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

검색

[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배트맨 영화’, 성적은 왜 다를까

입력 : 2022-05-09 15:00:00 수정 : 2022-05-09 13:41:43

인쇄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영화박람회 시네마콘에서 영화 ‘더 배트맨’ 속편 제작이 공식 발표됐다. 3월1일 국내 개봉된 매트 리브스 감독-로버트 패틴슨 주연 배트맨 리부트의 속편 말이다. 감독과 주연배우들, 그리고 주요제작진 모두 속편에 복귀할 예정. 그런데 이 같은 소식은 국내서 놀라울 정도로 대중적 이목을 끌지 못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다. 국내서 ‘더 배트맨’은 흥행에 실패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총 관객 수 90만4153명. 아무리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라도 꽤나 심각한 숫자다. 직전 배트맨 단독 프랜차이즈 마지막 편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비교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 642만8574명의 1/7도 채 안 된다. 해외와 비교해보면 상황이 더 잘 보인다. 5월4일 현재까지 ‘더 배트맨’은 북미지역 3억6905만 달러, 그 외 지역들에선 3억9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전 세계 수익 기준으로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75% 정돈 된다. 그런데 한국선 15%도 안 된다. 적어도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일정수준 흥행호조를 보였던 전 세계 모든 나라들 중 한국만큼 ‘더 배트맨’에서 성적이 폭락한 나라는 없다.

 

 이에 국내 대중문화 커뮤니티들에서 거론되는 ‘더 배트맨’ 국내 실패원인은 여러 가지다. 대표적으로, 상영시간이 너무 길다는 점. 그런데 176분이면 확실히 대단하긴 하지만, 앞선 ‘다크 나이트 라이즈’도 164분짜리였다. 12분차가 명운을 갈랐을 듯싶진 않다. 거기다 상영시간은 세계 어디서나 똑같이 느끼는 것이니, 한국 관객들만 유난히 긴 상영시간을 못 견딘다면 거기서부턴 전혀 다른 논의가 필요하다. 다른 원인들도 대부분 비슷하다. 다 그럴싸해 보이지만, 왜 한국과 다른 많은 나라들이 이토록 다른 반응을 보이는지 설명해주진 못한다.

 

 여기서 보다 근본적인 부분을 짚을 필요가 있다. 애초 배트맨 프랜차이즈가 한국서 인기 있는 것이 맞았느냐는 점이다. 일단 실사영화화 된 첫 배트맨 프랜차이즈, 팀 버튼 감독의 1989년 작 ‘배트맨’을 시작으로 1997년까지 4편이 나온 시리즈는 한국서 모조리 흥행 부진을 겪었다. 그리고 2005년 시작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3부작 역시 그 첫 편인 ‘배트맨 비긴즈’는 국내 흥행 실패작이었음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당시 총 관객 수 90만3202명을 기록하며 사실상 ‘더 배트맨’과 차이 없는 성적을 보였다.

 

 ‘배트맨 영화’가 한국서 ‘팔리기’ 시작한 건 엄밀히 ‘배트맨 비긴즈’ 속편인 2008년 작 ‘다크 나이트’부터다. 422만8360명을 동원하며 ‘배트맨 영화’도 한국서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신호탄을 날렸다. 벌써 14년 전이라 지금은 당시 분위기가 많이 잊혔지만, 엄밀히 이변에 가깝단 평가가 더 많았다. 그리고 ‘다크 나이트’에서 생긴 신뢰도와 기대치로 4년 뒤 3편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다트 나이트’를 능가하는 성적을 보인 흐름.

