의 영상을 통해서다. 하이브와 미국 게펜 레코드가 합작하는 걸그룹 론칭 프로그램 타이틀이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란 점, 한국시간 9월2일 새벽 1시경 첫 방송분이 공개된단 점, 전 세계에서 지원자를 모집했고 뽑힌 연습생들은 이미 1년 이상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상태란 점, 그리고 프로그램은 12주 걸쳐 진행된 뒤 최종회 생방송에서 투표를 통해 최종 멤버들이 결정된단 점 등이 그렇게 영상을 통해 알려졌다.
한편 같은 미국시장용 기획으로 JYP엔터테인먼트에서 이미 진행 중인 ‘A2K’도 있다. JYP가 미국 리퍼블릭 레코드와 손잡은 기획이며, 지난달 14일부터 유튜브 채널을 통해 그 결성과정 영상이 3~4일에 한 편씩 공개되고 있다. 현재 13회 차까지 진행된 상태.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와 다른 부분은, 이쪽은 단순 미국시장용이라기보다 이른바 ‘K팝 3단계’론에서 3단계에 해당하는 ‘현지화’ 모델이란 점이다.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2005년 즈음부터 주장해온 그 3단계론 말이다. 예선 통과한 11명 연습생 중 10명이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출신이며, 나머지 한 명도 미국생활 경험 있는 영어능통자다.
이처럼 4대 대형기획사 중 벌써 두 곳에서 진행 중인 미국시장용 팀들 ‘진짜’ 공통점은 사실 영어가능자 선발 같은 부분이 아니다. ‘다인종’ 부분이다. ‘A2K’는 예선통과 11명 중 2명만 한국계 또는 한국혼혈이고 나머진 모두 다른 인종이다.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는 아직 밝혀진 게 없지만, 위 영상에서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직접 “올림픽 같다”고 표현한 점 등으로 봤을 때 역시 다양한 인종뿐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향연이 될 전망이다.
그런데 여기서 좀 더 생각해봐야할 부분이 있다. 이 같은 방향성이 과연 K팝의 외연확장 및 미래성장 정방향이 맞느냐는 점에 대해서다. 이제 K팝도 ‘힘’이 생겼으니 한국과 한국인을 세계에 더 많이 알려야한다는 식 민족주의적 요구 차원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선 K팝 글로벌 부상 구도 중 서구시장에서의 놀라운 반향은 그 원인이 정확히 무엇이었느냐는 근본적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는 얘기다. 큰 차원에서 보면 서구시장 K컬쳐 열풍도 결국 2010년대 들어 북미 중심으로 급속히 밀어닥친 ‘아시아 열풍’ 흐름의 일부라 볼 수도 있단 것이다. 그중 한국 콘텐츠가 다방면에서 앞서나가는 데다 국내 언론미디어에선 K컬쳐 성과만 주로 보도하다보니 전체 흐름이 잘 보이지 않는 것뿐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일단 영화 부문에선 중국계 미국인과 싱가포르 화교사회를 묘사한 올 아시안 캐스팅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2018년 현상적 성공을 거뒀고, 같은 해 한국계 미국인 존 조 주연의 미스터리 스릴러 ‘서치’의 예상 밖 성공도 있었다. 거기서 한국영화 ‘기생충’과 중국계 미국인들 고향 방문담 ‘페어웰’, 한국인 미국 이민사 ‘미나리’로 이어진 뒤, 지난해 중국계 미국인들 중심의 판타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대박까지 간다.
일본애니메이션과 일본만화도 그 사이 한층 더 성장했다. 2021년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북미에서만 4951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등 아시아는 물론 서구 각지에서 연달아 성공을 거뒀고, 뒤이어 ‘드래곤볼 슈퍼: 슈퍼 히어로’(3811만 달러), ‘극장판 주술회전 0’(3454만 달러) 등도 기대 밖 성공을 거뒀다. 일본애니메이션의 역대 북미 흥행기록 5위권 내 3편이 2020년대 콘텐츠로 채워질 정도. 일본만화 성장세도 어마어마하다. 2019년 미국서만 전년대비 26% 성장을 거두더니 2020년엔 44%, 그리고 2021년엔 160% 성장이란 폭증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한국서도 많이 보도된 한국 웹툰 성공이 더 들어간다.
