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한 심한 어지럼증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이석증'이 떠오른다. 그러나 같은 회전성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또 다른 질환이 있다. '전정신경염'이다.
#직장인 A 씨(45)는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천장이 빙빙 도는 것을 느꼈다. 좌우 어느 쪽으로도 누울 수 없었고, 눈을 감으면 더 심해졌다. 30분 만에 구토가 시작됐고 식은땀이 흘렀다. 119에 실려 응급실에 도착한 그는 전정신경염 진단을 받았다.
전정신경염은 한국에서 빠르게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분석한 전국 코호트 연구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발병률은 2008년 22.7건에서 2020년 62.9건으로 12년 사이 약 2.8배가 됐다. 한 해 진료 인원은 2022년 기준 6만 6,513명에 달했다. 봄과 초여름에 발생이 늘고 겨울에 줄어드는 계절적 패턴을 보인다.
김승재 강남 오상신경외과 대표원장은 "환자에게 가장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극심한 어지럼증 뿐만 아니라, 구토와 식은땀, 빠른 심박, 심한 경우 죽을 것 같은 공포가 한꺼번에 닥치는 경험이다. 이는 전정신경 한 가닥의 기능만 떨어지는게 아니라 전정기능 시스템이 자율신경 시스템도 함께 흔들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우리 몸은 좌우 양쪽 귀의 전정신경에서 균형 정보를 같은 양만큼 받도록 설계돼 있다. 한쪽 전정신경이 갑자기 염증으로 멈추면 좌우 신호의 균형이 깨진다. 이 신호가 모이는 뇌의 가장 안쪽 뇌간에서는, 균형을 담당하는 자리와 자율신경을 조율하는 자리가 바로 옆에 붙어 있다. 균형 신호가 어긋나는 순간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증상이 생기며, 그 뿐 아니라 옆자리의 자율신경 회로도 함께 자극을 받는다. 구역감, 구토, 식은땀과 빈맥, 죽을 것 같은 공포같은 증상들이 동시에 몰려온다.
전정신경염의 원인으로 가장 유력한 가설은 바이러스가 평소 전정신경 안에 잠복해 있다가 어떤 계기로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 계기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누적된 스트레스, 발열, 면역 저하다. 실제로 전정신경염은 최근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불규칙한 생활습관, 무리한 스케줄 이후 발생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최근 연구에서는 어지럼이 심한 환자일수록 자율신경 기능을 보여주는 심박변이도가 떨어져 있고 교감신경이 우위에 있다는 결과도 보고됐다. 그 뿐 아니라 평소 자율신경이 안정돼 있는 사람일수록 발작이 와도 잘 견디고 회복도 더 빠를 수 있다.
치료의 첫 축은 급성기 증상 조절이다. 항히스타민제, 진토제, 수액 보충 등 증상을 조절하는 치료가 기본이며, 일부 환자에서는 짧은 기간의 경구스테로이드 약제가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2-3일이 지나면 고통의 정도는 크게 감소하고 1주일이내에 일상생활은 가능해진다. 다만 환자에 따라 경과의 차이는 다양할 수 있다. 어지럽다고 약만 먹고 가만히 누워 있기보다, 의료진 지도 아래 점진적으로 머리와 시선을 움직여 주는 훈련을 해야 뇌가 비대칭 신호에 빠르게 적응한다.
김 대표원장은 "이 시기에 호흡 훈련과 수면 조절, 카페인 정리 등 자율신경을 안정화하는 생활 관리를 함께 하면 어지럼이 빠르게 잡히고 어지럼증이 만성화 되는 것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라고 조언했다.
발작이 가라앉았다고 끝이 아니다. 급성 전정질환을 겪은 환자의 약 4명 중 1명은 신경이 회복된 뒤에도 어지럼이 만성화되어 지속적 자세-지각성 어지럼증(PPPD)으로 이행한다고 보고된다. 발작 당시 불안 수준이 높았던 환자, 평소 자율신경 기능이 약했던 환자에서 만성화 위험이 더 크다. 발작 후 1~2개월이 회복과 만성화를 가르는 분기점이다.
김 대표원장은 "발작이 멎어도 어지럼이 한 달 넘게 이어진다면, 귀나 뇌의 구조적 검사만 반복하지 말고 자율신경 기능까지 살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 방향은 신경과나 어지럼 클리닉 전문의와 상의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정희원 기자 happy1@segye.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