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배우 설경구의 덕이다. ‘용서는 없다’는 설경구가 선택한 영화라는 이유만으로도 명분을 인정받는다. 무난한 스릴러를 설경구가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최근 설경구는 눈에 띄게 가벼워졌다. ‘해운대’에서는 정 많은 코믹연기를 선보였다. 결혼 이후 웃음도 많아졌고 로맨틱한 면모도 발견됐다. ‘그놈 목소리’ ‘싸움’ ‘강철중’으로 이어지던 최근 설경구의 필모그래피에서 무난함을 발견했던 영화 팬이라면 이번 ‘용서는 없다’를 기대해도 좋다. ‘박하사탕’ 시절 설경구의 독기를 발견할 수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부검의라는 강민호 박사를 연기하는 설경구는 영화 전체를 아우르며 극에 무게감을 실었다.
만약 영화의 균형이 흔들린다는 생각이 든다면 설경구와 대결할 살인마 류승범의 연기가 들쑥날쑥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팡이를 짚은 환경운동가 이성호를 연기하는 류승범은 기름기를 뺀 말투 등으로 독특한 살인마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계획된 설정 이상의 광기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과거 ‘사생결단’이 황정민-류승범의 대결구도로 영화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다면, 이번 ‘용서는 없다’는 일방적으로 설경구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어져 있어 흥미가 반감된다. 오히려 좌중우돌 뛰어다니는 여형사 민서영 역의 한혜진이 돋보인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팽팽한 두뇌싸움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영화의 트릭은 눈에 보이는 수준이고, 전개방식에 있어서도 허점이 여러 번 발견된다. 추리소설 마니아들은 ‘용서는 없다’에게 점수를 많이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용서는 없다’가 내놓은 반전 카드는 특별하다. 전개과정에서 갉아먹은 점수를 단번에 만회한다. 관객들은 영화의 라스트 신에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영화는 비장의 무기를 몸속에 품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꺼내 관객들의 심장으로 파고든다. 설경구는 절규하며 장대한 피날레를 장식한다.
‘용서는 없다’는 통속적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영리하다. ‘공필두’, ‘키다리 아저씨’ 등을 기획한 김형준 감독의 실력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놀랍다. ‘올드보이’ 이후 한국 스릴러의 계보를 이을 영화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내년 1월7일 개봉된다.
스포츠월드 김용호 기자 cassel@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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