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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클래식 음악 속 인문학]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바이러스 포비아

입력 : 2020-03-12 16:05:46 수정 : 2021-01-19 17: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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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옮으니 전화 끊어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로 유명한 전설의 피아니스트 글렌굴드(Glenn Gould/1932~1982)는 다양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사회공포증, 접촉공포증, 무대공포증, 바이러스 공포증 등. 무대공포증과 사회공포증이 심해지면서부터는 세계 각국의 연주 요청을 거부하고 오로지 레코딩으로만 팬들과 소통을 했던 기행의 연주자로도 유명하다. 

 

1955년 따스한 6월, 미국 뉴욕의 오래된 교회에 23세의 청년 굴드가 레코딩을 하기 위해 나타났는데 그는 베레모를 쓰고, 두꺼운 코트에 머플러, 장갑까지 끼고 있었다. 굴드는 뉴욕의 물은 마실 수 없다며 식수로 사용할 물병과 각기 다른 색깔로 구분된 5개의 약병, 그리고 타올을 한 다발 챙겨 들고 다녔다. 연주 전에는 30분간 따듯한 물에 손을 담그고 있었으며 절대로 에어컨이 켜진 식당을 가지 않았고, 타인과의 접촉도 최대한 피했다. 

 

그의 각종 Phobia는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져서 다른 사람과의 악수도 피하고, 손을 내밀어도 “올해는 악수 안 하는 해로 정했어요”라며 바이러스 감염에 대해서도 극도의 공포 증세를 가지고 있었다.

 

 

 

대화는 전화통화를 통해서만 했는데, 통화 도중 상대방이 감기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감기 옮아요”라며 일방적으로 끊어버렸을 정도.

 

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인터뷰 후 방송용 마이크가 머리에 부딪혔다. 그러자 “나는 이제부터 뇌출혈이 올 거야, 한 시간 후쯤이면 어지럼증이 올 거야”라며 이상행동을 했으며 그의 전속 피아노 조율사가 친근감의 표시로 가볍게 등을 툭 치자 굴드는 그를 폭행죄로 고소하기도 하는 등의 파라노이아(Paranoia: 편집증)적인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매체가 한정적이던 시절, 굴드의 이러한 기행에 대해서 흥얼거리는 허밍이 녹음된 독특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은 수많은 클래식 팬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회자되며 더욱 유명세를 탔고 지금도 절판되지 않은 베스트셀러로 남아 있다. 

 

어릴 적부터 심약한 체력과 멘탈을 가지고 태어난 굴드는 그렇게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살았지만 연주자로서는 짧은 50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런 것을 보면 한때 유행했던 말 ‘될놈될’(될 놈은 된다)이란 말을 떠올리면서 ‘살놈살’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펜더믹 사태는 전 세계가 네트워크화돼 있어서 더욱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내 주변의 언저리에서 환자가 속출하고 있지만 아직 예방이나 치료약이 없다는 이야기는 우리를 점점 더 예민하게 만들고 있다. 이럴 때는 무딘 것보다는 차라리 예민한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오늘 아침 외출을 하면서 나는 마스크를 쓰고 따듯한 날씨에도 불구, 장갑을 꼈다(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기에…). 그리고는 굴드가 생각났다. 그렇다. 지금은 굴드처럼 예민해야 할 때다. 항상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끼고, 올해는 악수하지 않는 해로 정했다.

 

살놈살 이라도…

 

문화해설위원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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