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살목지’ 흥행 열풍으로 관심이 모두 쏠려 그렇지 ‘왕과 사는 남자’는 여전히 흥행 불씨가 살아있다. 18일 현재까지도 일간 흥행 3위, 하루 동안 4만3814명을 동원했다. 누적 관객 수는 1655만2321명. 이미 ‘극한직업’의 1626만6480명은 돌파한 지 오래고, ‘명량’(1761만 6141명)에 이어 역대 흥행 2위다. 이 정도 어마어마한 성과가 나온 올해 1/4분기 한국영화산 업이지만 의외로 우려의 목소리는 적지 않다.
6일 영화연대의 ‘2026 한국영화산업의 위기와 대책’ 정책 제안 기자회견도 그런 우려를 담고 있다. 지금 당장은 몇몇 영화, 특히 올해 같은 경우 ‘왕과 사는 남자’의 기록적 흥행 덕에 산 업적 위기감이 줄어든 게 사실이지만, 이들 관찰로는 “관객이 영화를 안 보는 게 아니라, 볼 영화를 까다롭게 고르는 것”이란 지적이다. 시장의 허리로 불리는 중박 흥행작이 사라지면서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단 뜻이다. 쉽게 ‘대박 아니면 쪽박’, 혹은 ‘되는 영화만 잘 된다’는 구도에서 그렇게 선택된 극소수 영화들 수치로 전체 관객 수가 끌어올려 졌을 뿐 극장서 수익을 내는 영화 수는 크게 줄고 있단 관찰이다.
실제 상황이 그렇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4월 19일 현재까지 손익분기를 넘긴 건 ‘왕과 사는 남자’와 ‘살목지’ 두 편뿐이다. 그중 한 편이 1600만이 넘는 메가히트작이어서 시장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또 있다. ‘왕과 사는 남자’가 1200만 관객을 넘길 즈음 장항준 감독이 SBS ‘뉴스헌터스’에 출연해 “어느 골목에 한 집만 번성하는 건 그 마을에 좋지 않다. 골고루 흥해야 한다”고 말할 때만 해도 기존 흥행 구도와는 다른 얘기여서 ‘순박하다’(?)는 반응까지 나왔던 게 사실이다. 본래 한국영화시장은 어느 한 편이 ‘1000만 영화’가 돼야 동시기 다른 영화들도 함께 잘 되는 구도가 수없이 목격돼 온 시장이기 때문이다.
밴드웨건 효과가 워낙 강하게 일어나는 시장이어서 한 번 대중 트렌드로 점찍히면 한국 인구 규모에선 나오기 힘든 ‘1000만 영화’가 1년에도 2~3편씩 쏟아지는 분위기. 그리고 바로 그 밴드웨건 흐름에서 ‘나도 덩달아’ 한 번 ‘1000만 영화’ 극장 나들이를 하고 나면 그 행동 심리가 한동안 지속해 다음 주엔 또 다른 영화로, 그다음 주도 또 극장 나들이로 여가를 기획하기 쉽단 논리다. 그 맥락에서 어느 한 영화가 ‘1000만 영화’에 등극하는 동안 함께 걸린 다른 영화도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을 기록하는 ‘쌍끌이 흥행’ 등 다양한 흥행 구도가 포착됐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구도가 무너져가고 있단 것. 당장 ‘왕과 사는 남자’와 함께 걸린 한국영화 ‘휴민트’만 봐도 알 수 있다. 분명 ‘왕과 사는 남자’와는 장르도 겹치지 않고 접근과 방향성도 달라 ‘쌍끌이 흥행’에 적합한 성격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손익분기점 400만 관객에 최종 관객 수 198만1374명으로 손익분기 절반도 채 불러 모으지 못했다. 완성도에 대한 의견 분분을 고려해도 ‘1000만 영화’의 유일한 경쟁작이 ‘저 정도’로 참패하진 않는다.
