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나세요? 당시 저는 기약없는 1군행만을 바라보며 불안감과 싸우고 있었어요. ‘내가 피나는 노력을 해도 1군에 못 가면 어떡하지’, ‘야구로 내가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형체 없는 고민이요. 어쩌면 그때는 야구보다 이런 불안감이 저를 더 힘들게 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저의 마음을 다잡아준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장문의 편지였습니다. 아버지가 그러셨죠. 삶이란 것은 늘 처음이 어렵고 힘들다. 처음 엄마, 아빠를 부르는 것, 처음 걸음마를 떼는 것, 젓가락질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 기억하진 못해도 어느 것 하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요. 그러면서 소득없는 불안감은 잠시 내려두고 감사한 마음으로 지금 내 앞에 놓인 높은 벽과 진심으로 마주하라고 하셨어요.
그 문장을 보고 순간 머리가 띵하고 울렸어요. 생각해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축복이잖아요. 처음 야구를 시작해서 공에 얼굴을 맞아 피범벅이 됐을 때 아버지는 걱정하면서 야구하는 것을 만류하셨지만 그래도 야구하고 싶다고, 야구장 데려가달라고 펑펑 울던 그 어린 꼬마를 생각하면 더욱 그런 마음이 들어요.
아! 아버지의 편지가 아니었다면 지난 시즌 LG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의 트라우마가 더 오래갔을지도 모르겠어요. 플레이오프가 시작되면서 다시 그때의 생각도 나거든요. 그럴 때마다 이 편지를 꺼내보며 마음을 다잡게 돼요. 아버지의 조언은 결국 제 앞의 높은 벽을 넘을 수 있는 절실함과 간절함의 기반이 되었거든요. 물론 넘어야 할 벽이 아직도 많지만 그래도 이제는 불안하지 않아요.
아버지가 그러셨죠. 아들만 아버지의 등을 보며 자라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도 아들의 등을 보면서 산다고요.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아들을 가졌으니 어느 영웅 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요. 아버지가 바라보는 이 작은 아이의 등이 언젠가 아버지도 기댈 수 있도록 절대 위축되지 않겠습니다. 묵묵히 제 앞에 놓인 벽을 기쁜 마음으로 넘겠습니다. 늘 힘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시리즈 우승하고 찾아뵙겠습니다.
정리=박인철 기자 club100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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