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준호가 믿고보는 주연의 힘을 입증했다. 요즘 같은 때 다소 긴 호흡의 16부작 페이스를 달리는 동안 작품의 스토리 전개 방식은 호불호가 크게 갈렸다. 그럼에도 시청자 이탈을 막은 건 주연 이준호의 존재감 덕분이었다. 이준호에게도 ‘태풍상사’는 당당하게 대표작으로 내세워도 될 만큼 뜻깊은 작품으로 남을 전망이다.
지난달 30일 종영한 tvN ‘태풍상사’는 첫 방송 시청률 5.9%(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방송사 기준 올해 토일극 1회 최고 기록을 쓰더니 최종회에서는 10.3%로 마침내 두자릿수를 넘겼다. 흥행의 배경에는 이준호의 활약이 돋보인다. 2021년 ‘옷소매 붉은 끝동’(MBC), 2023년 ‘킹더랜드’(JTBC)에 이어 3연속 안방극장 흥행에 성공한 이준호는 강인하면서도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주인공 강태풍을 연기하며 작품 인기를 견인했다.
2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이준호는 “지난해 6월 처음 대본을 받고 약 1년 반 동안 길게 촬영하고 애정을 쏟았는데 그만큼 마지막회 시청률 10%가 넘게 많은 사랑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강태풍이라는 역할을 맡게 돼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뜻깊은 한 해였다. 쉽게 놓아주지 못하는 캐릭터가 됐는데 종영까지 하고 나니까 시원섭섭한 마음이 가득하다”고 종영 소감을 밝혔다.
드라마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를 배경으로 아버지가 남긴 중소 무역회사 태풍상사를 지키기 위해 초보 사장으로 나선 청년 강태풍의 성장과 고군분투를 그렸다. 당시 경제위기 속에서 가족과 회사, 일터를 지키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따뜻한 휴먼 드라마를 선보였다.
이준호는 작품의 첫 인상에 대해 “IMF라는 배경이 아픔이 있는 시대이면서도 당시를 겪어보지 못한 분들한테는 새롭게 느껴지는 지점이 많았다. 요즘 세대와 옛 세대를 어우를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는 소재라고 생각했고 마냥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저에게도 큰 도전으로 생각고 연기했다”고 떠올렸다.
주인공 강태풍은 초보 사장으로서 위기의 회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강단과 인간미를 담아내며 시청자에게 공감과 감동을 전했다. 이준호의 연기는 ‘태풍상사’의 중심 축을 탄탄히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16부작 이야기 속에서 메인 빌런 표현준(무진성)의 악행이 계속해서 반복돼 시청자 원성을 사기도 했다. IMF를 극복하고 회사를 일으키려는 주인공의 시도가 번번이 빌런 한 명에 의해 좌절되고 위기 과정이 너무 길었던 탓이다.
이준호는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와 완고가 됐을 때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 것으로 기억한다. 저와 감독님, 작가님 셋이 만났을 때도 계속 수정이 됐고 제작사와도 방향성을 서로 맞춰가며 머리를 맞대면서 어느 길로 갈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단순하고 단조로운 모습이 보여진다는 평가도 존재하지만 제작진에서도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확실히 미워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었던 걸로 생각된다”며 “실제로 그 당시 IMF는 굉장히 많은 아픔을 줬던 큰 사건이었고 이제는 회복하신 분들도 계시지만 아직도 힘들게 지내는 분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제작진이) 접근 방식에 있어서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특히 표현준에 대해 “사실 비하인드가 많다. 처음에는 감독님과 작가님이 표현준은 6회쯤 퇴장하게 될 것 같다고 하셨는데 제작사와의 조율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공분을 살 수 있는 인물을 담을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촬영장에서 무진성과의 호흡을 두고는 “강태풍과 표현준이 만나면 애정신을 찍다시피 너무 가까이 붙어 있었어서 촬영하면서도 부끄럽고 쑥스러웠다. 서로의 눈에 서로가 보일 정도로 굉장히 가깝게 붙어 있었다”며 “액션이라거나 다른 플롯이 있었다면 그것 나름대로 연기하기 재밌었겠다고 대화를 많이 했다”고 웃었다.
