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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토크] 봉준호 감독 "왜 기차를 선택했냐고요? 낭만적이잖아요"

입력 : 2013-07-30 13:30:46 수정 : 2013-07-31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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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돌아왔다. 이번엔 할리우드 배우들과 ‘설국열차’를 타고 돌아왔다.

영화 ‘설국열차’는 새로운 빙하기, 인류 마지막 생존지역인 열차 안에서 억압에 시달리던 꼬리칸 사람들의 반란을 다룬 작품. 그동안 봉준호 영화에서 봤던 한국적인 색채는 싹 빠졌다. 마치 새하얀 도화지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듯 하나하나 새롭게 그려냈다. 9년 전 만화가게에서 책을 보다 눈에 들어온 까만색 표지의 ‘설국열차’. 영화를 구상하는 데 5년이 걸렸고 영화를 제작하는데 3년 반이 필요했다. 어느덧 영화는 완성됐고, 개봉을 눈앞에 뒀지만 봉준호 감독은 아직도 설렘이 가득해 보였다. 봉준호 감독은 왜 기차를 선택했을까.

“기차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대학교 엠티 때 기차를 타면 서정적이고 낭만적이지 않나요? 반면 밖에서 기차를 보면 무지막지한 쇳덩어리가 돌진하는데, 남성적이고 파괴적인 느낌이 들잖아요. 두 가지 오묘한 느낌을 섞고 싶었어요. 커티스는 어두운 기차 안에서 도끼질하는데 밖은 새하얀 설원인 것처럼 대비되는 이미지들을 담고 싶었죠.”

이번 작품에서 가장 큰 발견은 틸다 스윈튼이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틸다 스윈튼을 빼놓고는 얘기가 안 될 것 같았다.

“틸다 스윈튼은 뭘 해도 멋있는 배우죠. 하지만 본인은 프로페셔널한 배우가 아니라고 말해요. 오스카상을 받은 배우가 이런 말을 하니, 우리나라에서 그랬으면 망언이라고 놀림을 받았을 거예요. 주위에선 제게 묻죠. 왜 틸다를 캐스팅했냐고. 하지만 본인이 더 원했어요. 굉장히 과감하고 또 혁신적이었죠. 여배우인데 돼지코를 넣고, 틀니도 빼고… 주저함이 없는 배우였어요.”

하얀 설원 위를 달리는 ‘설국열차’, 생각보다 어두운 영화란 지적이 많다. 또 폭력적인 장면도 여럿 등장한다. 의도했던 것일까.

“영화 분위기가 어두운 건 사실이죠. 하지만 어두운 부분도, 밝은 부분도 많이 교차한다고 봐요. 영화 속 설정은 극한 상황, 빙하기를 맞은 인류 이야기에요. 생존자들이 기차에 타고, 절대자와 싸우면서 격렬한 내용이 나오잖아요. 상황이 어둡다 보니 영화도 어둡게 나온 것 같아요.”

‘설국열차’에는 다양한 열차칸이 등장한다. 꼬리칸, 엔진칸을 비롯해 교실칸, 식당칸 등 다양한 칸들에서 다채로운 모습들이 보인다. 봉준호 감독이 가장 애착을 갖는 장면은 어떤 장면일까.

“개인적으로 스시를 먹으면서 창밖을 멍하게 쳐다보는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열차 안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수족관 물고기를 먹으면서 얼어있는 바다를 망연자실하게 쳐다보는데, 피아노 음악이 흐르면서 잔잔하게 그려지잖아요. 어쩌면 자신들의 모습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컷인데, 조용한 장면이지만 굉장히 애착이 가는 장면이에요.”

그동안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은 한국적인 요소가 들어갔지만, 이번 영화에선 한국적인 컬러가 하나도 없다. 한국적 배경이 없다는 건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을 터. 혹시 두려움은 없었을까.

