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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대중문화 흐름, 결론은 ‘타이밍’

입력 : 2021-01-10 18:00:00 수정 : 2021-01-10 18: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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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대표적 시사주간지 타임이 새해를 맞아 ‘2021년 가장 기대되는 영화 39편’을 꼽아 게재했다. 기사에 거론된 영화들만 봐도 과연 2021년은 기대작들 홍수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공개 보류된 영화들이 한꺼번에 쏟아질 예정이어서 그렇다. 007 제임스 본드 신작, ‘블랙 위도우’ 등 마블영화들, ‘분노의 질주’ 9편, ‘미션 임파서블’ 7편 등등 블록버스터들부터 리들리 스코트 감독의 ‘마지막 결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리메이크 등등 아카데미상을 내다보는 영화들까지 끝도 없다.

 

 그런데 여기에 좀 색다른 영화가 한 편 끼어있다. 한국계 미국인 저스틴 전(한국 이름 전지태) 감독의 독립영화 ‘블루 바유’다.

 

 저스틴 전은 애초 배우로 시작한 영화인이다. ‘트와일라잇’ 프랜차이즈 등에서 조역으로 활약하다, 2013년 작 ‘21 앤드 오버’에선 ‘위플래쉬’ 마일스 텔러와 함께 공동주연까지 맡았다. 그리곤 독립영화 감독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모두 그의 실제 아이덴티티에 준하는 미국 한인사회 얘기다. 특히 1992년 LA폭동 당시 LA 한인사회 상황을 담은 2017년 작 ‘국’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블루 바유’는 그의 4번째 감독/각본/주연작이다.

 

 ‘블루 바유’는 한국계 미국 입양인에 대한 영화다. 저스틴 전이 그 역할을 맡았고, 2016년 ‘대니쉬 걸’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알리시아 비칸더가 그 아내로 등장한다. 영화는 루이지애나에서 자리를 잡고 가정을 일군 한국계 입양인이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일 탓에 미국서 강제 추방될지 모르는 상황을 다룬다. 사실 어느 면으로 보나 저예산 독립영화고, 저예산 독립영화다운 소재다. 그럼 사실 이런저런 한계도 뚜렷해진다. 무엇보다, 위 열거한 거창한 영화들 사이에 껴 ‘2021년 기대작’ 리스트‘씩이나’ 올라간다는 건 사실 좀 어색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단 것이다. 일단 한국계 미국인감독 리 아이잭 정(한국 이름 정이삭) 영화 ‘미나리’가 일으킨 선풍이 있다. ‘미나리’는 아메리칸드림을 안고 농장을 개척하기 위해 미국 아칸소 주 시골에 정착한 한국이민가정을 그린 영화다. 내년 4월 열릴 아카데미상 주요부문 유력후보로 지목되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그 전초전 격 영화비평가협회상들은 한창 휩쓰는 와중이다. 오클라호마와 노스캐롤라이나 비평가협회에선 작품상을 받았고, 로스앤젤레스와 보스턴 비평가협회에선 출연배우 윤여정에 여우조연상을 안겼다.

 

 비단 ‘미나리’뿐만이 아니다. 2020년 할리우드는 온통 아시아 천지였다. 현재 각종 비평가협회상을 휩쓸고 있는 ‘퍼스트 카우’는 19세기 서부개척시대 백인 요리사와 중국인 도망자의 우정을 다룬 영화다. 미국 내 아시아인들은 낯선 이방인이 아니라 미국이 성립되기까지 역사를 함께한 이들이란 점을 알린다. 그리고 어워즈데일리 등에서 아카데미 작품상 프론트러너로 꼽히는 ‘노마드랜드’는 중국인 여성감독 클로에 자오가 연출한 영화다.

