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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20년이 지나도 ‘심은하’인 이유

입력 : 2022-03-21 08:00:00 수정 : 2022-03-20 13:4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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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한 언론에서 배우 심은하의 복귀 소식을 알렸다. 심은하가 종합콘텐츠기업 바이포엠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 드라마 출연을 논의 중이라 보도한 것. 그러나 해당보도는 같은 날 바로 반박됐다. 심은하 측은 입장문을 통해 “보도된 바이포엠스튜디오라는 회사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다”면서 “이러한 허위 보도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렇듯 하루짜리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어찌됐건 ‘심은하’란 이름이 오랜만에 다시 등장하자마자 온갖 미디어들이 달려들어 대서특필하는 광경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만큼 심은하는 은퇴 후 20년이 넘도록 여전히 ‘대단한 이름’으로 남아있단 얘기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심은하는 활동하던 1990년대에도 고소영, 전도연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로 꼽혔었고, 지금도 199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기억돼 미디어들이 이번 같은 관심을 보인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당시 심은하는 ‘당대 트렌드’를 대변하는 아이콘은 또 아니었단 점이다. 오히려 상당부분 안티트렌드 아이콘에 가까웠다. 쉽게, 심은하를 통해선 당시 시대상이나 풍속도를 엿볼 수가 없는데, 단순히 그 인기가 엄청났기에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 기묘한 얘기지만, 하나씩 풀어보면 이해가 쉽다.

 

 많이들 알다시피, 심은하는 1993년 MBC 22기 공채 탤런트로 뽑혀 1994년 MBC 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정다슬 역으로 가히 ‘다슬이 신드롬’을 일으키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리고 이 ‘다슬이’ 이미지는 심은하 커리어 내내 따라다닌 그 대표 이미지가 됐다. 정다슬은 그야말로 1970~80년대 순정만화에나 나올 법한 소녀 캐릭터 그대로다. 청순하고 단아한 외모에 긴 생머리 혹은 포니테일을 하고 니트에 롱스커트를 입은, 고전적 여성스러움을 대변하는 보수적인 여성. 그런데 1994년 당시엔 이게 명확한 안티트렌드였단 것이다.

 

 당시는 이른바 ‘X세대’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대중문화 속 젊은 여성상이 송두리째 뒤바뀌고 있었다. 당차고 발랄하며 자신만만한, 때론 도발적이기까지 한 신세대 여성상이 대중문화 중심으로 떠올랐다. 1988년 화제를 모은 심혜진의 코카콜라 CF 즈음을 시작으로 최진실 이미지를 완성시켰던 1992년 MBC ‘질투’, 고소영을 스타로 끌어올린 1993년 MBC ‘엄마의 바다’ 등이 그 노선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또 ‘마지막 승부’에서 조역으로 등장했던 신은경은 이어진 MBC ‘종합병원’에서 쇼트커트를 하고 남성들과 부대끼며 일하는 외과 레지던트 역할로 현상적 인기를 누렸고, 곧 신세대 여성상 ‘총합편’에 해당하는 김희선의 시대로 넘어간다.

 

 심은하는 이처럼 거대한 트렌드 정반대편에 서있던 안티트렌드, 고전적 여성상이었다. 그 탓에 당시 젊은 여성층에선 반응이 좋지 않았고, PC통신 등에서도 “옛날 사람 같고 촌스럽다”는 등 비난이 많았지만, 젊은 남성층은 ‘다슬이’에 열광했다. 신세대 여성상은 사실 여성층 중심으로 인기 있는 것이었지 남성층 상당수는 여전히 고전적 여성상에 애착이 강했던 것이다. 즉 여성소비자들이 주도하는 대중문화계 여성향(女性向) 트렌드 속 몇 안 남은 남성향(男性向) 상품이 희소성을 갖고 남성소비자들 이목을 집중시킨 현상이었다.

 

 이후 심은하는 사생활 스캔들에 휘말려 위기를 겪은 뒤, 같은 해 MBC 드라마 ‘M’을 통해 극적으로 부활했다는 게 알려진 역사다. ‘M’에서 팜므파탈적 역할로 전환해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단 설명이 따라붙는다. 흥미로운 건, ‘M’ 이후 지속된 심은하의 ‘탈(脫) 다슬이’ 행보는 사실상 모조리 실패했단 점이다. 비행청소년, 교포 1.5세대 의사, 심지어 호스티스 역까지 넘나들었지만 모두 미스캐스팅 소릴 들으며 연기력 측면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그렇게 수년 동안 ‘헤매던’ 심은하를 다시 톱스타 위치로 돌려놓은 게 ‘도로 다슬이’, 일종의 ‘변형 다슬이’였다. 1998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심은하의 기존 청순한 이미지를 보다 섬세하게 조명한 캐릭터로 그에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안겨줬고, 이어진 ‘미술관 옆 동물원’도 만화적 소탈함이 묻어나는 ‘다슬이’ 변형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1999년 SBS ‘청춘의 덫’ 역시 지고지순한 여성이 사실혼 관계 남성에 버림받고 복수를 꾀한단 설정으로 기존 캐릭터 맥락을 깨진 않는 형태였다. 결국 ‘M’의 성공은 심은하 이미지 변신에 방점이 찍힌 게 아니라 처음 시도된 메디컬호러 장르 자체가 화제를 모아 벌어진 일이었을 뿐, 심은하 상업성은 늘 ‘다슬이’란 안티트렌드 캐릭터 중심으로만 발현돼왔던 셈이다.

 

 이 같은 심은하 커리어가 지금의 대중문화산업에 제시하는 바는 간명하다. 모든 주류 트렌드는 동시에 비주류적 안티트렌드 가능성도 함께 열어두는 형태란 것. 특정 콘셉트가 인기 얻으면 모두들 그리로 달려가 ‘동네 축구’ 소릴 듣는 게 한국대중문화시장 분위기지만, 오히려 그런 ‘동네 축구’가 빈번히 일어날수록 그 흐름이 충족시키지 못하는 안티트렌드 수요도 그만큼 누적돼 트렌드에 발맞춘 상품들만큼이나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게 여성향과 남성향 차원으로 갈라지는 흐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대중문화시장 자체가 여성층 소비 중심으로 움직이는 건 맞지만, 그만큼 여성향 상품도 많이 쏟아지기에 오히려 레드오션이 될 수 있단 점을 이해해야 한다. 시장 자체는 보다 협소하지만 그만큼 맞춤형 상품도 흔치 않아 블루오션 공간이 생기곤 하는 남성향 시장 존재도 늘 인식해야 한다. 아이돌산업 등 대중문화시장 전 분야에 걸쳐 통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가끔씩 심은하가 계속 활동했더라면 과연 어떤 커리어를 구가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결국 이미지 전환을 피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심은하와 유사한 이미지로 떠올랐던 전도연도, 심은하 이후 ‘국민 첫사랑’ 손예진도 일정 시점에 이르자 이미지 전환을 시도해 롱런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이는 모두 배우 연령대가 올라가면서 발생하는 역할 확보 차원 문제였을 뿐, 주류 트렌드에서 벗어난 안티트렌드 승부수와 한동안 그를 유지하는 전략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음을 이들 모두가 보여주고 있다. 오직 해당 이미지로서 내놓는 콘텐츠 품질만 관건이 될 뿐이다. 비판 자체가 일종의 상업 코드로서 작동하는 언론미디어의 수많은 메뉴들 중 하나, ‘이미지 변신 요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단 얘기다. 결국 불발로 끝난 심은하 ‘21년 만의 컴백’ 소식으로 되돌아보게 되는 스타산업의 또 다른 단면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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