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아홉의 나이에 잘 나가던 대기업을 퇴사했다. 누군가에겐 무모하게 느껴질 이 도전을 감행한 20대의 청년은 10년째 파란만장한 K-팝신에서 버티고 성장했다. ‘기생충’이 아카데미를 수상하며 빛나던 그 때 K-팝을 대표해 그룹 에이스를 무대에 세웠다. 그리고 8년 만에 새 그룹 뉴비트를 론칭했다. 멈추지 않는 도전 정신과 끈기, 직접 부딪히며 쌓아온 인맥과 경험이 지금의 비트인터렉티브, 김혜임 대표를 만들었다.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비트인터렉티브 사옥에서 만난 김 대표는 “꿈이 없었기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대학시절 공대를 졸업하고 CJ ENM 음악제작부서에 입사했다. 전공과 다른 분야였지만 도전을 두려워 않는 20대였다. 돌이켜 보면 업무로 얻은 성취감이 기대보다 크게 다가왔다. 다양한 사업을 병행하는 부서에 소속되어 창의성과 자율성을 키울 수 있었고 공연, MD, 브랜드 유통 등 전방위에 걸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업무중에는 신인 아이돌 모니터링도 있었다. 방탄소년단은 갓 데뷔한 신인이었고, 엑소가 인기를 얻던 시기였다.
부서가 바뀌어 본격적으로 신인 발굴을 시작하게 됐다. 시간이 흘러 준비하던 신인 그룹의 데뷔가 무산되게 됐고, 뿔뿔이 흩어지게 된 연습생 일부와 덜컥 계약을 하게됐다.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소속사 대표가 되어 일하게 된 과정이다. 그렇게 그룹 에이스(A.C.E.)가 탄생했다.
“그 친구들을 데뷔 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스물 아홉에 망하는 게 서른 아홉에 망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다른 길을 찾기 쉬운 나이라고 생가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꿈이 없었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 살던 집의 보증금과 퇴직금, 그도 모잘라 어머니에게 손을 벌렸다. 멤버들의 연습실, 숙소비가 마련됐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김 대표는 “사실 첫 1년이 너무 끔찍했다”고 털어놨다. 금방 데뷔시킬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쉽지 않았고, 군입대를 생각하면 멤버들의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더욱이 한한령이 시작되면서 중국 활동도 쉽지 않았다. 어렵사리 투자를 받아 활동을 시작하면서 발을 들인 건 다름 아닌 유튜브다. 10여 년 전에는 유튜브 시장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다. 블루오션에 먼저 뛰어든 덕에 콘텐츠에 구독자도, 조회수도 크게 늘었다. 성과를 인정받아 투자도 늘면서 조금씩 숨통이 틔였다고 했다. 영화 기생충(박찬욱 감독)이 아카데미 4관왕이라는 성과를 거둔 2020년, 에이스에게도 기회가 왔다. K-콘텐츠가 세계의 주목을 받던 그 때 에이스는 아카데미 시상식 공식 애프터 파티 무대를 장식했다. 해외 버스킹을 위해 받아 둔 공연 비자, K-팝 커버를 비롯한 다양한 무대 경험 등 준비된 에이스가 기회를 잡았다.
김 대표는 “착실하게 걸어왔는데 큰 무대에서 실수할까 불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멤버들을 믿었고, 공연 반응도 대박이었다”고 돌아봤다. 학창시절 즐겨듣던 마이클잭슨의 프로듀서 퀸시존스도 지켜보는 무대였다. 성공적인 공연을 장식하며 많은 오퍼가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복병이 터지고 말았다. 유일한 소속 아티스트가 입대 한다면 회사의 존속도 어려웠던 상황. 그리고, 포레스텔라를 만났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