엔딩 이후 시청자 사이에서 명장면으로 꼽히는 장면은 극 초반 강태풍이 아버지 강진영(성동일)이 남긴 적금 통장을 들고 오열하는 모습이다. 강진영이 갑자기 사망했는데도 “눈물이 안 난다. 슬픈 건지 화가 나는 건지 나도 내 마음을 못 정했나보다”라던 강태풍은 아버지가 남긴 적금통장을 발견한다. 통장에는 “아버지는 너의 꿈을 응원한다”로 시작하는 아버지의 메시지가 담겼고 강태풍은 은행에서 나와 통장을 손에 쥐고 “너무 보고 싶어”라며 오열한다.
이준호는 “어떤 기술로 보여줄 수 있는 장면도 아니고 몰입을 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사실 1부 엔딩도 그랬다. 병원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는지 모르겠는데 ‘왜 엄마가 갑자기 저 곳에서 나오고 방금 지나간 들것은 뭐지’ 하면서 자각을 엄청 늦게 한다”며 “강태풍도 그 통장을 보면서 바로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갑자기 슬픔이나 큰 일이 찾아온다고 해서 감정이 바로 표출이 되진 않는다고 생각했다. 슬픈 일이라고 자각을 하는 순간 감정이 나온다고 보는데 태풍이는 통장의 편지와 어렸을 적 같이 찍었던 사진을 보게 되는 그 순간이 감정의 트리거였을 것”이라며 “그래서 그 전까지는 아빠가 마지막으로 남겼던 유언이 ‘잘 해낼 거야’라는 말이었다는데 ‘아빠도 참, 그게 뭐야’라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게 된 순간부터 눈물이 나지 않았을까. 그 마음으로 연기를 하다 보니까 점차 편지를 읽으면서 감정이 격해지더라”라고 돌아봤다.
초보 사장으로 시작해 성장한 강태풍처럼 현실에서의 이준호도 마찬가지다. 그룹 2PM으로 데뷔한 후 17년간 몸 담았던 JYP엔터테인먼트를 떠나고 지난 8월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며 홀로서기에 나섰다.
이준호는 “극 중에서 강태풍이 오미선(김민하)에게 ‘우리는 자선 단체가 아니고 무역하는 상사다’라고 혼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말이 다 맞았다. 그렇게 회사를 운영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강태풍이 사람을 우선시했던 건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실제로 현실에서 일을 하고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느꼈던 건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는 사장으로서 챙길 수 있는 것도 챙겨야 한다는 걸 보게 됐다. 극 중 조의금을 갖고가려고 했던 사장님이 ‘사장은 사장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직원들한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뜻깊게 다가왔고 간접적으로 많은 걸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렇다면 이준호가 생각하는 좋은 사장, 좋은 리더는 무엇일까. 그는 “개인적으로 강태풍을 보면서 무엇보다 내 옆을 지키고 있는 직원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표로서 이들한테 뭔가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가장 크다. 애정이나 진심 어린 사랑, 아니면 그냥 월급이든 구성원이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을 최대한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최종회 에필로그에서 강태풍과 태풍상사 직원들은 IMF를 무사히 넘긴 후 ‘체험 삶의 현장’에 출연하고 방송사 뉴스에도 등장하며 승승장구한다. 엔딩 이후 삶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지 묻자 이준호는 “자연스럽게 계속 커지는 회사가 됐을 것 같다”면서도 “강태풍과 그들의 성격상 엄청난 대기업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드라마 속 표상선이라는 회사가 당시 대기업 축에 속하지만 요즘 시대로 보면 엄청난 대기업은 아니다. 태풍상사가 이후로도 잘 된다고 한다면 표상선 정도의 크기는 되지 않았을까”라며 “직원들끼리 서로 어떤 물건을 팔면 좋을지 소소하고 재미있는 비전과 꿈을 나누는 회사로 계속 발전했을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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