“한국이란 배경을 지운 건 제게 첫 도전이었어요. 이전 작품과 현재를 가르는 가장 큰 기점이 될 것 같아요. 한국적인 시공간을 떠난 ‘설국열차’는 사실 SF영화예요. 한국인 남궁민수와 요나가 등장하지만, 어쩌면 한국인이 아닌 아시아 국가 중 어느 나라의 사람일 수도 있죠. 영화 속에 굳이 한국적인 것을 넣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이는 설국열차 영화화 단계부터 의도된 부분이에요. 지구에 빙하기가 오고 생존자들이 기차를 타는데 충청도, 강원도 사람들만 모이면 어색하지 않나요(웃음). 그래서 다국적 배우들을 모집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영화가 글로벌화 된 것이죠.”

틸다 스윈튼과 크리스 에반스 외에도 수많은 외국 배우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었다.

“에드 해리스는 정말 재밌는 분이에요. 할리우드 대배우인데도 첫날 촬영장에서 긴장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대사를 몇 번 버벅거리더니 자기 분에 겨워서 혼자 화를 내더라고요. 대사가 엉켜 긴장하고, 또 혼자서 화내고 풀어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존 허트는 항상 첫 테이크가 좋았어요. 본인만의 연기 설계도가 있는듯했어요. 촬영은 여러번 했지만, 항상 첫 번째 테이크가 선택됐죠. 제이미 벨은 일찍 죽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많이 표출했어요. 자기도 교실칸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데, 갈 사람은 가야 된다고 말해주며 겨우 말렸죠.”

한국적인 영화이지만, 한국 배우들의 비중은 크지 않다. 특히 대배우 송강호의 비중이 작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전체 인물에 대한 발란스를 맞춘 것이라고 보면 돼요. 전체 스토리와 인물 흐름에 맞춰서 각자의 분량을 정했죠. 또 한국 팬들은 우리 귀에 들리는 한국어 대사가 많았으면 하는 분들도 있을 거라 봐요. 하지만 양보다는 질이죠. 이를 대변하는 캐릭터가 송강호가 맡은 남궁민수예요. 비중은 적지만 중요한 인물이자 스토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잖아요. 비중은 적어도 중요도는 큰 인물이죠.”

벌써 다섯 번째 장편영화다. 봉준호 감독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시점일 것 같았다.

“제가 영화를 찍은 이래 처음으로 다음 작품이 100% 정해지지 않은 상태예요. 영화 ‘살인의 추억’이 개봉했을 땐 ‘괴물’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있었고, ‘괴물’을 찍을 땐 차기작 ‘마더’를 계획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괴물’ 촬영장에 김혜자 선생님이 찾아오곤 하셨죠. 김혜자 선생님이 ‘나 하루하루가 달라요. 빨리 찍읍시다’라고 말한 게 생각나네요. ‘마더’ 찍을 땐 ‘설국열차’를 구상하고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차기작에 대한 계획이 없어요. 이런 상태가 처음이죠. 이런 상황이 묘하게 즐거워요. ”

영화 ‘살인의 추억’이 나온 지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봉준호 감독은 세계적인 감독으로 성장했다. 10년이란 세월, 그는 어떤 변화를 느끼고 있을까.

“일단 살이 많이 쪘더라고요. 예전 영상을 보면 날씬한 애가 왔다갔다 하던데(웃음). 올해로 ‘살인의 추억’ 10주년이 되는데요, 역전의 용사들을 모아서 영화도 보고 술도 먹으면서 10주년 행사를 해볼까 생각중이에요. 지난 10년 동안 3∼4편의 영화를 찍었는데, 더 빨리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하죠. 3년에 한편 정도지만, 나름대로 바빴던 것 같아요. 반면 좀 쉬어야 하지 않나 생각도 들고요. 영화 ‘설국열차’가 잘 된다면 다음 작품을 더 빨리 준비할 수 있겠죠?”

이제 봉준호 감독 손에서 ‘열차’는 출발했다. 전 세계 영화팬들도 한국인 감독 ‘봉준호’ 작품에 기대감이 크다. 한국을 거쳐 아시아, 미주, 유럽에 이르기까지 그의 열차가 전 세계를 횡단하며 수많은 관객을 매료시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 윤기백, 사진 김재원 기자 giback@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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