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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 “새벽엔 건설 현장, 주말엔 알바” 전 국가대표 김동성의 재기…①

입력 : 2024-01-07 15:09:53 수정 : 2024-01-07 18: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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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동성 사진=김용학 기자 yhkim@sportsworldi.com

성격은 얼굴에, 생활은 체형에 나타난다. 마라톤 선수처럼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과 몸, 짱돌처럼 단단한 체격이 그간 김동성이 보낸 세월을 짐작게 한다.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김동성을 만났다. 언론사 인터뷰는 오랜만이라며 먼저 크게 꾸벅 인사를 하는 그다. 

 

김동성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모습이 있다. ‘빙상의 신’ ‘동계올림픽 영웅’으로 불리는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자신만만한 눈빛과 여유로운 표정이 시그니처다. 2002년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쇼트트랙 최초 전관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고 97, 98, 99, 2001년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역사를 새로 썼다. 

 

드라마 같은 순간도 많았다. 1998년도 나가노 올림픽에 출전한 그가 피니시 라인 앞에서 선두 선수보다 먼저 발을 내밀어 극적으로 골인한 장면은 전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지금은 모든 국가의 선수들이 쓰는 ‘발 내밀기’의 원조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1500m에서 안톤 오노(미국)의 할리우드 액션 탓에 금메달을 눈앞에서 놓친 장면도 회자된다. 그로부터 약 2개월 후 김동성은 캐나다에서 열린 2002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 1500m 결승에서 상대 모든 선수를 한 바퀴 이상 따라잡고 독주하는 ‘분노의 질주’를 선보이는 등 남다른 전략과 기세가 돋보이는 선수였다.

 

수많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말없이 앉아만 있어도 특유의 야성미가 뿜어져 나온 그다.

 

2005년 은퇴 후 18년이 흐른 지금, 김동성을 둘러싼 아우라는 180도 바뀌었다. 훨씬 편안하다. 밝은 목소리와 표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철저하고 지독하게 자신을 내려놓은 결과다.

 

평소 일과를 묻자 김동성은 “4월 말부터 건설 현장 일을 하고 있다. 원래 새벽 5시 전에 집에서 나왔는데, 이제는 새벽 5시 반쯤 일어나서 6시 반까지 현장에 도착해 오후 4시까지 현장일을 한다. 힘들어서 중간에 그만두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이 현장에서 제일 오래 출근했더라”라며 미소짓는다.

 

이어 “그리고 비가 와서 현장에 못 나가거나 주말 저녁엔 어플을 켜고 배달일을 하고 있다. 어떤 날은 동네 산책도 한다. 40대에 접어드니 건강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 웃었다.

 

전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동성 사진=김용학 기자 yhkim@sportsworldi.com

여기서 끝이 아니다. 김동성은 투잡, 쓰리잡을 넘어 포잡(four job)족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고 있다. 해보지 않은 일들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고, 나에게 주어지는 일은 감사한 마음으로 무엇이든 해보고 있단다. 

 

쇼트트랙 관련한 일은 없을까. 김동성은 “코치라는 말은 거창하고, 선수들을 조금 가르치게 됐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팀을 맡아서 체력 훈련, 게임 운영법 등을 알려준다. 주말에서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성인분들 수업을 해드린다. 일요일에는 아르바이트식으로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인덕션과 싱크대 설치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동성은 수많은 국내외 대회에서 메달을 딴 동계올림픽의 스타다. ‘연금으로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현실은 아니었다. 첫 번째 결혼 후 미국에 가게 됐고, 영주권을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박탈됐다. 이후 이혼 등 구설에 휘말리며 주 수입원이었던 성인 스케이팅 코치 자리까지 위태로워져 수입 0원의 상황을 맞이했다.

 

사람들의 환호와 칭찬, 박수와 부러움의 눈빛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시기를 두고 김동성은 ‘인생을 헛살았던 시절’이라면서 옅게 미소 짓는다. 남 부러울 게 없던 선수 시절보다 지금이 더 평온하다.

 

그는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니 화려해 보이지만 직업은 운동선수이지 않나. 연예인이 아니라. 살던 대로 평범하게 살면 되는데 연예인처럼 화려하게 살았던 거다. 머리도 강남에서 하고(웃음).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어린 시절이다. 돌이켜보면 반성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김동성은 “마인드 세팅을 다시 했다. 사실 다 내려놓는 데까지 4년이 걸렸다. 고집도 자존심도 셌다. 생을 마감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제가 책임져야 할 가족이 나를 다시 살게 했다. 아이들도 눈에 밟혔다. ‘내가 이렇게 무너지면 안 된다. 다시 일어나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부터다”라고 털어놨다.

 

전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동성 사진=김용학 기자 yhkim@sportsworldi.com

김동성은 지난 2021년 5월 지금의 부인 인민정 씨와 재혼했다. 방송을 통해 소박하지만 알콩달콩한 재혼 가정의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아내가 긍정적인 사람이다. ‘뭐든 하면 된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자’라고 하더라.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그 귀한 4년이라는 시간을 왜 버렸지’ 싶다. 생활 전선에 빨리 뛰어들었다면 공부도 하고, 기술도 얻었을 거다”라면서 “누구나 힘든 시기는 있다. 힘들고 외롭고 지친다고 가만히 누워있으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저처럼 힘든 일을 겪으신 분들이 계신다면 넘어져도 일어나서 다시 달리는 쇼트트랙 선수들처럼 포기하지 않고 다시 달리시길, 그렇게 되길 응원한다”라는 진심을 전한다.

 

더불어 “처제가 ‘일용직 노동자라도 해보자’라는 말에 새벽 출근을 시작했다. 내 옆의 가족들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 내가 책임질 사람들이 있으니 나쁜 마음을 먹으면 안 되겠다 싶더라”면서 지금의 가족들과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사진=김용학 기자 yhkim@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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