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을 소개하는 아시아 현대미술 전문가 되고파
![]() |
| 영국에서 활동중인 독립큐레이터 이지윤씨가 국제갤러리 카페에서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영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이번 전시에는 회회, 설치, 조각,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38점이 선보이고 있다. 영국에서 독립큐레이터로서 활발히 활동 중인 이지윤씨를 국제갤러리에서 만나 독립큐레이터의 역할과 영국-한국 미술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이러니 & 제스추어’전에 대해 설명한다면.
▲이번 전시는 이 시대 미술의 중요한 담론인 ‘아이러니’에 대한 접근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전시에 초대된 작가들은 특정 컨셉트에 맞춰 선정된 작가들이 아니라 각자의 작품 안에서 생성되는 아이러니를 본인들만의 제스추어로 표현할 수 있는 작가들이죠. 서로 다른 장르의 작품들이 묘한 아이러니를 이루며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새로운 창작에너지를 표출하는 전시입니다.
영국의 문화와 대중문화에 깊이 내재해 있는 아이러니에 대한 해석과 접근은 다양한 블랙유머로 확장되어 영국 문화를 드러내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존재하죠. 아이러니적 접근을 통해 현실의 한계를 넘으려는 다양한 노력은 영국 미술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지는 특징 중 하나이고요.
-함께 방한한 세 작가를 소개해달라.
▲왕립미술학교 교수로 재직중인 데이비드 배철러는 플라스틱, 버려진 궤짝 등 일상적인 소재를 사용한 설치조각을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1파운드숍’에서 구한 값싼 플라스틱 빗이나 집게를 모아 탑처럼 쌓은 작품을 선보이고 있죠. 샘 벅스턴(37)은 가구디자이너 출신의 프리랜서 작가로 이번 전시에선 정교한 스테인리스 스틸 작품을 내놓았습니다. 얇은 스테인리스 스틸을 정교하게 산으로 부식시켜 공장에서 찍어 나오는 것인데 작품 드로잉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순수조각을 전공한 리처드 우즈(43)는 전통적인 판화기법을 합판조각에 적용해 건물 바닥이나 벽에 설치할 수 있는 상업적 판화 작품을 국제갤러리 전시장 바닥에 깔았는데 이로 인해 새로운 공간이 생겨난 느낌이 들 거예요.
![]() |
| 지난 17일 방한한 영국작가 샘 벅스턴이 얇은 스테인리스 스틸을 산으로 부식시켜 팝업북처럼 만든 자신의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
▲영국 팝아드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처드 해밀턴은 판화 작품을 내놓았어요. 해밀턴은 전력회사 실습생으로 일하면서 일을 마치고 저녁에 예술학교에서 미술수업을 들으며 작가의 꿈을 키웠는데, 이번엔 1952년부터 1954년 사이에 작업한 11점의 판화 작품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밖에 영국 여왕으로부터 MBE 작위를 받은 잉카 쇼니바레의 14분짜리 영상 작품도 주목할만 하죠.
-이제 개인적인 쪽으로 질문을 돌리죠. 독립큐레이터란 말이 생소한데.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미술품이나 예술품을 보존 관리하고 연구하는 사람을 큐레이터(학예연구사)라고 하는데, 지난 20년간에 걸쳐 현대미술계에 특별히 생간 직종이 독립큐레이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국제화가 진행되면서 다국가적인 문화를 교류시키고 새로운 것을 기획하고 받아들이는 전문 전시기획자가 필요하게 된 거죠. 미술시장이 국제화되면 될수록 전시기획자로서의 큐레이터의 역할은 더욱 커지리라 봅니다.
-영국에서 미술 공부를 했다.
▲결혼 후 한국에 1년 있다가 남편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대 골드스미스대학에서 서양미술사를, 시티유니버스시티에서 미술 MBA라 할 수 있는 미술관·박물관경영학을 공부했습니다. 골드스미스대학은 yBa(영국의 젊은 개념주의 작가군단)를 발굴한 학교죠. 저도 모르고 시작한 학교였는데 굉장히 좋은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두 곳에서 석사를 끝낸 후 2001년부터 독립큐레이터로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01년 성곡미술관에서 영국현대미술전을 처음 기획했고 그 이후 한국 작가들을 런던과 유럽에 소개하는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1년에 보통 큰 전시 두 개 정도를 기획하죠.