 

 한 마디로, 한국선 애초 ‘배트맨 영화’에 대한 애착도 신뢰도 없었단 얘기다. 나아가 배트맨이란 캐릭터 자체가 딱히 인기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누구라도 알만큼 유명한 캐릭터지지만, 이른바 ‘유명한 게 전부’에 속했다. 한국서 애착과 신뢰를 보내며 팬 베이스를 형성한 건 오직 ‘크리스포터 놀런의 ‘다크 나이트’’였고. 똑같이 ‘배트맨’이 아니라 ‘다크 나이트’ 이름을 달고 같은 놀런 연출로 등장한 그 후속편까지만 성공한 셈.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한국서 ‘배트맨’이란 본래 명칭을 달고 성공한 영화는 지금껏 단 한 편도 없었다. 별칭에 속하는 ‘다크 나이트’들만 흥행전선에서 활약했을 뿐이다.

 

 ‘다크 나이트’가 ‘배트맨의 저주’를 깨고 국내 관객들에 어필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여러 가질 들어볼 수 있다. 먼저 한국대중이 반응하는, 세상이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오해하는 비운의 영웅 신화로서 강조된 측면이 있다. 배우들 능란한 연기가 과시되는 영화를 즐기는 취향에서 히스 레저의 ‘조커’ 역할이 화제를 모으며 효과 낸 부분도 존재한다. 또 어쩌면, 본국 미국서의 비평적 찬사가 놀라운 수준이었단 점이 중요했을 수도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각종 장르영화에선 이 같은 미국 내 비평이 생각 외로 중요하다. 아무 기반 없이 미국 내 열렬한 호평과 기록적 흥행성적만 들고 공포영화 ‘겟 아웃’이 214만 관객을 동원했던 이변이 한 예다.

 

 어찌 됐건 분명한 건, 한국선 배트맨뿐 아니라 그 어떤 캐릭터라도 그 자체로 충성도를 보유하는 경우란 보기 힘들단 점이다. 특정 비전, 특정 캐스팅으로 특정 제작진에 의해 만들어진 콘텐츠와 그 연속선상 프랜차이즈만 신뢰를 얻어 선택될 뿐이다. 특히 만화원작 캐릭터들 경우 원작만화는 여전히 일부 마니아층에만 소비되고 있고 그래서 팬 베이스도 만화가 아닌 ‘가장 호응 좋았던 영화판’을 원작 삼아 형성되기에 이런 일들이 쉽게 벌어진다.

 

 그런데 그와 좀 다른 경우라도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다. 예컨대, 007 프랜차이즈 역시 숀 코너리와 로저 무어 007은 큰 인기를 끌었지만, 이어진 티모시 댈튼과 피어스 브로스넌 007은 극장가에서 재미를 보지 못하고 ‘비디오용 영화’ 취급까지 받은 바 있다. 다니엘 크레이그 007도 그 시작을 알린 ‘카지노 로얄’은 실망스런 흥행을 보였다가, 이후 2차 시장서 호응을 얻어 그 바탕으로 신뢰가 새롭게 쌓인 경우. 어떤 의미에선, 피어스 브로스넌 007과 다니엘 크레이그 007을 사실상 서로 다른 캐릭터로 받아들인다고도 볼 수 있다.

 

 큰 차원에선, 바로 이 같은 한국대중 특성이 ‘더 배트맨’의 국내와 해외 간 반향 차이를 이끌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더 배트맨’의 진짜 승부는 영화가 2차 시장 스트리밍으로 풀리는 시점부터라고 볼 수 있다. ‘배트맨이기만 하다면’ 달려와 줄 캐릭터 팬 베이스는 고작 100만도 채 못 미쳤지만, 스트리밍시장서 ‘더 배트맨’이 개별적 콘텐트로서 호감을 산다면 그로부터 또 다른 ‘다크 나이트’가 탄생될 수도 있다.

 

 한국의 ‘캐릭터’ 시장은 이처럼 다소 까다롭다. ‘캐릭터’를 바라보는 멘털리티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영화가 그간 보여준 갖가지 기적들 역시 이처럼 독특한 시장 환경, 독특한 한국대중 정서에 기인한단 점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자유시장 환경에서 한 나라 대중문화는 그 1차 소비층인 자국 소비자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란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