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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게임 원작 영화, 한국에선 왜 인기 없을까

입력 : 2023-11-07 11:30:00 수정 : 2023-11-07 09: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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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호러영화 ‘프레디의 피자가게’가 지난 2주 간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에서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이미 첫 주말 수익만으로도 여러 북미 흥행기록들을 경신한 상태. 역대 할로윈 개봉 영화 오프닝 1위를 차지했고, 역대 호러영화 오프닝 기록에선 3위 자리에 올랐다. 그 위론 2017년 스티븐 킹 원작 ‘그것’과 그 속편 ‘그것: 두 번째 이야기’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기록이 하나 더 있다.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역대 게임 원작 영화 오프닝 1위도 차지했단 점이다.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2014년 시리즈 1편이 등장한 인기 호러게임 원작이다. 팬덤의 어마어마한 열광과 충성도 덕에 이후 10년 동안 무려 14편의 시리즈 후속작을 낳았다. 그런데 잘 보면 근래 이 같은 게임 원작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하는 사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명탐정 피카츄’, ‘수퍼 소닉’과 그 속편, ‘언차티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등까지 모두 북미 흥행수익 1억 달러 이상, 세계에서 3억 달러 이상 대성공을 거뒀고,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나 ‘모탈 컴뱃’ 등도 중박은 기록했다.

 

이 같은 현상은 나름 새로운 기류에 속한다. 본래 게임 원작 영화들은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훨씬 높은 도박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최초의 게임 원작 영화였던 1993년 실사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대실패 이후 사반세기 동안 북미 흥행 1억 달러 이상 영화는 2001년 작 ‘툼 레이더’ 단 한편뿐이었다. 중박이라봤자 1995년판 ‘모탈 컴뱃’이나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등 몇 안 되는 정도. 그리고 그 뒤로 ‘더블 드래곤’ ‘윙커맨더’ ‘던전 앤 드래곤’ ‘둠’ ‘DOA’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 ‘배틀쉽’ ‘어쌔신 크리드’ 등 수많은 실패작들이 깔린다. 그러던 것이 어느 시점부턴가, 흥행보증수표까진 아니어도, 어찌됐건 성공률이 더 높은 될성부른 기획으로 상황이 180도 돌변했단 것.

 

상당부분 극장용 영화의 ‘IP 천하’ 분위기에서 비롯되는 현상으로 파악된다. 이들이라고 이전 게임 원작 영화들에 비해 딱히 영화적 평가가 높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앞선 ‘프레디의 피자가게’만 해도 로튼토마토 집계에서 호평률 29%에 그치고 있다. 결국 기존 히트작 속편이거나 리메이크 또는 리부트, 다른 미디어 콘텐츠를 가져온 미디어믹스 영화 등 인기 IP에 기대는 영화들만 선택되는 추세가 지속되다보니 그 흐름을 타고 위태위태하던 게임 원작 영화들마저 ‘IP=인지도=신뢰도’ 인식 하에 극장관람에 걸 맞는 콘텐츠로 거듭났단 것.

 

더 크게는,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영화(cinema)라기보다 테마파크에 가깝다”고 일갈했던 마블 유니버스 영화 중심으로 ‘영화의 테마파크화’ 흐름이 확산되다보니 이 같은 현상이 비롯됐단 시각도 존재한다. 서사와 인물의 깊이나 통찰, 의외성, 다층성 등이 억제되고 대신 테마파크 놀이기구와 같은 시추에이션들만 반복되는 영화에 10여년 이상 시장이 지배되다보니 그에 길들여진 관객들이 그간 게임 원작 영화들이 갖고 있던 고질적 문제점들, 불만족 요소들을 더 이상 문젯거리로 여기지 않게 됐단 관찰이다.

 

흥미로운 건, 이 같은 게임 원작 영화들이 유독 국내선 힘을 못 쓰고 있단 점이다. 지난 5년간만 봐도 그렇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정도만 239만 관객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서 체면치레했을 뿐, ‘언차티드’ 73만 명, ‘수퍼 소닉’ 1편 12만 명, 2편 32만 명, ‘명탐정 피카츄’ 69만 명,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 29만 명 등 세계 대형영화시장 곳곳에서 성공을 거둔 영화들도 한국선 참패를 면치 못했다. 북미 성적은 초라했지만 중국과 유럽 등지서 성공을 거둬 손익분기를 넘기는 데 성공한 ‘니드 포 스피드’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등도 마찬가지. 각각 11만 명, 116만 명을 끌어들이는 데 그쳤다. 한국은 북미뿐 아니라 전 세계적 차원에서도 유독 게임 원작 영화에 박한 분위기다.

 

왜 그럴까. 많은 점에서 한국관객은 ‘영화의 테마파크화’에 일정수준 거부감을 갖고 있단 해석이 가능해진다. 한국 역시 한때나마 ‘마블민국’이라 불렸을 정도로 마블 영화들에 열광해온 건 사실이지만, 돌이켜보면 그와 비슷한 방법론으로 제작된 여타 수퍼히어로 영화들, 예컨대 DC 영화들에도 그 절반만큼이나마 반응해온 건 또 아니다. 그저 마블 유니버스 내에서 한국관객의 흥미와 공감을 사는 몇몇 캐릭터 설정들, 특히 토니 스타크-아이언맨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강했던 정도라 볼 만하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리얼리스틱한 인물 설정과 인물의 절절한 감정을 따라가는 서사구조에 반응해온 문화권이다. 장르 영화를 만들 때조차 그 격렬한 정서 묘사에 주력하고, 그 결과가 ‘부산행’ ‘오징어게임’ 등으로 드러난다. 그런 ‘정서에의 애착’ 탓에 1970~90년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맹공에도 한국영화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고, 지금껏 총 30편 나온 ‘1000만 영화’ 중 21편이 한국영화로 채워지게도 됐다. 그중엔 저 ‘테마파크성’과 거리가 먼 ‘국제시장’ ‘7번방의 선물’ ‘왕의 남자’ ‘택시운전사’ ‘변호인’ 그리고 ‘기생충’도 포함돼있다.

 

이 같은 배경이라면 향후 북미, 나아가 전 세계 영화 흥행구도와도 한국의 그것은 점점 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할리우드 영화만 놓고 봐도 그렇다. 2023년 한국서 할리우드 영화 흥행 선두에 선 ‘엘리멘탈’(724만 명)은 정작 북미에선 현재까지 올해 통산 16위에 그친다. 무엇보다 올해 북미 흥행 1위, 전 세계 흥행에서도 1위를 기록한 ‘바비’가 한국선 58만 관객에 그쳤단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엘리멘탈’은 현실사회 속 차별과 편견, 혐오, 계층갈등 등 문제를 은유적으로 풀어내는 인물과 정서의 향연인 반면, ‘바비’는 애초 바비인형 캐릭터상품 자체에 대한 애착과 관심으로 관객을 모아야 하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리 세계에서 게임 원작 영화 대세가 이어진다 해도 한국선 게임 인기 자체만으로 관객들 흥미를 돋우는 일은 없으리란 얘기다. 그렇게 한국 영화시장은 만화나 소설 등 탄탄한 서사 미디어 기반이 아닌 IP 영화들엔 잘 반응하지 않고 오히려 거부감과 불신감을 갖는 분위기일 수도 있다. 향후 추이를 계속 지켜봐야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저 게임 원작 영화중 국내선 역대 최고 흥행을 거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기록 239만 명은 현재 200만 관객을 넘어선 중급 규모의 한국 로맨틱 코미디 ‘30일’에 따라잡히는 중이다.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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