-독립큐레이터를 하게 된 동기는.
▲두 곳의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보니 인턴 큐레이터나 어시스트 큐레이터로 들어가기에는 나이가 많았어요. 물론 보수도 너무 적었고요. 일본말과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입장에서 힘들지만 독립 큐레이터로서 한국의 미술을 영국에 소개하는 문화교량적인 역할을 하기로 결심한 거죠.
-독립큐레이터로서 인문학적 지식을 강조하는 편인데.
▲요즘 큐레이터 과도 많이 생기고 큐레이팅을 배운다는 말도 하는데 결국 아트는 사람의 삶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큐레이터는 문학과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고 봅니다. 물론 미술이론이나 미술언어에 대한 이해를 미술사적인 공부를 통해 해야만 하지만 인문학에 대한 개인적 탐구가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인문학적 기초가 중요다하는 걸 절실히 느꼈죠. 한 시대의 철학과 사고가 시각적인 언어로 나오는 게 미술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고요.
-런던에서 미술기획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죠?
▲2003년부터 ‘숨(Suum)’이라는 현대미술기획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어요. 현대미술사 석사 공부를 하거나 미술관·박물관경영학 공부를 하는 후배들이 와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8년째 이화여대 여름학기 3학점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서양미술사와 큐레이터십을 가르치죠. 국제적인 미술 프로모터가 앞으로 많이 나와 한국의 문화를 외국에 많이 알려야만 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는.
▲2005년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왕립미술학교 전시관에서 ‘서울 지금까지(Seoul Until Now)’라는 주제로 열린 전시는 굉장히 중요했어요. 덴마크 문화부 초청으로 한국작가 25명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를 기획할 수 있었어요. 당시 제작한 도록은 아직도 덴마크 서점에서 팔리고 있습니다. 2006년에는 런던의 유서깊은 아시아하우스에서 한국현대미술전을 기획해 한국작가 10명을 소개하는 전시를 가졌는데, 주요 미술잡지에서 리뷰도 받았죠. 그리고 올해 1월 런던에 새로 개관한 한국문화원 개관전으로 기획한 ‘굿모닝 미스터 백남준’전에서도 한국작가 20명을 소개했습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한국의 작가들을 든다면.
▲조덕현 안규철 김범 김지원 정연두 등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까지 굉장히 실험적인 작가들을 많이 소개했습니다. 페인터라기 보다 설치, 영상 이런 작가들이지요.
-특별히 기억나는 작가라도 있는지.
▲2007년 6월 영국미술협회 지원으로 버밍엄에 있는 울버햄프턴 미술관에서 설치작가 최정화 개인전을 열었는데 작가로선 외국에서 가진 첫 대규모 전시였죠. 최정화는 국제적인 비엔날레를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설치미술가로 소개된 작가지만 한번도 외국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없었거든요.
-작가를 선정하는 기준은 있는지.
▲저는 현실을 주제로 하는 내용들을 아주 풍부한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국제적인 미술의 담론 안에서 한국작가들을 해석하고 접근하는데, 한국 내에서 어느 정도 검증되면서 제 전시 기획 개념에 맞을 경우 선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작가들만 기획하는 건 아니죠. 전시를 외국에서 할 경우에는 국제 작가들과 한국작가를 섞어서 전시기획을 합니다.
![]() |
| 데이비드 배철러의 설치 작품. 1파운드숍 등에서 구입한 플라스틱 머리빗, 집게, 스푼 등 일상적인 소재를 사용해 작품을 구성했다. |
▲아니에요. 아직도 전시기획의 전문성에 대한 인식이 낮습니다. 그래서 좀 더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논문 제목을 한국 미술의 세계화 관점에서 ‘1989년 이후의 한국과 일본 현대 패러다임의 변화’로 잡고 연구중인데, 박사과정을 마치고 책으로 펴낼 계획입니다. 일을 하다 보니까 아시아 미술에 대한 영어로 된 책이 너무 없어요. 책은 한국과 일본의 현대미술이 세계화 되는 사회 안에서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고찰하는 내용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직은 젊은 나이이기 때문에 작가들과 일선에서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를 만드는 일에 열중하려고 합니다.
