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인천 정세영 기자] ‘방망이를 만들어볼까?’
온몸체험의 아이템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심 끝에 이번 주제를 야구 배트 만들기로 정했다. 선수들에게 인정받는 배트 회사를 수소문했다. 꽤 많은 선수에게 문의한 결과, 요즘 소위 ‘뜨는 방망이’ 업체가 있단다. 인천 서구에 위치한 (주)본스포츠라는 업체다.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9회 극적인 동점 홈런을 터뜨린 SK 강타자 최정, 당시 6차전에서 연장 13회 결승 대포를 터뜨린 한동민의 방망이가 모두 이 회사의 작품이다. 1군 선수들이 가장 애용하는 브랜드였다.
●‘배트 장인’을 만나다.
공장을 찾았다. 일일 체험을 도와줄 ‘방망이 장인’ 박종규 부장을 만났다. 장인의 ‘포스’가 확 느껴졌다. 15년 넘게 야구배트만 전문적으로 만든 인물이다. 몇몇 선수의 이름을 대자 해당 선수들이 사용하는 방망이 무게와 길이 등이 곧바로 나왔다. 그런데 박 부장은 기자가 영 미덥지 못한 모양이었다. “부담은 갖지 마세요. 사인용 배트 등으로 돌려도 됩니다.” 배려해준 말이었지만, 부담감은 더욱 밀려왔다.
야구규칙 1조 10항은 ‘방망이’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가장 굵은 부분의 지름이 2¾인치(7㎝) 이하, 길이는 42인치(106.7㎝) 이하여야 한다. 아울러 하나의 목재로 만들어야 하고 담황색, 다갈색, 검은색 만이 1군 경기에서 사용할 수 있다.
프로용 배트는 대부분 맞춤 생산이다. 선수의 체격이나 스윙 스타일에 따라 무게와 길이, 구조가 다르다. 일반적으로 국내 선수들은 길이 33~34인치에 무게 850~910g 사이의 배트를 선호한다. 나머지는 개인 취향이다. 그립부터 굵기까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얼핏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나무배트는 1000여 가지 모델이 있다.
●“마침 이재원 선수가 의뢰를 했네요.”
평소 절친하게 지낸 SK 이재원의 방망이를 만들기로 했다. 주문 의뢰는 총 6개. 박 부장은 “빨리 장갑부터 끼세요”라며 재촉했다.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수량에 한계가 있단다.
1군 선수용의 나무 재질은 단풍나무(하드메이플)다. 원래는 물푸레나무를 주로 썼다. 현재 넥센 강타자 박병호만이 물푸레나무를 쓴다. 단풍나무 배트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배리 본즈가 2001년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작성할 때 사용하면서 유행을 탔다. 이때 국내에도 도입됐다. 단풍나무 원목은 전량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수입한다.
원래는 원목을 수입한 뒤 제재소에서 절단하고 고주파를 사용해 건조한 뒤 공작기계를 사용해 토대를 만든다. 고주파 기계에서 습도와 온도를 조절해 120시간 정도 건조한 뒤 본격 공정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 업체는 이 과정을 국내에서 진행하는 대신 1차 가공을 마친 원재료(빌렛)를 들여온다. 빌렛의 개당 가격은 5만원 전후다.
●본격 작업 시작
먼저 빌렛을 선택해야 했다. 창고에는 무게별로 정리가 돼 있었다. “요게 딱 좋겠네요.” 박 부장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유를 물으니 “영업비밀”이라고 했다. 선수마다 선호하는 무게가 있고 이재원이 원하는 무게과 길이에 선택한 빌렛이 딱이란다.
그 뒤 향한 곳은 공작 기계가 있는 곳이다. 과거에는 직접 배트를 깎아야 했지만 자동화 설비를 갖춰 이제는 더 정확한 배트 생산이 가능해졌다. 원목을 들어 기계 선반 위에 끼웠다. 박 부장은 기계 옆 컴퓨터로 향했다. 이어 이재원의 배트 데이터가 담긴 자료를 보여줬다. “이재원 선수가 원하는 배트는 이것입니다. 이렇게 세팅만 해주면 기본 틀이 나와요. 참 세상이 좋아졌습니다.”
한 10여분을 기다렸을까. 기계 선반 위에는 대강의 배트 모양이 나와 있었다. 박 부장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라고 말했다. 2차 건목으로 더 모양을 정교하게 다듬은 뒤 사포로 방망이를 문질러야 했다. 아주 거친 사포부터 시작해 부드러운 사포로 마무리를 한다.
사포 작업은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일이지만 무게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전자저울에 무게를 달아 수시로 체크한다. 마무리 작업으로 색을 칠하는 과정에서 도료 무게를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겨우 100g 내외다. 놀라웠다. 사포를 담당하는 이상연 차장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사포질을 했다. 그는 “한 60g 정도 줄었을 것”이라고 했고 무게를 재자, 정확히 60g이 줄어 있었다. 기자 차례가 왔다. 떨리는 손으로 사포 작업을 했다. 박 부장은 “몇그램이 줄었을 것 같아요?”라고 물었다. “한 10g 정도요”라고 대답했다. 기자 손을 떠난 방망이는 꽤 오차가 있었다.
방망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맨 꼭대기 부분이 움푹 패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달표면의 웅덩이같이 패인 이 부분이 ‘가리방’ 작업의 흔적이다. 일본어인 ‘가리방’은 우리말로 ‘줄판’이라는 뜻. 영어로는 ‘커프트 배트’라고 한다. 박 부장은 “배트 끝을 파내면 방망이가 전체적으로 균형이 더 잘 맞는다”고 했다.
마지막이다. 도료 작업이다. 떨리는 손으로 스프레이를 이용해 투명 도료를 입혔다. 색은 전문가가 작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최종 단계인 이름과 등번호를 새겼다. 그런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박 부장은 “최정 선수의 일화가 있어요. 원래 저희 예전 배트에는 중심에 BON이라는 글자가 들어갔는데, 요즘에는 회사 로고가 바뀌어 B라는 글자만 들어가요. 최정 선수는 엄청 예민한 것 같아요. 바뀐 ‘B’자가 자꾸 신경이 쓰인대요. 그래서 한동안 BON으로 따로 납품했습니다.”
●비싼 이유가 있다
배트는 비싸다. 한 자루 가격은 15∼25만원 선이다. 전문 인력이 세밀한 공정을 거쳐 제작해 싼 값에 공급할 수가 없다. 체험 후 구본선 대표이사는 “더 책임감을 느끼고 더 좋은 방망이를 만드는 환경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2010년 설립으로 역사는 짧지만 최근 본배트가 유행을 하면서 수요가 많아졌다. 인천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2015년 프리미어12 대회,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을 거치면서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다고 했다.
선수들의 배트는 천차만별이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들여다보면 모두 다 다르다. 그라운드라는 전쟁터에서 야구 배트는 선수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무기다. 품질 검사 결과, 큰 이상은 없다고 했다. 기자의 손때가 묻은 배트는 1월초 이재원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기해년, ‘빵빵’ 터뜨려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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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천 김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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