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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줌마 라라의 일기] 9화. 캥거루 부부

입력 : 2016-03-09 04:40:00 수정 : 2016-04-05 13: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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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결혼하고도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캥거루부부’였다. 당신께서 오랜 시간 아등바등 피땀 흘려 얻은 인생을 우대리는 손바닥을 벌려 쉽게 구걸했다. 세상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쪼르륵 달려가 부모의 주머니 속에 비겁하게 숨어버리곤 했다.

시댁은 신혼집에서 5분 거리였고 일주일에 2박 3일은 시댁에서 살았다. 우대리는 영역 표시라도 하듯 마당에 오줌부터 쫘악 갈기고 들어가선 라면땅이나 먹으며 솔로와 다름없는 생활을 즐겼다. 결혼이 이런 건가,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할 결혼’이 ‘부모에게로 예속된 결혼’이 돼버린 것이었다.

내 자유의 씨는 말라갔다. 밥에 곰팡이가 피어도, 며칠씩 섬으로 사라졌다 와도 잔소리할 사람 하나 없었던 나만의 솔로공화국은 사라져버렸다. 대신 그곳엔 윤기가 흐르는 솥밥이나 들기름에 재운 파래김 같은, 다정한 ‘엄마의 냄새’가 났다. 객지생활 12년 만에 처음 누려보는 밥상의 호사였고 가족의 온기였다. 간장게장이니 파김치니 바리바리 싸들고 오는 귀갓길의 뿌듯함이란, 나는 시댁에서 받아먹는 훈훈한 떡고물을 슬슬 즐기게 되었다.

시부모님이 끼고 사시는 데는 우대리의 유별난 과거도 한몫했다. 툭하면 파출소로 달려가며 살아오신 까닭이다. 클럽에서 그리즐리 곰만한 흑인 병사의 껄렁한 시비를 참지 못하고 분기탱천 벽돌을 들고 덤벼들었다는 입영 전야는 친구들 사이에서 전설이 되었다. 까칠한 성질머리는 여전했다. 택시운전사랑 싸우고 온 날도 그랬다. 술에 취해 귀가하던 남편은 깨어보니 말도 안 되는 요금이 나왔더란다. ‘십오 분 거린데 왜 한 시간이 걸린 거냐’며 시비가 붙었다. 남편은 미터기에 찍힌 대로 낼 수 없다 버텼고 기사는 받아야겠다 맞섰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남편은 분을 못 삭이고 결국 주먹으로 앞 유리창을 박살내버렸다.

수습은 아버님 몫이었다. 득달같이 달려와 자식 대신 머릴 조아리고 해결의 수순을 밟는 식이었다. 자식의 실수는 쉽게 덮어지고 다시 반복되었다. 만약 며칠 콩밥이라도 먹고 나왔다면 잠잠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삼십만 원의 술값을 쓰면 내일 삼십만 원이 채워지고, 오늘 에어컨이 필요하면 내일 에어컨이 도착하는 삶이었다. 우린 아버님 생전에 한 번도 모진 세상에 홀로 혹독하게 던져지지 못했다.

아버님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아버님은 아홉 살에 고아가 되어 광부 일을 하시면서 어린 남매 다섯을 먹여 살려야 했던 참담한 삶의 터널을 지나오신 분이다. 결혼 후 무허가의 뿌리 없는 서울 생활, 배고파 우는 자식들을 자물쇠로 잠가 놓고 돈벌이를 나가셔야 했던 아버님은 '돈이 신'이라는 신념을 갖고 계실 정도로 서울의 차가운 뒷방에서 돈의 위력에 진저리를 치셨다.

당신께선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자식에게만은 금수저를 물려주고 싶어 하셨다. 그것이 삶의 무게에 소스라치게 놀라본 당신의 지극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홀로 걸어봐야 굳은살이 생기고 조악한 돌밭도 건너는 발힘이 생기는 것. 출발선은 유리해 보였으나 막상 달리기가 시작되자 우대리는 툭하면 넘어지는 유약한 베이비였다. (다음 편에 계속)

김라라 / 식품기업 R사 마케팅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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