-영국 미술시장은 어떤지요.
▲뉴욕은 너무 상업화 된 반면 영국은 아직은 덜 상업화 된 부분이 있습니다. 새로운 미술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제스추어들에 대해 조금 더 열려 있는 입장이죠.
-한국 미술시장이 크게 성장했죠?
▲전 세계 미술 시장안에서 중국 마켓이 갖고 있는 셰어가 7%라면 한국 마켓은 0.8%가 된다는 통계자료가 나와 있습니다. ‘아 세계미술 시장에서 0.8%밖에 안되는구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인구나 땅덩어리나 작가들의 수를 생각하면 중국이 7%일 때 한국이 0.8%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규모죠. 그렇기 때문에 이런 호황세를 한국의 일반대중들이 크게 느끼고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판매 위주의 작품들로 변화하는 것이 많이 보이고, 작품 가격이 외국작가들의 작품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싸져가는 이상현상도 나타나는 것같아요.
-아트펀드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인데.
▲미술품이 분명히 투자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투기만을 목적으로 작품을 켈렉팅 하는 것은 굉장히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에 대한 이해와 작품을 선별할 수 있는 전문가와 협력하지 않은 투기성 투자는 사실은 굉장히 짧은 명을 가자고 있습니다. 전문가의 콜레브레이션을 적극 추천하는 바입니다.
-경매를 통해 미술품 판매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미술시장에 있어서 아주 투명하게 작품가격을 볼 수 있는 곳이 경매기록이기 때문에 경매회사들의 리스트며 작품가격들이 중요해지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랑에서 경매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보게 되는데, 국제적으로도 경매회사들의 작품과 작품가격이 소개되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어린 작가들의 작품이 화실에서 물감이 마르기도 전에 옥션으로 가게 되는 그러한 과정이나 현상은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보고 있습니다.
-한국미술시장의 전망은 어떻게 보나요.
▲개인적인 평가가 될지 모르지만 중국은 작가군이 너무 다양해 좋은 작가와 나쁜 작가가 너무 많이 섞여 있어 옥석을 가리는 작업이 필요하죠. 마켓 쪽으로 성공한 작가들이 너무 리딩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고요. 일본은 너무 마이크로 팝쪽으로 편향되는 작품성향이 나타나는데 비해 한국 작품은 굉장히 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한국은 정말 다양한 것같습니다. 큰 그룹으로 묶어지지 않아 그게 어려울 정도지요. 다양한 창조적인 작품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너무 상업미술시장의 영향을 받아 잘못 흘러가지만 않는다면 좋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는 시기라고 봅니다.
-민간문화외교사절 역할도 하고 있다고 보는데.
▲굉장히 미력한 활동같긴 하지만 사실은 이러한 개개인의 움직임들이 모여 걸국은 큰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들이 꾸준히 뛰면 그런 것들이 앞으로 국가적인 지원과 정책으로 연결되어 나갈 수 있는 기반점이 될 거라고 믿고 있고, 또 그걸 인식하는 한국의 전문가 선생님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전문가 집단에 의해 진행되는 작은 움직임들은 계속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 미술에 관심이 많았나요?
▲어버지께서 미술애호가여서 어렸을 때부터 미술관에 자주 가고 작가를 만날 기회가 많았어요. 그렇게 해서 미술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긴거죠. 그렇다고 화가가 될 생각은 없었어요. 전 문학과 철학을 좋아했거든요.
-독립큐레이터로서 포부가 있다면.
▲아시아 국가들을 왕래하면서 아시아 현대미술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영국 켈렉터들에게 소개하는 아시아 현대미술 전문가로서 자리를 잡고 싶습니다.
전시는 8월14일까지 국제갤러리 본관에서 계속된다. (02)733-8449
글·사진=스포츠월드 강민영 기자 mykang@sportsworldi.com
■이지윤은 누구…
연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남편(김민중 전 런던대 교수)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대 골드스미스대학에서 서양미술사를(석사), 그리고 시티대학에서 미술관박물관경영학(석사)을 공부했고, 현재 독립큐레이터로 일하면서 런던대 ‘코토드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번역서로 2004년 ‘미술관 디스플레이-전시의 연금술’(아트북스)가 있다.
<세계일보>세계일보>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