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박병은이 ‘이브’로 진한 사랑을 경험했다.
22일 tvN 수목드라마 ‘이브’ 종영인터뷰에서 박병은은 ‘이브’를 마친 시원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여러모로 ‘첫’ 경험이 많은 ‘이브’다. 약 1년 가까이 공들인 ‘이브’를 마치며 “막방을 보고 나면 시원하게 맥주 한 잔 마시고 잠들었는데, 어젠 잠을 설쳤다”면서 “배우 인생 처음으로 이렇게 오래 촬영을 했다. 끝이 왔을 때 다른 작품과 다른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첫 주연을 맡았지만 부담은 없었다. 그저 촬영 회차가 늘었고, 체력적인 힘듦이 조금 추가됐을 뿐이라며 덤덤하게 털어놨다.
사랑도 분노도 감정의 끝을 달린 작품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도 많았다. 그는 “24년 배우 생활 중 이렇게 느낀 작품 처음이었다. 최선을 다했고, 여러 시도도 많이 했다. 배우로서 큰 도움이 된 작품”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브’ 13년의 설계 끝에 인생을 건 복수에 나서는 여자와 그 대상이 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박병은은 재계 1위 기업 LY의 최고경영자 강윤겸으로 분해 기업인다운 카리스마와 동시에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여려지는 남자의 이면적인 얼굴을 연기했다. 이라엘은 13년 간 부모의 복수를 위해 LY에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윤겸은 모든 사실을 알고서도 라엘을 사랑했다.
“윤겸은 철저하게 혼자였어요. 사랑도 해보지 않은 인물이라 생각했죠. 철저하게 자신만을 위해 살아갔던 사람이 라엘에게 똑같은 상처를 발견한 거예요. 라엘이 윤겸 인생의 첫사랑인 거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나서는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진짜 사랑을 했어요. 그래서 더 슬퍼요. 여러 사랑을 받았던 게 아니라 한 번도 사랑하지 못한 윤겸의 사랑이었던 거죠. 그게 ‘이브’ 그리고 강윤겸의 매력인 것 같아요.”

인물을 구축하면서 고민도 많았다. 덜어야 하나 더해야 하나 고민했고, 만일 덜 한다면 어느 선까지 눌러야하나 고민했다. “전체적으로 응축됐던 감정이 중후반부에 더 표현될 것 같았다. 초반에 너무 무표정하지 않나 싶었지만, 강윤겸이라면 이 감정이 맞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매 작품 아쉬움이 남지만, 점점 배워가고 있다는 그는 “이제 20년 넘게 배우 생활을 하다 보니 ‘꽤 오래 했구나’ 생각이 문득 들더라”며 웃었다.
강윤겸과의 싱크로율은 높지 않다. 하지만 그는 윤겸이 느끼는 ‘외로움’에 주목했다. 낚시광으로 이름난 박병은은 “혼자 낚시를 가거나 캠핑을 하다 보면 나만 아는 나만의 외로움이 있다. 물론 윤겸은 훨씬 큰 상처와 외로움이겠지만, 문득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윤겸을 통해 느끼게 됐다”고 고백했다. 외로움과 더불어 성공의 의지, 혼외자라는 상황,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강윤겸을 완성했다.
강윤겸은 아내 한소라, 그리고 운명적으로 얽힌 이라엘과 상반된 관계를 유지했다. 라엘에 관해 그는 “정말 모든 걸 바치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 연기는 처음 해봤다. 무조건 사랑하고 모든 걸 해주고 싶은 그 감정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반면 소라를 향한 감정은 고민의 여지가 있었다. “감정을 정리할 때 힘들었다. 소라를 싫어한 상태에서 결혼했는지, 좋았지만 소라의 악행으로 싫어진 건지 고민했다”면서 “고민 끝에 처음부터 정략결혼에 좋은 관계가 아니었던 걸로 결론지었다”고 답했다.
강윤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이라엘, 한소라의 외도 등 상류층의 욕망을 드러내기 위해 진한 애정신도 많았다. 배우 인생 첫 베드신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에도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었다. 박병은은 “10월 1일에 PT를 끊고, 2일에 쉬고 3일부터 아침, 저녁으로 PT를 받았다. 그러다 어깨부상이 왔다”고 했다. 일명 ‘갑빠’를 만들기 위한 다급한 노력은 부상만을 남겼다고 머쓱해했다.
무엇보다 ‘이브’는 이라엘 역의 상대역 서예지의 복귀작으로 화제가 됐다. 박병은은 “(이슈를) 알고 있었지만, 생각하지 않았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배우와의 만남이었다. 호흡이 잘 맞을까만 생각했다”고 했다.
“초반에 (서)예지씨 대본을 봤는데, 엄청나더라고요. 극도의 집중력이 발휘되는 배우예요. 그 대본과 배우로서의 자세를 봤을 때 기분이 좋았어요.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할 배우인데 이렇게 열심히 준비해왔다는 게 감사했죠. 몇 달간 서로를 믿고 감정을 나눴어요. 고맙고 감사했죠.”
‘이브’는 첫화부터 ‘탱고’로 떠들썩했다. 탱고로 인해 만남이 이뤄지고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화제를 모은 건 일명 ‘방구석 탱고’. 처음 전문가들의 ‘방구석 탱고’ 영상을 보고 박병은도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촬영 현장은 달랐다. “보신 분들은 빵 터지신 것 같은데, 배우들과 제작진은 그렇지 않았다”는 박병은은 “탱고를 배우다 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됐다. 탱고에 익숙한 사람들은 요리하다가도 음악이 나오면 춤을 춘다. 탱고를 배워보니 잘 몰랐을 때와는 다르게 보이는 면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엔딩신도 라엘과 윤겸의 탱고신으로 마무리됐다. 박병은은 “마지막 신은 탱고를 추는 행위보다 둘의 감정이 좋다고 생각한 장면이다. 서로 탱고로 만났고, 서로를 바라보고 회상하며 마무리 짓는 장면이었다”고 덧붙였다.

복수와 사랑을 둘러싼 갈등. 이 모든 걸 차치하더라도 윤겸과 라엘의 관계는 ‘불륜’이었다. 박병은은 “결혼한 사람이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인간에게 결혼은 찰나의 시간이고 또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상상의 공간에서 둘의 사랑은 진심이었다고, 윤겸이 변심한 게 아니라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의 동질감에 충분히 끌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여겼다.
반면 “(현실에서) 그렇게 뜨거운 사랑은 하기 싫다”며 손사래를 쳐 웃음을 자아냈다. 박병은은 “내 연애 주관은 안 싸우고, 맛있는 걸 함께 먹고, 공원도 가고. 친구처럼 지내는 관계”라면서도 “그래도 아직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이 들수록 사랑에 무뎌지고, 혼자도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브’를 통해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배우로서도 인간 박병은으로서도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의미를 찾았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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