TV드라마 부문도 마찬가지다. ‘오징어 게임’ 신화만 툭 불거져 나온 게 아니다. 2015년 대만계 미국인 가정을 다룬 미국 ABC 시트콤 ‘프레쉬 오프 더 보트’가 시즌6까지 연장되는 성공을 거뒀고, 이듬해엔 캐나다 CBC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이 한국계 캐나다인 가정을 다루면서 역시 시즌5까지 진행되는 성공을 얻었다. 흐름을 이어 한국계 미국인 10대 소녀들 연애 풍속도를 그린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가 2018년 큰 성공을 거두며 2편의 속편과 올해 스핀오프 ‘엑스오, 키티’까지 낳았다. 이 흐름에서 ‘오징어 게임’의 엄청난 성공과 잇따른 한국 드라마 신화가 씌어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전 지구적 현상이라는 K팝 열풍이 더 들어간다.
이처럼 2010년대 접어든 시점부터 북미를 위시로 서구 각지에서 ‘아시아 열풍’이 일어난 이유는 간명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 전체에서 일본 정도만 선진국으로 분류됐기에 일본문화만 툭 불거져 관심 끌던 상황과 2000년대 한국과 중국이 함께 강국으로 떠오르고 게임 체인저 격으로 인도까지 주목 받는 현 상황은 서로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단 것이다. 여기서 특히 중국의 부상이 결정적이다. ‘신(新)냉전’ 표현까지 등장할 정도로 이제 중국이 미국과 라이벌관계를 형성하는 위협적 존재가 되고 새로운 동서(東西)경쟁 구도가 성립되다보니 서구사회에서 아시아를 의식하는 정도와 그 인상 측면에서 차원이 달라졌다는 것.
‘위협’은 곧 ‘인정’이 된다. 자연스럽게 ‘관심’으로 넘어간다. 그중에서도 특히 문화적 관심으로 꽃피우는 경우가 많다. 1960년대 일본문화를 중심으로 한 서구사회 오리엔털리즘 열풍도 따지고 보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과 전쟁을 벌인 일본의 위협적 인상이 역할 한 결과라 볼 수 있고, 1970~80년대 냉전 내내 미국서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컴 앤 씨’ 등 소련영화들에 열광하고 아카데미상까지 안겨주면서 폴란드나 체코, 유고슬라비아 등 동구권 공산진영 영화들과 대중음악 등까지 큰 관심을 모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이처럼 ‘아시아 자체가 뜬다’는 관찰이라면 비(非)아시아계 중심으로 K팝 팀을 만들어 미국시장에 내놓는단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와 ‘A2K’ 등은 어딘지 번지수를 잘못 짚는 모양새가 된다. ‘아시아인들임에도 성공했다’가 아니라 오히려 ‘아시아인들이라서 성공했다’는 관점도 일정부분 성립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시아의 삶과 문화, 심지어 외모까지도 관심을 모으며 ‘핫’하게 떠오르는 시점이기에 K팝도 그런 흐름과 상호작용을 일으켜 성공해온 것이라면 이들 기획 자체가 오히려 각이 맞지 않는 전략이 돼버린다.
아닌 게 아니라, 비록 K팝 기획사 결과물은 아니지만, 그간 해외서 K팝 성공을 벤치마킹해 K팝 시스템 모델로 만들어낸 팀들은 대부분 실망스런 결과를 낳아온 바 있다. 웨스트라이프, 원디렉션 등을 발굴한 사이먼 코웰 프로듀싱 미국 보이그룹 프리티머치, 리키 마틴이 프로듀싱한 남미시장 타깃 보이그룹 CNCO 등 얘기다. 이들의 결과를 오로지 한국의 ‘문화 기술(Cultural Technology)’이 없어서라 판단하는 건 여러모로 무리가 많다.
그나마 그런 판단 하에서 ‘우리가 직접 하면 달라진다’는 발상으로 위 다인종 미국시장용 기획들이 줄지어 등장하는 것이라면 비록 자화자찬 격 인식이나마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질 수도 있지만, 어쩌면 지금 상황은 그보다 심각한 요인 탓일 수도 있다. 서구 콘텐츠 및 서구인은 아시아서 문화적 주류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아시아는 절대 서구에서 주류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오랜 자격지심, 서구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발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같은 아시아 내에서도 그렇다. 일본 등지 현지화 팀들 성공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이 필요하기도 하다. 많은 부분 아이돌 마케팅 툴 정점이라는 오디션 방송의 성공 덕이라 봐야하지 그 성공비결이 ‘현지화’에 방점이 찍히는 건 아니란 의견이다. 이 같은 부분까지 포함해 현재 K팝 해외시장 전략은 좀 더 고민해봐야 할 지점들이 아직 많다. 다행스런 점이 있다면, ‘A2K’나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이나 모두 기본적으론 오디션 방송 기반이란 점이다. 살펴보면 그간 서구에서 인기를 끈 아이돌그룹 원디렉션이나 피프스하모니, 리틀믹스 등도 애초 오디션 방송 ‘엑스 팩터’ 출신들이다. 유일하게 안심되는 부분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