 

 이 같은 ‘아시아 천지’는 대략 2018년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대히트부터 시작된 흐름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이전에도 미국서 ‘아시아 붐’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이전까진 ‘우리와는 다르다’는 식 오리엔털리즘 타자화 차원에서 쿵푸영화나 재패니메이션 정도만 미국서 받아들여졌지만, 2010년대 후반 들어선 아시아인들 역시 같은 현대사회 문제들을 고민하는 이들로서 그 콘텐츠가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배경엔 도널드 트럼프 집권 시기 미국 대중문화계 전반에 걸쳐 일종의 카운터컬쳐처럼 진행된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성(diverse and inclusive)’ 기조가 깔려있었다. 2018년 최초의 흑인 히어로 영화 ‘블랙 팬서’가 그렇게 등장했고, 올해는 ‘상치’를 통해 최초의 아시아계 히어로가 등장할 예정이다. 한편 또 다른 마블영화 ‘이터널스’엔 한국배우 마동석이 출연하고, 감독은 위 ‘노마드랜드’의 중국인 감독 클로에 자오다. 전반적으로 할리우드 내 소수인종 배려가 트럼프 집권 시기 내내 크게 강화됐다.

 

 한편, 여기에 OTT 등 넷 기반 영상 콘텐츠 유통체계가 주류화되면서 배급권력층 편견에 따른 유통 장벽이 무력화되는 흐름이 동시 전개됐다. 마(魔)의 ‘1인치 장벽’은 그렇게 OTT부터 무너지고 있다. 그러니 이에 수혜를 입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영화들과 아시아계 영화작가들이 계속 미국 주류무대에 서게 되는 흐름이 생성된 것.

 

 당연히 한국영화산업 입장에서 더없는 호재다. 그러나 일종의 분수령 격으로 알아둬야 할 부분도 존재한다. 전반적으로 ‘닫혀 있던 문’이 열려가는 방향인 건 맞지만, 그중에서도 딱 ‘지금’이 미국영화시장 내 아시아 콘텐츠 및 아시아인들 진입이 가장 유리한 시점일 수 있단 점이다. 한 마디로, 지금은 어디까지나 코로나 19 판데믹 상황 탓 모든 영상 콘텐츠가 OTT 중심 홈 미디어로 집중된 분위기이기에 수혜를 입고 있을 수 있단 얘기다.

 

 당장 아카데미상 관련만 해도 그렇다. 예전 같으면 아카데미상은 그 대중적 성격만큼이나 각 콘텐츠 흥행성적에도 민감히 대응했다. 쉽게, 흥행이 안 되면 아무리 놀라운 비평적 성과를 등에 업었어도 아카데미상에선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많은 점에서 아시아 콘텐츠, 또는 미국 내 아시아인종에 의한 콘텐츠가 무시돼온 것도 이런 속성 탓이 크다. 5.9%밖에 안 되는 아시아계 인구비중으론 흥행 가능성이 없단 편견 탓에 일단 배급 자체가 잘 안 되고, 그럼 흥행성적도 떨어지는 게 상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각 콘텐츠 ‘흥행성적’ 자체를 잘 알 수가 없는 시점이다. 당장 극장서 제대로 개봉하는 영화도 없고, OTT 순위는 넷플릭스 등 각 플랫폼 자체집계로 ‘일부’만 공개되는 실정이다. 무엇이 이용자들에 어느 만큼 인기 있는 콘텐츠였는지 속속들이 알 방도는 없다. 그러니 그저 미디어 화제성 정도로만 판단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고, 그러다 보니 ‘미나리’ 같은, 딱히 대단한 상업적 어필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영화도 쉽게 아카데미상 주요부문 후보로 거론될 수 있었단 배경이다.

 

 ‘이 기회에’ 세계 최대 영화시장 미국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한국영화산업이라면 이 점을 반드시 인지해둘 필요가 있다. ‘지금’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는 것이다. 당장 코로나 19 상황이 해소되고 난 뒤엔 또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있을지 모른다. ‘미나리’가, ‘블루 바유’가 더는 주목받고 환영받지 못할 조건과 환경이 마련될 수도 있다. 뭐니 뭐니 해도, 대중문화산업은 결국 ‘타이밍’이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분야다. 면밀한 판단과 전략을 기대한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사진=‘미나리’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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