결국 지금은 ‘시장이 쪼그라드는’ 현장의 특이점들이 나오는 상황이란 얘기다. 경제 불황 시점에 요식업계에서 흔히 관찰되는 현상, 즉 이미 유명 점포로서 ‘잘 되던 식당’은 오히려 이전보다도 더 잘 되지만 다른 점포들은 폐업 러시에 이르게 되는 상황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특정 부문에서 소비가 위축되면 모험적 소비 심리가 아예 휘발돼 버리고 안전한 선택 지향으로 변모하며 ‘남들도 다 선택하는’ 점포, 품목들만 선택되는 흐름이 나온단 것이다.
그렇게 1000만 영화만 점점 더 잘 돼 1600만까지 올라서며 역대 흥행 2위 자리를 차지하는 현상이 나온다. 경쟁작은 손익분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며, 그나마도 손익분기를 넘어선 차기 흥행 주자는 제작비 30억 원대 중·저예산으로 손익분기 80만 관객이 설정됐던 ‘살목지’다. ‘살목지’ 역시 ‘휴민트’ 정도 규모로 제작됐더라면 손익분기는 근처도 가지 못했을 터다.
물론 한국영화시장이 이렇게까지 쪼그라든 데 대한 원인 분석은 그간 수없이 이어져 왔다. 근본적으론 ‘습관’이 무너진 탓이라 보는 게 설득력 있다. 한국 대중의 극장 나들이는 일종의 여가 ‘습관’이었고,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그 습관이 한 번 무너지면서 충성도와 친숙도가 함께 증발해 버리는 상황을 낳았단 것. 소비자 행동 전문가 닐 마틴은 저서 ‘습관(Habit)’에서 “소비자들의 행동 가운데 95%는 무의식적 사고에 의해 결정된다”고까지 말한다. 홍성태 한양대 교수도 “20세기 마케팅이 소비자들의 수요를 정조준했다면, 21세기엔 그들 욕구를 발견하고 자극해 ‘습관화’라는 게 핵심 수단이 됐다”고 지적한다.
그렇게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하던 것이기에’ 반복해 왔던 극장 나들이가 각종 방역 조치 및 개개인 염려로 중단되고 습관이 한 번 깨진 뒤, 대중은 이제 다른 여가거리들로 눈을 돌렸다. 현재 박물관·미술관 등 각종 전시 시장은 역대 최다 입장객을 보이고, 공연 시장도 마찬가 지로 역대 관객 기록을 매년 경신 중이다. 야외 레저 붐도 가시화돼 관련 상품시장 급증이 관찰된다. “할 것도 없는데 영화나 보러 가지”는 팬데믹과 함께 깨졌단 얘기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다. 지금처럼 수없이 갈라진 여가 시장 쪽 만족도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지금은 언뜻 1993년 ‘서편제’가 역대 한국영화 흥행 기록을 경신하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그때도 한동안 기대에 가득 차 있었지만, 6개월쯤 지나자 “‘서편제’ 때문에 한국영화 다 망하겠다”는 소리가 언론 미디어에서까지 등장했었다. 전년도 1992년이 한국영화 시장점유율 18.5%로 극한까지 떨어지는 등 당시는 시장이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영화는 갖가지 이노베이션을 거쳐 되살아났지만, 지금의 위기는 그런 종류가 아니다.
이렇다 할 해결책이 보이지 않지만, 궁극적으론 지금 ‘왕과 사는 남자’가 관련 서적 등 타 미디어로도 붐이 전이되고 영화 배경지 관광객 폭증까지 이뤄내며 이벤트화되는 현상에서 답을 찾아야 할 필요도 있을 듯싶다. 수익의 70% 이상을 극장서 얻어내던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 ‘그럼에도 영화를 계속 볼’ 충성도 높은 소비자들에게서 다양한 미디어와 관광 등까지 관련 소비를 추가로 끌어내며 시장을 큰 범위로 기획할 수 있게 하는 전략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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